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소유의 비좁은 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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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8-27 ㅣ No.5277

 

 

필요에 따라 살되 욕망에 따라 살지는 말아야 한다. 욕망과 필요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욕망은 분수 밖의 바람이고, 필요는 생활의 기본 조건이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하나만 가져야지 둘을 갖게 되면 당초의 그 하나마저 잃게 된다.

내가 흔히 드는 비유가 있다. 한때 나는 괴팍해서 글을 쓸 때 꼭 만년필을 고집한 적이 있었다. 만년필도 보통 만년필이 아니고 촉이 아주 가는 것만을 썼다. 그래야 내가 가진 투명한 감성을 그대로 표현할 것 같아서 였다.

한번은 동경대학 유학중인 스님이 문구점에 가서 내가 좋아한다고 촉이 아주 가는 만년필을 하나 사 준 적이 있다. 나는 아주 고맙게 여기고 그걸로 글을 많이 썼다. 그런데 파리에 갔더니 그곳에 똑같은 만년필이 잔뜩 있었다. 그래서 촉이 가는 만년필을 하나 더 사왔다.

그랬더니 그날부터 내가 처음 가졌던 그 필기구에 대한 살뜰함과 고마움이 사라졌다. 나는 결국 나중에 산 것을 아는 스님에게 줘 버렸다. 그러자 비로소 처음의 그 소중한 감정이 회복되는 것이었다. 하나가 필요할 때는 그 하나만을 가져야 한다.

 

물건에 집착하면 그 물건이 인간 존재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된다. 그것은 흔히 경험하는 일이다. 비싼 물건을 사다 놓고 좋아하다가 그것이 깨지거나 사라졌다고 상상해보라. 그러면 큰일이 안 것처럼 소란을 피운다.

물건은 도구이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생활 도구이다. 생활 도구로 쓰지 않고 물건을 반닫이 위나 어디에 모셔 놓으면 그건 도구가 아니다.

인간을 제한하는 소유물에 사로잡히면 소유의 비좁은 골방에 갇혀서 정신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청빈의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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