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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원 [croudy] 쪽지 캡슐

1999-02-19 ㅣ No.416

새 순 李 外 秀 1 퇴근 무렵이었다. 서울의 모든 정류장들이 아수라장으로 돌변하는 시간이었다.어느 정류장이건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모두들 탈진해 있었다. 회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리니. 오늘도 파김치가 되어 아무런 불평없이 집으로 돌아가리라. 오늘도 마누라는 침대가 꺼지도록 한숨을 쉬리라. 오늘도 치욕적인 발기부전증은 치유되지 않으리라. 오늘도 몰수된 젊은 날의 꿈들은 반환되지 않으리라. 오늘도 실종된 자아는 되돌아 오지 않으리라. 오늘도 회사가 그대 입에 풀칠을 해 주나니. 회사에 날마다 경배하리라. 그들의 얼굴에 쓰여 있는 퇴근일지들이었다. 종로의 번화가. 지하도 입구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택시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끝이 까마득해 보였다. 끊임없이 지하도에서 사람들이 무더기로 출몰해서 계속적으로 줄의 길이를 연장시키고 있었다. 서울 한 복판에서 택시를 잡기가 사막 한 복판에서 팥빙수를 구하기보다 힘들었다. 한 달 전부터 택시 합승 단속령이 내려졌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었다. "도대체 누가 택시 합승 단속령을 생각해 내었을까요?" "택시 합승을 못하도록 만들면 자가용이 잘 팔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거요." "그게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름과 직책을 밝힐 수는 없어도 높은 분들이라는 사실은 확실하지 않겠소." "서민들은 죽어도 좋다는 식이로군요." "서민들이 추앙하는 정의도 이미 오래 전에 죽었고 서민들이 숭배하는 양심도 이미 오래 전에 죽었소." "벌써 한 달째 비가 내리지 않는군요." "비도 이런 도시에는 내리고 싶지 않을 거요." 여름이었다. 바람 한 점 없었다. 하늘이 매연으로 희뿌옇게 흐려 있었다. 기관지염에 걸린 해가 핼쑥해진 얼굴로 빌딩 모서리에 이마를 기 댄 채 빈혈을 앓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갑자기 지하도 쪽에서 절박한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목소리였다. 택시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지하도 쪽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작은 체구의 사내 아이였다. 국민학교 사 학년쯤 되어 보이는 나이였다. 아이는 지하도를 빠져 나와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군중들 사이에 몸을 숨기며 몇 번씩이나 살려 달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간절한 목소리였다. 아이는 가슴에 신문 뭉치를 끌어안고 있었다. 인상이 험악해 보이는 청년 하나가 아이 뒤를 바싹 추격하고 있었다. 청년은 스물 네 살 쯤 되어 보이는 나이였다. 별로 질이 좋지 않은 부류임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차림새였다. 아이의 얼굴은 공포와 절망감으로 사색이 된 채 일그러 져 있었다. 그러나 아이를 도와주기 위해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급적이면 내게 어떤 실리가 확실히 보장되지 않을 때 도시의 현대인은 타인의 문제에 자신을 개입시키는 번거로움을 결코 달가와 하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택시를 잡기 위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지만 그들 중에서 도시의 현대인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 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결국 청년의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덜미를 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런 싸가지 없는 뼉새끼." 청년은 해독하기 어려운 용어로 조합된 욕설을 뱉아내며 세찬 발길질 로 아이의 복부를 잔혹하게 내지르고 있었다. 청년은 청바지에 러닝 셔츠 차림이었다. 양쪽 팔뚝에 문신과 칼자국들이 파충류처럼 흉측한 형상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이는 작은 몸을 새우처럼 오그라뜨리며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니가 토까면 어디까지 토깔 거야." 청년의 발길질은 계속되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은 공포와 고통으로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정말로 아이를 죽여버리고 말 것 같았다. 아이의 얼굴은 이제 피범벅으로 변해 있었다. 처절한 비명소리 가 오래도록 거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한참 동안 매질을 당하던 아이는 이제 탈진해 버렸는지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살려 달라는 말만 주문처럼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신문 뭉치만은 두 팔로 다부지게 끌어안고 있었다. 아마도 아이의 밥줄인 모양이었다. 군중들은 의식적으로 아이의 눈빛을 외면하고 있었다. 대다수 가 비굴함은 곧 현명함이라는 등식을 진리처럼 신봉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 다. 아무런 감정도 표출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얼굴에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아이를 때려 죽이든 밟아 죽이든 절대로 관여하지 않겠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애써 공포심을 억누르고 있다는 사실까지 감추지는 못하고 있었다. 택시를 기다리는 군중들 뿐만 아니라 지나 다니는 행인들도 매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멀리서부터 딴전을 피우면서 현장을 못 본 척 피해 가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두루마기 차림의 노인 하나가 나타나서는 의연한 자태로 그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노인은 손에 기다란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칠순은 족히 넘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별로 힘을 쓸만한 모습도 아니었다. 그러나 노인은 차마 현장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여보게 젊은이." 노인이 청년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철모르는 어린애 아닌가. 사람들 이목도 있고 하니 이쯤에서 젊은이가 그만 참으시게나." 부드러운 목소리였으나 근엄성도 내포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대의 젊은이들은 누구의 말이든 근엄성이 내포되어 있으면 거부감을 느끼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청년은 노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노인 은 벌써 오래 전에 도덕과 양심이 이 세상에서 폐기처분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어째서 어른이 하는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세상이 도래했는가. 노인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표정이었다. 아직 도 청년의 발길질은 쉽게 거두어질 태세가 아니었다. "겁대가리 없이 내 구역에 들어와서 몰래 신문을 팔아먹다니. 너 도대 체 어떤 씹새이 밑에서 시다이 쪼는 뼉새끼야. 대갈통을 박살내기 전에 빨리 불어." 청년이 아이에게 폭행을 가하면서 내뱉는 말들을 종합해 보면 아이는 오래 전부터 상습적으로 청년의 구역에 몰래 잠입해서 신문을 팔았고 몇 달간이나 이를 벼르고 있던 청년에게 오늘에야 덜미를 잡히게 되었으며 필시 아이를 조종하는 왕초뻘이 있을 터인즉 대갈통이 박살나기 전에 빨리 이실직고하라는 매질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만신창이가 되도록 얻어터지면서도 끝끝내 이실직고하지는 않았다. 청년의 발길질은 더욱 광폭해지고 있었다. "여보게 젊은이." 노인이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청년의 발길질을 지팡이로 저지하 고 있었다. "그러다가는 정말로 어린 목숨 하나 초상 내고 말겠네." 노인의 얼굴에는 조금씩 한기가 서리고 있었다. "이거 어디서 나타난 노털인데 자꾸 귀찮게 구는 거야. 쓰벌." 청년이 포악스럽게 노인에게 눈을 부라려 보였다.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군중들은 아까보다 한결 더 위축된 표정으로 못 본 척 딴전들을 피우고 있었다. 노인과 아이가 자기들 곁에서 한꺼번에 맞 아 죽는 불상사가 생겨도 오로지 택시를 잡는 일에만 전념하겠다는 표정들이었다. "보아하니 영웅호걸이 되기는 그른 싹수로다." 노인이 참으로 측은해 보인다는 표정으로 청년을 보면서 중얼거린 말이었다. "이 노털이 누구 앞에서 공자님 좆밥 같은 썰을 까고 있는 거야. 저리 꺼져. 쓰벌." 청년이 오만불손한 태도로 왈칵 노인의 가슴팍을 떠밀고 있었다. "사람의 탈을 쓰고는 있으나 사람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 축생이로다." 마침내 노인의 얼굴에 서슬 푸른 노기가 서리고 있었다. "저게 보이는가." 노인이 천천히 지팡이를 쳐들어 보이고 있었다. "자네 같은 축생의 눈에는 필시 저게 보이지 않겠지. 만약 자네가 영웅호걸이 될만한 재목이라면 저게 보이지 않을 턱이 없지. 대답해 보게. 자네 눈에는 저게 보이는가." 노인의 지팡이는 청년의 머리 위 어딘가를 가리켜 보이고 있었다. 군중들의 시선도 은밀하게 노인의 지팡이를 곁눈질로 따라가고 있었다. "영웅호걸의 눈에는 저게 보이더라도 자네 같은 축생의 눈에는 저게 보이지 않을 게야." 노인의 목소리에는 청년에 대한 경멸과 조소가 내재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청년은 노골적으로 자존심이 상한다는 표정을 드러내 보이면 서 노인의 지팡이가 가리키는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도 영웅호걸 의 반열에 끼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이 청년의 의식을 순간적으 로 사로잡았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노인의 지팡이가 가리키는 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텅 빈 하늘 뿐이었다. "도대체 뭐가 보인다는 거야. 쓰..." 청년은 말끝마다 쓰벌이라는 단어를 종결부호로 사용하는 습성을 가지 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외였다. 청년이 쓰벌이라는 종결부호를 꺼내는 순간 노인의 지팡이가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따악. 종결부호는 종결되지 않았다. 아무도 예기치 못했던 사태였다. 청년이 두 손으로 머리통을 감싸 쥐고 슬로우 비디오로 맥없이 무너지는 모습이 보였다. 따악 하는 소리 한번으로 모든 상황이 종결되고 있었다. 잠시 써늘한 정적이 주위를 얼어붙게 만들고 있었다. 군중들이 놀라움에 찬 눈길로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놈 같으니." 노인은 혀를 끌끌 차면서 다시 의연한 걸음걸이로 지하도를 향해 사라 져 가고 있었다. 그래도 군중들은 아직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한 표정들이었다. 그때였다. "죽어라. 개새끼." 팔다리가 부러졌거나 숨이 넘어가버린 줄로 알았던 아이가 갑자기 벌 떡 일어나더니 쓰러져 있는 청년의 대갈통을 축구공처럼 세차게 걷어차 주고 는 군중들 사이를 비집고 잽싸게 도로 건너편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저 녀석 멀쩡하군요." "엄살이었나." "그토록 직사하게 얻어 터지고도 끄떡이 없네요." "폭력에는 이력이 났겠지요." "아까는 저 녀석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만약 노인네까지 봉변을 당했더라면 나도 가만 있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도대체 경찰들은 왜 이런 인간 쓰레기들을 그대로 방치해 두는지 모르겠어요." "교통위반 단속 하느라고 바빠서 그럴 겁니다." 그제서야 군중들은 다소 불안감이 해소된 얼굴로 잡담들을 나누는 여유를 배당받게 되었다. 달짝지근한 해방감이 군중들의 얼굴에 설탕물처 럼 발라져 있었다. 그러나 군중들의 얼굴에 설탕물처럼 발라져 있던 해방감은 별로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불과 십 여 분도 못 되어 군중들은 일제히 입 을 다물어 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쓰러져 있던 청년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기 때문이었다. 군중들은 다시 처음과 같은 상태로 되돌아가 있었 다. 자신들은 지금까지 오로지 택시를 기다리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었으며 곁에서 일어난 사태에 대해서는 눈길조차 주어 본 적이 없다는 표정들로 변하고 있었다. "이 씹새이야. 아까 그 노털 어디로 갔어. 바른 대로 불지 않으면 오 늘 줄초상 나는 줄 알아. 쓰벌." 청년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군중들을 아무나 한 사람씩 선정해 서 멱살을 틀어잡고 노인이 사라진 방향을 대라고 포악스러운 기세로 윽박지르고 있었다. 그런데 군중들 사이에 매우 놀라운 현상이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있었다. 멱살을 틀어 잡힌 사람들은 누구나 겁에 질린 표정을 감 출 수가 없었지만 노인이 사라진 방향을 가리킬 때는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이 손가락으로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노인이 떠나고 난 다음 군중들의 가슴밭에 양심이라는 이름의 새순 하나가 자기 손가락 만한 크기 로 살며시 얼굴을 내밀고 있다는 증거였다. *************** ******* ***************** *****************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랜만에 출근을 했더니, 제 자리가 무척 낯설게 느껴지네요. 설연휴는 모두들 잘 보내셨죠? 위의 글은 저희 회사 게시판에 있는 글을 퍼서 올려봤습니다. 모두들 한번쯤 읽어보시는 것이 좋을듯 싶어서요. 저는 위의 것과는 다른 경험이지만, 고등학교 시절에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느날 방과후에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어요. 저는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문득 어떤 애기를 업은 아주머니가 내리시려고 뒷문쪽에 서 계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답니다. 그 뒤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는데, 하필 제가 본 건 그 남자가 아주머니 뒤에 서서 몰래 지갑을 꺼내는 장면이었던 겁니다. 저는 그 아주머니에게 알려드릴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그러지를 못했답니다. 용기가 없어서였죠. 그 사람이 나중에라도 해를 입힐까봐 저는 한심하게도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바보같은 행동이라 느끼지만, 그 당시의 저에게는 양심보다는 두려움의 마음이 앞섰던 겁니다. 저는 위의 글을 읽으면서 양심과 용기라는 것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 하나만 좋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면, 이 세상은 불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 되겠죠. 우리만이라도 그런 세상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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