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성당 게시판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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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욱 [hyok] 쪽지 캡슐

2000-01-30 ㅣ No.1687

 

기     도

 

 

 

신이여, 저를 절망케 해주소서.

 

당신에게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 절망하게 하소서.

 

나로 하여금 미혹의 모든 슬픔을 맛보게 하시고,

 

온갖 고뇌의 불꽃을 핥게 하소서.

 

온갖 모욕을 겪도록 하여 주시옵고,

 

내가 스스로 지탱해 나감을 돕지 마시고,

 

내가 발전하는 것도 돕지 마소서.

 

그러나 나의 모든 자아가 분쇄되거든

 

그때에는 나에게 가르쳐 주소서.

 

당신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을,

 

당신이 불꽃과 고뇌를 낳아 주셨다는 것을,

 

기꺼이 멸망하고 기꺼이 죽으려고 하나

 

나는 오직 당신의 품속에서만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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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헷세가 쓴 ’기도’라는 글입니다.

 

제 주위에는 행복을 즐기는 사람보다는 고통과 절망을 즐기는(?) 사람이 많은 듯 합니다.

 

저도 그런 사람들중에 한 사람이구요...

 

그 많은 고통을 느끼며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절망에 혀를 내두르고,

 

그 절망속에서 죽어가는 자신을 보고 스스로 안타까움을 느끼며,

 

조금씩 쓰러져가는 모습에서 행복을 찾고...

 

저는 한동안 ’기도’라는 것을 잊고 살았습니다.

 

내가 지치고 쓰러지고 있을 때 난 이렇게 헤르만 헷세처럼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렇게 기도드릴 수 없었습니다.

 

어서 빨리 이 슬픔의 고통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를 바랬고,

 

어서 나를 구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건 시간이었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저에게 가장 필요했던 거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나 봅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시간을 갖게 해주심에 대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상처들에 대하여도 제가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당신안에서 계획된 것이고, 나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이제 믿겠습니다.

 

아니... 느끼겠습니다.

 

내가 겪은 고통들이 날 성숙하게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그 고통들을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여유를 갖고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나약하기에 이렇게 다시 기도를 드립니다.

 

"저를 절망케 하지 마시옵소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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