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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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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린 [dlchang] 쪽지 캡슐

2006-03-15 ㅣ No.4912

반딧불이의 노래  / 작가 이철환/ AM7 연재(2006.3.15)

 

비에 젖은 아침 햇살이 콘크리트 바닥에 얼굴을 비비며 도란도란 속삭이고 있었다.


초록빛 머리칼을 살랑살랑 흔들고 있는 가로수를 바라보며 완섭 씨는 졸음에 겨운 하품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음식점 출입문이 열리더닌 여덟 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기가 어른의


손을 이끌고 느릿느릿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의 너절한 행색은 한눈에 봐도 걸인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담배 연기처럼 헝클어진 머리는 비에 젖어 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완섭씨


코를 찔렀다. 완섭 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추먹은 소리로 말했다.


“이봐요.! 아직 개시도 못했으니까, 다음에 와요”


“........................”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앞을 보지 못하는 아빠의 손을 이끌고 음식점 중간에 자리를 잡았다.


완섭씨는 그때서야 그들 부녀가 음식을 먹으러 왔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식당에 오는


다른 손님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는 없었다. 더욱이 돈을 못 받을 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준다는 게 완섭 씨는 왠지 꺼림칙했다..완섭 씨가 그런 생각을 하며 머릇거리는


사이에, 여자아이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어, 아저씨! 순대국 두 그릇 주세요”


“응,알았다. 근데 애야, 이리 좀 와볼래.”


계산대에 앉아 있던 완섭 씨는 손짓을 하며 아이를 불렀다.


“미안하지만 지금은 음식을 팔 수가 없구나. 거긴 예약손님들이 앉을 자리라서 말야.”


큰 눈을 슴벅이며 완섭 씨는 어벌쩡 말했다.숫접은 아이의 낯빛이 금방 시무룩해졌다.


“아저씨 빨리 먹고 갈게요 오늘이 우리 아빠 생일이에요.”


아이는 자뜩 움추린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나서, 여기저기 주머니을 뒤졌다. 아이는, 비에


젖어 눅눅해진 천 원짜리 몇 장과 한 주먹의 동전을 꺼내 보였다.


“알았다. 그럼 최대한 빨리 먹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말이다, 아빠하고 저쪽 끝으로 가서


앉거라. 여긴 다른 손님들이 와서 앉을 자리니까.”


“예, 아저씨, 고맙습니다.”


아이 얼굴이 꽃속처럼 환해졌다. 아이는 자리로 가더니 아빠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아이는


아빠를 데리고,화장실이 바로 보이는 맨 끝자리로 가서 앉았다.


“아빠는 순대국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그랬잖아,그치?”


“응....”


간장 종지처럼 볼이 패인 아빠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엿다. 잠시 후 완섭 씨는 순대국 두


그릇을 갖다 주었다. 완섭 씨는 계산대에 앉아 물끄러미 그들의 모습을 바라봤다.


“아빠, 내가 소금 넣어줄게, 잠시만 기다려.”


“.........”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소금통 대신 자신의 국밥 그릇으로 수저를 가져갓다. 아이는 자신


의 국밥 속에 들어 있던 순대며 고기들을 떠서, 아빠의 그릇에 가득 담아주었다. 아이는


소금으로 간을 맞췄다.

 

“아빠, 이제 됐어.어서 먹어.”


“응, 알았어. 순영이 너도 어서 먹어라. 어제 저녁도 제대로 못 먹었잖아.”


“나만 못 먹었나 뭐. 근대 ...아저씨가 우리 빨리 먹고 가야 한댔어. 어서 밥 떠, 아빠...


내가 김치 올려줄게.“


“알았어.”


아빠는 조금씩 손을 떨면서 국밥 한 수저를 떴다.


수저를 들고 있는 아빠의 두 눈 가득히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 광경을 지며보던 완섭 씨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졌다. 음식을 먹고 나서, 아니는 아빠 손을 끌고 완섭 씨에게


다가왔다. 아이는 아무말 없이 게산대 위에 천 원짜리 여러 장을 올려놓고, 주머니 속에있는


한 웅큼의 동전을 꺼냈다.


“얘야, 그럴 필요 없다. 식사 값은 이천 원이면 되거든...... 아침이라 재료가 준비되지 않아서


국밥 속에 놓어야 할 게 많이 빠졌어. 그러니 음식값을 다 받을 수 없잖니?”


완섭 씨는 웃으며, 천 원짜리 몇장을 아이에게 다시 건네 주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아니다. 아까는 내가 오히려 미안했다.”

 

완섭 씨는 출입문을 나서는 아이의 주머니에 사탕 한 웅큼을 넣어주었다.


“잘 가라.”


‘네. 안녕히 계세요.“

 

아픔을 감추며 웃고있는 아이의 얼굴을 완섭 씨는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총총히 걸어가


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 없었다. 총총히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완섭 씨


눈가에 눈물이 어룽어룽 맺혀 있었다. 민들레 하안 꽃씨가 ,콘크리트 바닥 위로 아기똥아기


똥 내려앉고 이었다. 말뚝잠을 자던 가로수가, 초록손을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PS: "우동 한 그릇'을 읽었을때 느꼈던 오늘 아침의 작은 감동을 옮겨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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