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작은터

[퍼온글]아이러브 스쿨~(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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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홍순 [command] 쪽지 캡슐

2001-06-12 ㅣ No.8491

아무말도 없던 전화에서 드디어 조그만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잘 지내? 지난번에는 인사도 제대로 못해서 미안해..."

 

진짜로 연수였습니다. 평소 예감이라는 단어는 별로 믿지 못했었는데 오늘은 바로

그 예감이 들어맞았습니다.

 

        "아냐... 괜찮아... 그날 축하한다는 이야기도 못했는데..."

         

        "고마워..."

 

연수의 고맙다는 말 속에는 큰 한숨소리도 같이 뭍어 나오는것을 느꼈습니다.

일이 어찌 되었던간에 연수와 대행이가 결혼한다는것은 사실일테니까요.

 

연수가 망설이는 목소리로 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저... 혹시... 내일..."

         

        "나 내일 아무일도 없어... 내가 어디로 나가면 될까?"

 

연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둘러 대답했습니다. 물론 내일 사진관으로 출근

해야 하지만 지금 그런것들을 하나하나 생각할 시간이 없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내일 대행이가 야외촬영 예약하러 가자고 해서.."

         

        "응.... 그거..."

 

온몸에 힘이 쭈욱 빠져나가면서 바람빠진 풍선마냥 제 몸이 가라앉았습니다.

연수에게 많은것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민우 너... 예전 모습 그대로더라..."

         

        "그래? 연수도 하나도 안변했던데 뭐... 어렸을때 보다 더 많이 이뻐진것

        같아..."

         

        "고마워..."

         

        "그 습관은 여전하구나.."

         

        "어떤 습관?"

         

        "말 끝마다 고맙다고 하는거 말야..."

         

        "민우 너도 예전 습관 그대로던데 뭐..."

         

        "내가 뭐?"

         

        "나한테 말할 때 마다 코 비비는거..."

         

        "그래? 난 몰랐는데..."

         

        "언제 한번 만나서 어렸을 때 얘기하면 재미있을것 같아..."

         

        "그래... 꼭 한번 그러자"

 

어색하게, 아주 어색하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연수의 목소리가 들려오던 핸드폰을

바라보았습니다. 차마 연수에게 어떻게 대행이와 결혼을 하게 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미 늦은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날밤을 연수와의 추억으로 하얗게 새웠습니다. 대행이를 이겼던 유일한 성적표를

꺼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성적표를 받던날 이사를 가버린 연수네 집 앞에서

울던 기억이 떠 올랐습니다. 그렇게 연수를 떠나보냈는데 이제 다시한번 연수를

내 마음속에서 떠나보내야 할때가 가까와온것 같습니다.

 

 

다음날 아침, 연수를 만난다는 기쁨보다는 대행이와 같이있는 연수를 보아야 한다는

슬픔이 아침잠을 깨웠습니다. 어느날보다 일찍 사진관에 출근했습니다. 청소를 하고

잠깐 소파에 앉아 커피 한잔을 마셨습니다.

 

분주한 오전이 지나고 식사생각이 별로 없다는 저를 억지로 끌고 나가시려는 사장님께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그때 문을 열고 눈에 익은, 너무나도 눈에익은 여자가 들어왔습니다. 그리 반갑지

않은 남자와 함께 말입니다.

 

        "어이... 한민우... 잘 있었냐?"

         

        "그래... 왔구나..."

         

대행이와 연수는 맞은편 소파에 함께 앉아있었습니다. 참 어색하고 이상한 느낌이

나를 감싸는것을 느꼈습니다. 사장님께서 야외촬영 상담을 해주시는 동안 저는

일부러 그 자리를 피해 암실 근처를 서성댔습니다. 하지만 내 귀는 그들의 목소리에

촛점이 맞아있었습니다.

 

        "이봐... 한실장... 이리 좀 나와보지"

 

좀처럼 부르시지 않던 호칭으로 저를 사장님께서 불러 내셨습니다.

사장님과 저, 그리고 대행이와 연수가 함께 앉아 야외촬영 패키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니군요. 그중에 연수와 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어렸을때 친구가 이런일을 하는데 도와준다는 셈 치고 왔지요..

        하하하..."

 

대행이는 특유의 웃음소리로 웃어제꼈습니다. 이것저것 옵션들을 설명해주는것을

무시하고는

 

        "뭐 선택하고 말고 할것이 있겠습니까? 여기 있는 옵션 모두 다 해주시구요

        사진 앨범도 제일 좋은것으로 해주세요... 이정도면 민우가 보너스를

        두둑히 받을 수 있는 정돈가요? 하하하"

 

연수를 바라보았습니다.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저와는 눈을 맞추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무말도 없었습니다. 탁자위에 놓여있는 커피잔을 내려보고 있을 뿐이었

습니다.

 

        "네... 촬영날 오겠습니다. 민우야... 수고해라... 나 간다..."

 

대행이는 웃으며 연수를 한팔로 감싸며 사진관을 빠져나갔습니다. 연수는 끝내 내

얼굴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번쯤은 궁금해서라도 볼것 같았는데...

 

대행이와 연수가 사진관을 나간 후 저는 담배 한대를 물었습니다.

 

        "녀석 담배 끊었다고 하더니... 말짱 도루묵이구나?"

         

        "......"

 

몸속 깊게 담배연기를 들이마셨다가는 큰 한숨과 함께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행복해 보이지 않더라..."

 

사장님께서는 주문받은 사진을 정리하시면서 지나가는 소리처럼 한마디 하셨습니다.

 

        "넌 너의 추억을 그대로 묻어버릴꺼니? 한번 말도 못해보고?"

         

        "사장님 아셨어요?"

         

        "내가 이눔아... 그정도 눈치도 없을것 같냐? 네놈하고 그여자 하구

        하고있는 꼴을 보면 설명안해도 알지..."

         

        "......"

 

또 한모금의 연기를 내 뱉었습니다. 오랫만에 가슴속까지 파고드는 담배연기때문에

머리가 아찔했습니다. 그보다 대행이와 같이 있던 연수의 모습에 더욱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대로 보낼꺼야?"

         

        "네?"

         

        "저대로 첫사랑을 보내버릴꺼냐구..."

         

        "그게 뭐 제 마음대로 되나요?"

         

        "한심한놈 같으니라구..."

 

        "네?"

         

        "너는 다른사람이 떠다주는 밥숟갈을 기다리고만 있을래?

        그리고는 세상만 탓하려구?"

         

        "......"

 

그냥 연수를 한번 만나보기만 해도 좋을것 같습니다. 그냥 어렸을적 이야기를

재미있게만 해도 좋을것 같습니다.

 

        "내가 보니 두명 다 답답한 사람이구먼..."

 

사장님께서 괜히 안타까우셨는지 지나가시면서 이말씀 저말씀 하십니다.

 

몇일동안은 사장님도 아무말씀 하지 않으셨습니다. 혹시 연수에게서 전화가 올까

기다려 보기도 했지만 평소 오지 않던 핸드폰은 요즘따라 많은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하지만 연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힘없이 사진관으로 출근한 몇일 후였습니다. 용기 없는 내 모습이 답답하기도 하고

어렸을 때의 추억은 단지 어렸을때의 일이라고 한편으로는 나를 달래기도 했습니다.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사진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며 소파에 앉아 잠깐 쉬고

있을 때였습니다. 사진관 문이 삐그덕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지만 강한 햇볕의 역광때문에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어서오세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손님을 맞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들어오는 사람은 다름아닌

연수였습니다.

 

        "안녕..."

         

        "연수야..."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연수였습니다. 오늘은 혼자서 이곳엘 찾아왔습니다.

 

        "여기 웬일로?"

         

        "너희 사장님께서 야외촬영 문제로 확인할게 있다고 하셔서..."

 

그때 사장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저와 연수를 번갈아 보시더니 갑자기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 한실장... 나 일이 있어서 잠깐 나갔다 올께... 한 두시간정도

        걸릴것 같아..."

         

        "네...."

 

문을 나서시면서 저에게 눈을 찡끗 해 보이십니다. 사장님께서 저를 위해 만들어주신

자리였습니다.

연수가 바로 내 앞에 앉아있는데 무슨 이야기 부터 해야 할까요...

어렸을 때 우리는 서로 이야기도 잘하고 친하게 지냈었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부담이 되는걸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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