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작은터

[포온글]아이러브 스쿨~(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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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홍순 [command] 쪽지 캡슐

2001-06-12 ㅣ No.8495

저는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추억을 잊는다는것은 힘들지만 아무렇지 않으렵니다.

세상 모든일이 모두 자신의 결심으로만 이루어지는것은 아닐테지만 그래도 아무렇지

않으렵니다. 까짓거 얼만큼만 버티면 되겠지요. 술 몇잔과 실없는 웃음으로 모두

잊혀질 수 있을겁니다. 연수와의 추억을 간직했던 시간만큼만 힘들면 될까요?

그정도 후면 모두 잊혀지겠지요?

 

몇일째 방안에 누워서 천정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젠 벽지 무늬가 눈에 아주

익숙합니다. 이렇게 얼마정도가 지나면 죽을 수 있을까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으니까요. 그리고는 사진관으로

나갔습니다. 사장님께서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십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그래... 몸은 좀 괜찮니?"

         

        "네... 괜찮아요..."

         

        "그런것 같지 않구나"

         

        "그럼 괜찮아 지겠지요 뭐... 하하"

 

몇일만에 나와본 사진관은 마치 집으로 돌아온 느낌이었습니다. 사장님께 부담만

드려서 죄송합니다. 다른분 같았으면 저는 당장 해고를 당했겠지요...

그런 사장님께 더욱 죄송해서라도 힘을 찾아야 할것 같습니다. 이제 제 곁에는 아무도

없으니까요. 추억마저도 말입니다.

 

신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사진관을 청소했습니다. 저의 기억속을 청소하는

기분으로, 모든 기억이 정리되는 마음으로 사진관을 청소했습니다. 세상일은 모두

마음먹기라고 하죠? 맞습니다. 다 마음먹깁니다.

 

그러다 한쪽벽 구석에 세워져 있는 액자에 넣어지지 않은 커다란 사진이 눈에

띄였습니다. 연수와 대행이였습니다. 지난주 토요일 촬영을 했군요. 오늘이 금요일이니

벌써 일주일이나 된 사진이었습니다.

가슴속에 알 수 없는 커다란 무언가가 울컥 올라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빗자루를 들고 한참동안 그 사진을 바라보았습니다. 둘 다 모두 웃고 있군요.

행복한 모습들입니다. 아니군요. 연수의 얼굴엔 저만이 느낄 수 있는 슬픔이 뭍어

나옵니다. 저에게 꼭 뭐라고 말하는것만 같습니다. 연수는 행복하지 않은 신부일까요.

 

        "지난주 토요일에 찍었다. 아직 정리가 덜 됐구나.."

 

어느새 사장님께서 제 뒤에 오셔서 제가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것을 보시고는 말씀을

걸어오셨습니다.

 

        "잘 나왔는데요... 역시 사장님께서 보시는 구도는 아무도

        따라가지 못한다니까요..."

         

        "민우야..."

         

        "저 사진 망원으로 당겨 찍으신거죠? 아웃포커싱이 정말 좋네요...

        저는 언제 저런사진 찍어보죠?"

         

        "......"

         

        "토요일 날씨가 좋았었나봐요... 노출 측정이랑 반사광은 누가 가지고

        다녔어요? 제가 없어서 사장님만 고생하셨겠네요..."

         

        "민우 너답지 않구나..."

         

        "......"

 

그냥 연수 이야기를 하고싶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런 제 모습을 사장님께서는 너무도

잘 알고 계신듯 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꺼니?"

         

        "뭘요?"

         

        "이대로 모든것이 상황종료가 된거니?"

         

        "그렇죠 뭐..."

         

        "네녀석 추억이라는게 고작 그정도 값어치 밖에는 안됬었니?

        항상 국민학교때 이야기만 하면 온 세상을 다 가진것 처럼 좋아하던 놈이

        그렇게 쉽게 그것을 버릴 수 있니?"

         

        "사장님......"

         

        "내가 곁에서 보기에 안타까워서 그런다. 네녀석이 이뻐서가 아니라...

        저 아가씨가 아쓰러워서 그래..."

         

        "연수가요? 왜요?"

         

        "저사진... 행복해보이니?"

         

        "......"

         

        "난 저 아가씨처럼 우울한 신부는 처음봤다. 내가 사진을 찍으면서 가장

        후회한 사진이 됬지."

         

        "......"

         

        "네 이야기를 묻더라. 그리고 아가씨 어머니는 네 덕분에 다시 사셨다고

        꼭 전해 달라고 하더라. 내가 전화를 하라고 했지. 그랬더니 뭐라고

        그러는줄 아니?"

         

        "뭐라고 했는데요?"

         

        "네가 두렵단다. 이렇게 바보같은놈을 말이다."

         

        "......"

 

제가 두렵다구요. 연수는 저를 그렇게 생각했나요. 다시 사진속의 연수를 보았습니다.

연수는 저에게 그렇게 말하는것 같습니다. ’날 잡아줘...’

 

        "용기를 가져라. 용기는 종류가 많아. 당당히 나서서 너의것을 되찾는것도

        용기지만 그럴 수 없다면 자유롭게 만들어 줘라. 그리고 너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용기야."

         

        "......"

         

        "내일이 무슨날인지 알지?"

 

내일이요... 내일은 토요일이군요. 연수의 결혼식이 있는 날이군요. 일부러 머릿속에서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날이었는데...

 

        "어떻게 할거니... 나와 같이 갈 수 있겠니? 가서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겠어?"

         

        "......"

         

        "네가 결정해라. 가는것도 너의 마음이고 안가는것도 너의 마음이니까...

        하지만 이것 하나는 잘 생각해라. 내가 평생을 살아오면서 느낀것중에 하나가

        바로 지금 당장의 기회보다 더 좋은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는다는 거야.

        나중에도 선택할 기회가 오겠지 생각을 하다보면 늘 지나간 기회가 아쉬운

        법이더라. 그리고 그 기회도 마음대로 찾아오는것도 아니고..."

         

        "......"

         

        "용기를 가져라. 어떠한 모양의 용기던지."

 

사장님께서 제 어깨를 툭툭 쳐주시면서 다시 암실로 들어가셨습니다.

용기를 가지라구요...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먹는대로

되는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일부러 유쾌하게 만들려 했던 기분은 다시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내일이었군요. 모르는 척 지나가려 했는데 이렇게 다시 확인된 셈이 되어버렸습니다.

자꾸만 사진속의 연수가 저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것 같습니다.

 

 

토요일.

드디어 토요일이 되었습니다. 날씨는 지나치리만큼 맑았습니다. 결혼식을 하기엔

더없이 좋은 날씨군요. 오랫동안 입지 않았던 정장을 꺼내어 보았습니다.

거울속에서 어색한 웃음으로 양복을 입은 또다른 민우가 저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사장님과 함께 촬영도구를 챙겨서는 예식장으로 출발했습니다. 오늘따라 사장님은

저에게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저에게 실망하신걸까요? 그래요. 전 원래

이런 놈인걸요...

 

예식장은 벌써부터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사장님과 저는 결혼식 모습을 담기위해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민우야... 너는 오늘 여기 손님이니까 그만 거들고 들어가거라..."

         

        "사장님..."

         

        "난 괜찮으니까 들어가서 자리에 앉아"

         

        "......"

 

식장 입구엔 멋있게 연미복으로 차려입은 대행이와 그의 부모님들이 계셨습니다.

 

        "어이... 왔구나... 고맙다. 역시 어렸을때 친구가 제일이라니까.

        어머니.. 얘가 제 국민학교때 제일 친한 친구였어요... 한민우라고..."

         

        "축하드립니다"

         

대행이와 악수하는 손이 상당히 어색합니다. 슬며시 손을 빼서는 다시 주머니 속으로

집어 넣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신부가 식장에 도착했는지 사람들이 왁자지껄 소란스러워집니다.

웅성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하얀 드레스속의 연수가 지나가는것이 간간히

보입니다. 얼굴을 보려했지만 많은 사람들에 둘러쌓여 좀처럼 볼 수 없습니다.

저는 일부러 사람들 속으로 더욱 다가서 보았습니다. 혹시나 연수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잠깐, 정말 찰나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연수와 저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뭐라고 할까요. 그토록 짧은 순간동안 한시간을 서로 마주앉아 이야기한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까요. 연수는 저에게 뭔가를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보던 그 순간

연수의 눈속에 반짝이는 눈물 말고도, 사람들에게 떠밀려 신부대기실로 들어가며

고개를 돌려 저를 쳐다보던 그 표정도 모두가 저를 안타깝게 할 뿐입니다.

 

행복을 빌어주리라 그렇게 다짐했는데, 내게 더이상 어릴적 추억은 남아있지 않다고

그렇게 자신했는데 연수를 보는 순간 내가 어리석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추억을 버릴 수 없습니다. 버렸다고 생각했던 그 추억들은 이미 나의 몸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었습니다. 내가 어리석었습니다. 연수를 버리고는, 추억을 버리고는

한민우는 의미가 없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겠죠?

 

어느새 식장에 입장해 있는 신랑신부를 보고 저는 그곳을 향해 천천히, 정확히 걸어

들어갔습니다.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저를 이상하게 쳐다봅니다.

주례자 옆에 서계시던 사장님께서 저를 보십니다. 웃으시는군요.

웅성거리는 소리에 연수와 대행이도 뒤를 돌아봅니다.

 

연수를 향해 웃어주었습니다. 연수야. 미안해. 너무 늦었지? 하지만 더이상 늦으면

나에게 기회는 없어...

 

저는 아무 소리 없이 연수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주례 강단에 서 있던 연수를

끌어내렸습니다.

 

        "가자. 연수야... 내가 너무 늦었지?"

         

        "민우야..."

 

놀라움 반, 기쁨반의 표정이된 연수가 저를 따라 나섭니다.

 

하지만 몇걸음 가지 않아 우리 앞에는 험상궂은 남자들이 길을 막아섰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둘러싸고는 팔을 꺾어 식장에서 끌고 나왔습니다.

내 손을 잡았던 연수의 손도 제 손을 벗어나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연수의 얼굴을 타고 눈물이 흐릅니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버티려 했습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저는 그자리에 주저앉았고 몇명의 남자들이 그런 저를

끌어내고 있었습니다.

 

        "놔! 놔! 이거 놓으란 말야..."

 

비디오 카메라를 떨구고 저를 쳐다보시는 사장님도, 짙은 신부화장에 검은 눈물을

흘리는 연수의 얼굴도 조금씩 조금씩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거 놓으란 말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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