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 큰아들의 마음(9/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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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국길 [fcan] 쪽지 캡슐

2004-09-12 ㅣ No.3579

연중 제 24주일 (2004-09-12)

독서 : 출애 32,7-11. 13-14 독서 : 1디모 1,12-17 복음 : 루가 15,1-32 또는 15,1-10

* 큰아들의 마음 *

(본문이 길어 필자가 묵상한 구절 중심으로 싣습니다.)
밭에 나가 있던 큰아들이 돌아오다가 집 가까이에서 음악소리와 춤추며 떠드는 소리를 듣고 하인 하나를 불러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하인이 ‘아우님이 돌아왔습니다. 그분이 무사히 돌아오셨다고 주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게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서 달랬으나 그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종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 주지 않으시더니 창녀들한테 빠져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려버린 동생이 돌아오니까 그 아이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까지 잡아주시다니요!’ 하고 투덜거렸다. 이 말을 듣고 아버지는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 하고 말하였다.”
(루가 15,25­32)

◆저는 올 2월부터 한 아파트에서 무연고 탈북 청소년 한 명을 데리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엄마로, 때로는 이모로, 때로는 친구로 지냅니다. 요즘 제가 다리를 다쳐 아무데도 나가지 않으니까 참 좋은가 봅니다. 다리를 다치기 전에는 전국의 북한 이탈주민들을 방문하러 다니느라 한 달에 10여일은 출장을 다녔거든요. 검정고시 준비를 하고 있는데 학원에 갔다 와서 제가 없으면 ‘수녀님, 수녀님’ 하고 찾아다닙니다. 며칠 전에는 머리염색을 해 달라고 염색약을 사갖고 와서 온갖 아부(?)를 다했습니다. 제가 염색약 사오면 물들여 주겠다고 했다나요. 생전 처음 염색하는 솜씨라서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워낙 까다로운 아가씨라 완성되는 모습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질 건 뻔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토닥토닥하며 지내는 그녀는 다른 탈북 여성들이 무척 부러워합니다. “너는 얼마나 좋겠나? 수녀님 사랑을 독차지하고. 야, 부럽구나야!”
그러나 그녀는 얼마나 좋은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아파트는 탈북여성이면 누구든 마음이나 몸이 힘들 때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든 것이어서 많은 이들이 드나듭니다. 늘 기뻐하고 씩씩하게 지내는 그녀는 언니들이 다녀가고 나면 입이 나옵니다. “언니들이 오면 설거지하고 가라고 해요. 청소도 하라고 해요” 등 주문이 많습니다. 어느날 맘먹고 앉아 대화를 나눴습니다. “너는 늘 함께 살지만 언니들은 힘들 때만 와서 겨우 힘을 얻어가는데 수녀님 도와줘야지.” 그럴수록 투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어떤 날은 “저도 여기 살지 않고 왔다갔다하면서 어쩌다 한번 들르는 사람이면 좋겠어요”라는 폭탄 선언을 했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곳으로 가겠느냐고 물으니 “아뇨!”라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큰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체험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로 늘 그분 안에서 사랑을 받고 있기에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매일 마시는 공기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는 것처럼요. 감사하는 습관이 부족한 제가 함께 사는 우리 아가씨에게 감사하는 연습을 잘 못 시키는 건 아닌지 깊이 반성하는 하루입니다.

이선중 수녀(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  나비의 연가 -     
가르쳐 주시지 않아도
처음부터 알았습니다.
나는 당신을 향해 날으는
한 마리 순한 나비인 것을

가볍게 춤추는 나에게도
슬픔의 노락 가루가
남몰래 묻어 잇음을 알았습니다.

눈멀 듯 부신 햇살에
차라리 날개를 접고 싶은
황홀한 은총으로 살아온 나날

빛나는 하늘이 훨뤌 날으는
나의 것임을 알았습니다.

행복은 가난한 마음임을 가르치는
풀잎들의 합창

수없는 들꽃에게 웃음을 가르치며
나는 조용히 타버릴
당신의 나비입니다.

부디 꿈꾸며 살게 해 주십시오
버려진 꽃들을잊지 않게 하십시오

들릴 듯 말 듯한 나의 숨결은
당신께 바쳐지는
無言의 기도

당신을 향한 맨 처음의 사랑
不忘의 나비 입니다, 나는

- 이해인의 詩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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