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성당 자유게시판

사람 사는 이야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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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범 [seead] 쪽지 캡슐

2001-03-09 ㅣ No.1793

 

 

 

 

사람 사는 이야기(2)         

 

 

    사람들은 살면서 가끔은 죽음에 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페이터의 산문’을 읽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좀 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 세상의 사람들중 아마도 죽음 앞에서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을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솔직히 죽을때의 고통과 불안한 생각을 갖게 마련이다.

 

죽음이 고통이나 불안한 요소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죽음이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있었던 6명 소방관들의 고귀한 죽음을

 

보고 최소한 선한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죽음이란 죄를 통하여 죽는것일 수 있지만 그런 죄와의 죽음이 아닌 또 다른 차원의 죽음을 우리들에게 제시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유가족들과 함께 슬프게 울었지만 그 슬픔 안에는 죄와 죽음을 어떤 논리나, 학문이나 종교적인 해석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죽음의 형태는 여러가지가 있을것 같다.

 

생물학적이나, 의학적이나, 신학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상당히 어려운 해석이 될것 같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의 죽음의

 

형태를 우리들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가끔은 의심을 갖게 되는데, 그런 의심 자체도 죽음은 사람들이 학문적으로 어떻게 말들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결론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고유한 영역임에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컨데 사람들이 생각할때 `저 사람은 그렇게 평소에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는데 죽게 되었다’

 

고 하는 경우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경우 일때도 하느님을 의식해서 인지 `아마도 좋은 곳으로 갔을거야’ 하느님 곁으로 갔지 않겠어? 라고

 

이야기 하곤 하는데 . . .

 

 

 

  그렇게 죽음은 하느님과 뗄 수 없는 필연적인 관계를 갖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런 죽음이 곧 나의 것이 된다 라는 생각을 하기엔 나부터도 인색하고

 

어쩜 사실을 망각하는 성향 마저 있는것 같다. 이승에서의 죽음과 저승에서의 죽음을 인간들의 생각으로 보다 보니 그럴 수 밖에 없을것 같다. 하지만 우리들은

 

소위 슬픔을 슬픈것으로, 고통을 고통스런 것으로만 볼 수 없는 또 다른 세계를 믿고 있고, 지금 이 순간도 그런 희망과 설레임으로 항상 깨어 살았으면 좋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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