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동성당 게시판

용서는하되 잊지는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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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국 [petertel] 쪽지 캡슐

2001-04-19 ㅣ No.888

예수 마리아 요셉

 

 

셋째 큰어머니를 하느님 품에 보내드리며

 

점심이 다되어서야 전화기를 열었다.

사무실은 이사중이라 일반전화는 통화 불가했고

어머니는 여기저기 전화하시다가

둘째인 안셀모가 연락 받고는 계속해서 내게 전화했으나

종무소식 이였단다.

어머니께 전화 드렸더니 몇일 전 가 뵈오렸는데

좀 쾌차하시면 오시라는 조카의 말에 못 뵈었다며 안타까워 하셨다.

고생 하셨는데, ... ...

동란이 시작되며 33세에 혼자 되시어 3남매를 키우셨다.

 

셋째 큰아버지께서는 당시에 언론사에 계셨는데

느닺 없이 들이닥친 공산괴뢰에게 행선지도 모르는 데로 끌려 가셨고

얼마후 수소문 끝에 들은 소식은 끌고 가던 총에 돌아 가셨다는 것이다.

주검도 어디 있는지 모른 채... ... ...

 

3째 큰아버지의 함자는 "팽자 윤자"로 "조 팽윤"이었다.

조 풍연 선생과도 어느 신문사에 같이 근무하셨다는 데

조 풍연 선생은 정리부에 근무했고,

3째 큰아버지 조 팽윤께서는 경리부에서 근무 하셨다.

막내였던 아버지께서 전화를 드리면

정리부의 조풍연 선생과 통화하기가 일 수 였다고 합니다.

반대로 정리부의 조 풍연을 찾는 전화는

경리부의 팽자 윤자 3째 큰아버지가 자주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자석식 전화에다 교환원의 교환 방식이 빚어낸 일들이지만,

현재에는 모든 부문과 상황이 그때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변했습니다.

 

그런 기억과 일들을 공유하던 한 분은  

전쟁의 참화를 거친 후 많은 사회활동을 하셨고

저명한 저널리스트로 활약하셨지만,

한 분은 이유도 없는 죽음으로 꿈 많은 젊음을 접어야 했고

그로 인하여 그 한 가정은 말 할 수 없는 고난의 세월을 살아야 했습니다.

 

사촌형과 누님들이 훌륭히 되어

3째 큰어머님께서 노년에 안락하게 보내셨지만

이러한 아품의 세월을 많은 우리네 선대들은 겪었던 일입니다.

 

"용서하되 잊지는 못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교회와 주위의 많은 어른들께서도 이런 아품을 갖고 계시지요.

선종하신 모데스타의 영혼을 위하여,

P본당의 신부님 수녀님들 그리고 많으신 신자분 들의

정성어린 연도의 기워 갚음으로 이 모데스타 영혼이

주님 앞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봉사에 허리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에 썯던 글을 조베드로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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