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미지근한 우리의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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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모 [noelnoel] 쪽지 캡슐

1999-10-26 ㅣ No.764

지난 목요일 성서 백주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마리아와 밤 늦은 시간에 맥주를 가볍게 한잔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하던 중에 아래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을 대변하기도 하는 이 글은 우리를 각성시키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일깨워준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어떠한지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의 삶은 어떠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평화가 함께 하길 바라면서,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 에게 성령의 은총이 가득하길 기도드립니다.

 

※ 첨부 : 아래와 같은 내용에 짤막한 마더 데레사 수녀님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미 지 근 함

 

아르스의 성자 요한 마리아 비안네

 

당신들은 미지근한 영혼 상태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습니까? 미지근한 영혼은 하느님 보시기에는 아직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닙니다. 정신적 삶을 결정하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아직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신앙은 열성없고, 희망은 확신없으며, 사랑은 불길이 없는 사랑입니다.

미지근한 그리스도인은 그 어떤 것에도 감동하거나 경악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신자는 하느님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지루해하기 일쑤입니다. 마치 하느님 말씀에 대해 이미 다 알고 있으며 이미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는 듯이 아무 기쁨이 없이 습관적으로 듣습니다. 또 기도가 조금 길어지면 언잖아 합니다.

미지근한 사람은 20년 전부터 여러 가지 소망으로 가득 차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습관은 조금도 바꾸지 않습니다. 개선 마차에 탄 사람을 부러워하면서도 스스로는 거기에 오르기 위한 노력을 조금도 하지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세속의 재화 때문에 영원의 재화를 단념하고 싶어하지는 않으나 이 세상을 떠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것을 열망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없이 세월을 보낼 수 있다면 절대로 이 세상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삶이 길고도 비참한 것으로 생각될 때는 이는 오직 만사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그가 어느 정도 삶에서 벗어나도록 그에게 십자가오 고통을 보내시면, 그는 너무나도 괴로워하고 탄식하며 너무나도 투덜거리며 심지어 거의 절망 상태에 까지 빠지기 일쑤입니다. 그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그러한 일상에서 벗어나도록 하느님께서 이같은 수단으로 시험하신다는 사실을 아마도 인정하고 싶지 않는듯합니다. 그는 속으로 "내가 무슨 짓을 했기에 이같은 일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나보다 더 죄가 많은 사람들도 이보다 못한 고통을 당하는데 말야"라고 말입니다.

한편 자신이 행복하다고 여기는 미지근한 그리스도인들은 노력하려 하지도 않을 뿐더러 심지어 하느님을 잊어버리고 삽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진 않습니다. 그는 성공하기 위해 자신이 도모했던 모든 일에 대해 아주 훌륭하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른 많은 사람들은 동일한 성공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즐겨 반복해서 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이 이에 대해 얘기를 해주면 이를 매우 즐겨 듣습니다. 그에게 이는 언제나 큰 즐거움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에게 아첨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친절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존경을 상대방이 보이지 않거나 자신이 베푼 덕행에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 배은망덕을 비난하려는 듯이, 그리고 그가 베푼 친절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이 차갑고, 언잖은 표정을 짓습니다.

미지근한 그리스도인은 적어도 외적으로는 어느 정도 규칙적으로 자신의 의무를 이행합니다. 매일 아침 그는 무릎을 끊고 아침 기도를 바칠 것입니다. 매년 부활절에 성체를 모실 것이 틀림없으며, 심지어 매년 여러 번 성체를 모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뻐하지 않고 비겁하고 무관심하게도 아무런 준비도 없이 생활의 변화도 없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저 의무이기 때문에, 또 축일이기 때문에 오직 습관적으로 그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의 기도를 말하자면, 하느님만이 그 기도가 어떤지 아십니다. 아무튼 준비되어 있지 않는 기도입니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바로 하느님을 생각하고 또 자신의 가련한 영혼의 구원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생각합니다. 그의 정신은 온통 세상사에 사로잡혀 있어 하느님을 생각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는 하루종일 무엇을 할 것인지, 아이들과 종들은 무엇을 시킬 것인지, 일을 보다 빨리 끝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기도를 드리기 위해 무릎을 끓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느님께 무엇을 청할 지,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누구 앞에 있는 지를 모릅니다. 경외심이 거의 없는 그의 거동에 이점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는 자신의 비참함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는, 자신의 가난을 사랑하는 가여운 사람입니다. 그는 거의 절망 상태에 있는 환자이면서도 의사를 물리치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미지근한 그리스도인은 여러분들의 생각대로 큰 죄를 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쉽게 악담과 거짓말을 하고 쉽게 미워하고 싫어하고 질투하며 조그마한 변장쯤은 어렵지 않게 합니다.

그는 미사 중에 잠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누군가가 이를 볼세라 걱정도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기도 중에나 미사 중에 정신을 흐트리지 않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 약간 노력이 필요할 것 같으면 쉽사리 산만해집니다.

착한 행동을 할 때 그의 의도는 전혀 순수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때로는 동정심에서, 때로는 세상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 그렇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같은 사람들은 심한 죄가 아닌 것은 무엇이든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고통이 따르지 않기를 바라며 적어도 너무 큰 고통은 따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는 또한 환자들을 기꺼이 돌보아주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환자들 스스로 그들에게 가야할 것입니다. 그들은 자선을 베풀 수 있는 수단이 있을 것이며, 또 누군가가 곤궁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자신들이 그를 미리 찾아가기 보다는 그 사람이 와서 청원하기를 기다립니다.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래서 다음과 같습니다. 미지근한 생활을 영위하는 이는 끊임없이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성체를 모시고 규칙적으로 미사에 참여하지만 사람들은 이 모든 일에서 약하고 무감각한 믿음만 봅니다. 약간의 시험에도 좌절하는 희망, 불길도 기쁨도 없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만을 봅니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완전히 상실되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아주 부족한 것입니다.

 

 

첨부파일: 미지근함.doc(24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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