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작은터

[포온글]아이러브 스쿨~(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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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홍순 [command] 쪽지 캡슐

2001-06-12 ㅣ No.8494

연수가 돌아가고 난 다음 얼마있지 않아 사장님이 돌아오셨습니다. 저에게 뭐라고

물어보시지는 않지만 자꾸만 제 주위에서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보이십니다.

하지만 사장님이 기대하시는 그런 애틋한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군요...

 

그저 현실이 미울 뿐이었습니다. 세상에는 내가 원하는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것이

많다는 것을 또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머릿속에선 이제 연수를

잃어버린다면 다시는 찾을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렸을적의

추억만을 가지고는 연수를 다시 찾을 수 없다는것도 너무나 잘 압니다.

그것이 저를 더욱 힘들게 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것은 어렸을적의 추억뿐이지만

연수가 필요한것은 생존일테니까요...

 

또다시... 그렇게... 몇일이 흘렀습니다. 연락을 해도 되냐고 물어보던 연수에게도

한번의 전화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먼저 연수에게 연락을 할 수 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깨가 축 처진채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연수와 대행이의 결혼식 야외촬영일도 하루하루 가까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자꾸만 달력을 쳐다보기가 싫어집니다.

 

        "녀석... 맘고생이 심하구나..."

         

        "죄송해요..."

         

        "나한테 죄송할게 뭐가 있니... 네 몸 간수나 잘 해라..."

         

        "네...."

         

        "이번주 토요일이지? 네 친구 촬영일이?"

         

        "네..."

         

        "어떻게 할까. 민우가 해볼래? 그래도 친구 결혼식 야외촬영인데 민우 네가

        직접 해서 주는것이 더 의미있지 않겠니?"

         

        "생각해 보겠습니다."

         

        "결정은 빠를수록 좋은거야. 미련을 남기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면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으로 축하해주는것이 좋지 않겠니?"

         

        "전 그렇게 큰 사람이 아닌가봐요"

         

        "누구나 다 그렇다... 너두 그렇고 나도 그렇고..."

         

        "......"

 

하루하루 가슴을 후벼내는 것 같은 아픔을 견뎌내며 살았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내일이 촬영날짜가 되어버렸습니다. 연수에게서는 아직 아무런 연락도 없었습니다.

연수의 연락을 기다리는것보다 제가 먼저 연수를 만나보는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대행이를 직접 만나봐야 하는걸까요...

 

이런생각을 하고 있는중에 갑자기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습니다. 저는 갑자기 이상한

예감이 들어 핸드폰을 낚아채듯이 잡아들고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민우야... 흑흑..."

         

        "연수? 연수야... 무슨일이야? 왜 울어?"

         

        "우리 엄마가... 흑...."

 

이런 예감은 차라리 맞지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가 왜? 차근차근 말해봐..."

         

        "쓰러지셨어... 밖에 나갔다 와보니... 방안에..."

         

        "연수야... 거기 어디야? 집이 어디냐구?"

 

저는 정신없이 사진관을 빠져나왔습니다. 택시를 잡아타고 연수가 일러준곳으로

달렸습니다. 그곳은 예전에 연수를 우연히 찍었던 시장이었습니다. 택시안에서 저는

우선 응급차를 연수네 집으로 불렀습니다. 저보다 일찍 도착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장골목으로 정신없이 달려들어갔습니다. 아주머니들에게 물어물어 연수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연수는 방안에 누워계신 어머니 앞에서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연수야... 나야.. 내가 왔어..."

         

        "민우야... 흑흑..."

         

        "정신차려... 이럴게 아니라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셔야지..."

 

그때 다행히도 집밖에서 사이렌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는

연수와 저 그리고 연수 어머니를 앰뷸런스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응급실 앞에서의 시간은 참 길었습니다. 연수와 저는 응급실 앞 의자에 앉아서

응급실 의사선생님이 나오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고개를 묻고 울고있는 연수를

가만히 안아주었습니다. 흐느끼는 연수의 작은 어깨가 저에게 기대어 왔습니다.

 

        "괜찮을꺼야... 걱정하지마..."

         

        "우리엄마... 저대로 돌아가시면 안되..... 흑흑..."

         

        "아냐... 그런일 없어... 내말 믿어... 절대로 그런일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민우야... 나 이제 어떻게 해..."

         

        "......"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응급실 문이 삐그덕 열리면서 가운을 입으신 의사

선생님께서 나오셨습니다.

 

        "선생님... 우리엄마 어떠세요? 네?"

         

        "겨우 위기를 넘긴것 같습니다. 예전에도 혈압이 높았던 적이 많았나요?"

         

        "평소 혈압이 조금 높으시긴 했는데..."

         

        "오늘 밤 지나면서 지켜보도록 하지요. 안정이 제일 중요합니다"

 

연수와 저는 응급실로 뛰어들어갔습니다. 연수 어머니는 침상위에 고이 주무시고

계신것 처럼 보였습니다. 또다시 연수의 얼굴에서 뚝뚝 눈물이 떨어집니다.

 

맥박과 혈압을 체크하는 기계음이 주기적으로 들리는 응급실에서 연수와 저는 연수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저녁도 거른채 연수는 어머니의 침상 앞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연수는 어머니 앞에 고개를 묻고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아직도 연수의 눈은 아까부터 흘린 눈물때문에 부어있었습니다.

저는 겉옷을 벗어서 피곤해 자고있는 연수에게 덮어 주고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커피 자판기에서 따끈한 커피 한잔을 뽑아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마셨습니다.

힘들어하는 연수에게 어떤 도움이라도 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러기에는 내 자신이

참 초라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픕니다.

지금까지 나는 어렸을적의 추억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버텨왔지만 정말 중요한것은

추억이 아닌 현실이었습니다. 현실만 남은 추억은 아픔이었습니다.

 

잠시 바람을 쐬고 다시 연수에게로 가려다 저는 응급실에 어느새 들어와 있는

대행이를 보았습니다. 대행이와 연수는 침상 앞에서 뭔가를 이야기 하고 있어

보였습니다. 나는 다시 걸음을 바꿔 병원 밖으로 나갔습니다. 방금전까지는 시원한

바람이 좋았는데 이번엔 쌀쌀한 느낌이 듭니다.

어찌보면 연수의 옆자리엔 저렇게 대행이가 있는것이 맞겠지요. 저도 이젠 제 자리로

돌아가야 하는걸까요.

 

        "고맙다"

         

저도 모르는 사이 대행이가 제 뒤로 와서는 불쑥 말을 겁니다.

 

        "어... 언제 왔어? 난 연수가 급하게 연락을 했길래 그냥..."

         

        "변명하지 않아도 되... 나도 그정도 이해심은 있으니까..."

         

        "그런데 내가 온걸 어떻게 알았어?"

         

        "연수가 커다란 남자옷을 덮고 있더군... 그래서 알았지...."

         

        "이제 그만 가봐야겠다. 그나저나 내일 야외촬영일인데 큰일이 생겨서

        어떻게 하지?"

         

        "일정이야 바꾸면 되지... 그런건 걱정 안해. 오히려 다른게 문제지"

         

        "다른거? 다른게 문제라니?"

         

        "연수가 문제지... 연수는 아직도 철없는 어린애 처럼 어렸을적 추억을

        먹고 살고 있거든... 참 순진하기도 하지... 그런데 민우 너는 안그렇지?"

 

순간 입이 딱 붙어버린것 처럼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민우 네가 나타나고 나더니 연수가 예전보다 더 이상해지더군...

        여자란 다 그런가봐. 바보같이 어렸을때의 추억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다니. 그것도 국민학교 코흘리개적 이야기를 말야... 안그래?"

         

대행이가 하는 이야기는 연수의 이야기가 아니라 저의 이야기였습니다. 입가에서는

쓴 웃음이 지어집니다. 연수에게 다가오지 말라는 이야기군요. 저도 그럴 생각입니다.

연수가 행복해진다면, 그래서 어렸을적의 연수만큼 다시 행복해진다면 저는 사라져줄

생각입니다.

 

        "행복하게 해줘... 연수..."

         

        "행복? 어떻게 하는게 행복하게 하는건데? 세상에 행복은 없어.

        그냥 그런게 있지 않을까 막연히 사람들이 기대를 하는 것 뿐이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꺼야"

         

        "후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이거 무서운걸? 한민우 무서워서라도

        행복해야 겠는걸? 하하"

         

        "비웃지마,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같지 않아. 지켜볼꺼야... 앞으로 계속"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이렇게 더 이야기를 하다가는 내가 어떻게 변할지

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연수에게 덮어주었던 옷을 가지러 응급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만 들어가 볼께..."

         

        "민우야..."

         

        "난 이제 여기 없어도 될것 같은데..."

         

        "만났어? 대행이?"

         

        "응... 들어가 볼께..."

         

        "......"

         

        "걱정하지마... 그리고... 행복해야되..."

         

        "......"

 

연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병원 응급실을 빠져나오면서 나는 어릴적의 추억

속에서도 빠져나오고 있었습니다. 이제 더이상 나에게 국민학생 한민우와 황연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머니속에 만지작거리던 연수와 같이 보았던 극장표를 꺼내

보았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잘게 찢어진 극장표가 제 손에서 날아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안녕. 어릴적의 추억이여.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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