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성당 게시판

카톨릭병원을운영하는 성직자들에게(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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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렬 [daeun1234] 쪽지 캡슐

2002-07-03 ㅣ No.926

글이너무 공감이 되서 올려봅니다.

다른Site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이듭니다

요즘카톨릭분위기는 너무가진자편에서있는것같습니다.

(정말신자의 한사람으로 통탄한마음을 금할수없습니다)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라는 복음 말씀이 전국의 성당에서 울렸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넘어서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한다.

요즘 가톨릭 병원 노조들이 파업중이다. 다른 어떤 종교 단체의 파업보다 심각한 상태이다. 사제들의 삶은 상담이 가장 기본이다. 그런데 노동조합과는 대화를 못한다고 한다. 그럼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다는 말인가?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 근본적인 이론을 제공하는 곳이 교회이다. 노동의 신성함을 외친곳이 교회였고, 지금도 그렇다고 말한다. 사실 본당 운영에는 별 도움되지 않는 노동자들에게 본당사제들이 관심 있지는 않지만 최소한 지금까지 노동자들의 편을 들어왔었다. 속으론 아니더라도 대외적으로 교회가 천명하는 노동의 신성함을 천명하기 위해서 그래 왔었다. 그런 교회가 지금 완전히 딴 소리하고 있다. 교회당국은 안그런다고 한다. 대화를 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그런데 노동자들이 들어줄 수 없는 조건을 들고와서 대화를 할 수가 없어서 대화가 안된다고 한다.

웃기는 얘기다. 기업들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전문 경영인을 들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교회 병원들의 모습은 사목을 해야 할 사제가 경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일반 경영인들보다 못한 자세로 노동조합을 상대하고 있다. 한마디로 사제들은 사목을 해야하고, 사목은 상담이 기본인데 상담자체를 못하고 있으니 사목자가 아니다.

신자수가 늘었다고 가톨릭 신문들이 보도하는데 이 수치는 뭘 의미하는 지 모르겠다. 입교하는 신자만 따지면 늘었다. 하지만 세례받고 교회 안나오는 신자는 입교하는 신자보다 많다. 앞에선 조금 들어오고 뒤로는 더 많은 신자들이 빠져나간다. 교회가 제대로 살지 못하는데 제발로 들어온 신자 관리도 못하는데 그것이 신자 숫자늘린 것으로만 따질 것인가? 그러면서 주일 미사 참석 신자수가 줄었다고 보도한다.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교회의 사명이 뭔가? 지상에 하느님나라 건설하는 것이 아닌가? 중세 때 죽어서 천당갈려면 성당 나오라고 했었다. 죽은 다음에 가는 하느님 나라? 지금 사람들에게 그것은 말도 안되기에 공허한 소리일 뿐이다.

이런 세상에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제도교회로부터 심각한 탄압을 받을 것이다. 과거에 예수님이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자신들의 위치를 심각하게 흔들었던 것처럼. 그래서 예수님은 정치가들이 아닌 종교지도자들에 의해서 죽었다. 물론 노동조합이 예수님의 말씀을 하고 있다고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과 대화해야 할 책임은 제도 교회의 당국자들에게 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는 열혈당원도 있었다. 요즘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오사마 빈 라덴 추종자들일 것이다. 하지만 9.11테러도 그들이 했을 거라는 추정만 있지 아무런 증거도 없다. 그럼에도 미국은 그들의 본거지라며 아프카니스탄을 맹폭격했다. 교회는 여기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도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자신들과 함께 일하는 공동체 일원들을 그렇게 고소하고 고발하는 그런 무지한 경우는 없어야 한다고 예수님은 벌써 말했다. 공동체 일원이란 말은 형제자매라고 말하는 교회의 일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가톨릭 병원을 운영하는 사제들은 노동자들을 고소 고발해서 이 사회에서 매장해야 할 사람들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이런 교회에 무슨 희망이 있는가?

돈과 권력에 둘러쌓인 교회는 당연히 개혁의 대상이다. 서구 유럽의 교회 모습을 보고 있으면도 모르는가? 거기서 교육받고 온 사제들도 모두 침묵하고 있다. 뭐가 두려운가? 그렇게 중요한가? 노동자들의 밥그릇은 중요하지 않고? 사제단의 일치는 중요한가? 그럼 이 사회를 움직이는 정치인들이 정신차리게 하고, 일반 민중이 살기 편한 세상이 되도록 만들었어야 한다. 세상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야 하는 것이 교회라면 예수님은 왜 그 당시 죽어야 했는가? 죽을 필요도 가치도 없는데 말이다.

한마디로 이 사회가 흘러가는 모양을 그대로 보고 그대로 놔둔다면 교회는 그 존재의 가치가 없다. 교회가 예수님이 주신 예언직을 수행하지 않으니 이미 그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개혁의 대상인 것이다. 성서의 예언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정의를 외치지 않으면 돌들이 외칠 것이라고. 맞는 말이다. 돈없고 힘없는 돌같은 노동자들이 정의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초대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쳐왔다. 개신교가 왜 생겨났는가? 개혁이 필요한데 다들 침묵하고 있으니 들고 나온것이다. 지금이라도 제도 교회의 주교들과 사제들은 개과천선해야 한다. 지금 병원 노동자들을 고소 고발하는 것은 일반 사회의 사업주들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똑같이 할려면 병원운영 하지 말아야한다. 안그럴려면 사제로서의 신원을 포기하고 로만칼라를 빼라. 힘없고 빽없는 노동자들 고발하고, 탄압할려고 그럴려고 사제서품 받았는가?

지금 한국 가톨릭의 힘은 드세다. 어떤 언론도 가톨릭을 걸고 넘어지거나. 문제 삼지 못할 위치에 있다. 그래서 더욱 비판 세력이 필요한 시기이다. 비판 세력이 없으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되는 것이다. 스스로가 깨닫지도 못하는 상태이기에 그렇다. 이런 한국 가톨릭의 미래는 뻔히 보인다. 서구 유럽에서 로만칼라 하고 다니면 돌맞아야 하는 그런 상황으로 갈 것이다. 제발 그놈의 권위 벗어버리고, 노동자들과 함께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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