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관동성당 자유게시판

[펌]이 시대의 모든 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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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ehoony] 쪽지 캡슐

2001-03-21 ㅣ No.895

고물장수 아버지와 아름다운 딸

 

 

바로 어제 있었던 일이다. 아내와 함께 칼국수로 점심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좁다란 골목길을 만났다. 그 길을 통해야만 집으로 빨리 갈 수 있어서 그 길을 통과하려 진입을 했는데, 조금 가다보니 아니나 다를까 맞은 편에 1톤 화물 트럭이 멈춰 서 있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은 짜증스런 표정으로 맞은 편의 그 트럭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런데 조금 있으려니까 그 차에서 나이 어린 소녀가 내려오더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면서 상냥한 목소리로 "아저씨 죄송합니다. 우리 차를 돌리려 하는데 아저씨 차를 조금만 빼주시겠어요?"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귀찮은 표정으로 이러니 저러니 말하기 싫어서 그냥 차를 빼 주었다. 조금 기다렸다가 트럭 곁을 지나면서 차창 밖으로 살펴보니 그 차는 다름 아닌 폐지 등을 수거하는 고물장수의 차였다.

 

차 안에서는 한 50살쯤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미안하다는 표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놀란 것은 그 고물장수 아저씨 때문이 아니고, 그를 따라 다니는 그의 딸아이 때문이었다.

 

한 열두세 살쯤 되어 보이는 그 딸아이는 아마도 초등학교 5,6학년쯤 됨직한 모습인데 고물장수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조수 노릇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아이가 입은 옷을 살펴보니 제 애비가 입던 옷인 듯한 헌 점퍼에 아래는 때묻은 운동복 차림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 표정은 고물장수의 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밝고 명랑한 모습이었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나이인데도 제 아버지 고물수거 차를 따라 다니며 밝은 표정으로 아버지를 돕는 모습이 내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그 고물장수를 생각해 보았다. ’그 사람 참 행복하겠다. 자신의 일을 이해해 주고 부모에 대해 떳떳해 하는 딸이 있으니 그 얼마나 좋을까!’하고... 그러면서 나는 그리고 ’내 아이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대목에 이르자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언젠가 대구에서 행정고시에 합격한 아들이 아버지가 청소원으로 근무하는 구청에 담당 과장으로 발령 받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때도 새벽에 청소 리어카를 끌고 나가는 아버지를 도우려 아버지의 리어카 뒤를 밀고 따라가는 고시출신 아들의 자랑스런 모습이 너무도 감동적이었는데 그보다 더 여리고 더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의 여자아이가 아버지 헌 점퍼를 걸치고 헌 운동복 차림으로 아버지를 도우려 따라 다니는 모습이 얼마나 대견하고 아름다워 보이던지 코끝이 다 찡해왔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우리네 현실이 아닌가 말이다.

 

많은 자식들이 아비의 직업을 떳떳해 하고 자랑스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회에서 그다지 귀하게 보아주지 않는 넝마를 줍고 고물을 모아서 생계를 잇는 그 고물장수의 어린 딸은 아비의 직업에 대해서 전혀 열등감을 가지지 않은 밝은 모습으로 자라는 것이 너무도 사랑스럽고 기특해 보였다.

 

나는 그 고물장수가 남들이 말하는 한다하는 직업은 못 가졌고 남들처럼 돈 많은 부자는 아니더라도, 자식이 아비에 대해서 열등감을 가지지 않고 떳떳하고 당당해 하니 그 사람 인생이 성공한 거 아니냐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무쪼록 그 딸아이와 그 아버지가 고물을 많이 주워서 돈도 많이 벌고, 또 딸아이가 잘 자라서 이 사회의 귀한 등불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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