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성당 게시판

아직도 평신도가 '호구'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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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준부 [korland] 쪽지 캡슐

2004-07-09 ㅣ No.6182

아직도 평신도가 '호구'인 이유

 

 

                                                     차동엽 신부(미래 사목연구소  소장)

 

" 호구 "

 

만만한 사람, 주무르기 쉬운 사람, 뭔가 부족한 사람쯤을 나타내 주는 보다 점젆은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호구'라는 표현을 써봅니다. " 그래, 평신도는 호구여 - 이? "하는 식의 자조적인, 혹은 불만 어린

 

말투를 접해 본 이들이 그리 적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하튼, 나는 오늘 교회 내에서의 평신도 신분에 대한 성찰

 

에 도움이 되겠다 싶어서 다소 도발적인 이 단어를 화두로 삼고자 합니다.

 

 

사실, 요즘은 교회의 사정이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이후 교회사의 흐름 속에서 왜곡 내지 박탈

 

당했던 '하느님 백성', '교회의 주역'이라는 평신도 본연의 위상이 나날이 회복되어가고 있다는 징후가 교회 안

 

팎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여려 교구에서 시행되고 있는 소공동체 운동, 시노두스, 다양한 평신도 사도직 교육

 

및 활동 등으로 인해 확실히 요즈음의 평신도들은 옛날 같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척 고무적인 일입니다.

 

긍정적이고 평가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적당히 뭉뚱그려서 만족해 할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사랑할수록 매를 들어야 하고 아낄 수

 

록 부족함을 찾아 메꾸어 주려는 냉철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이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다수의 평신도을이 여전히 ' 호구 '의 상태로 머물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이유가

 

여럿 있습니다.

 

 

첫째, 스스로를 ' 호구 '로 알고 있다.

 

그렇게도 많은 계몽의 기회가 있었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평신도들이 성직자 및 수도자와 평신도 사이에 위

 

계적 차등을 두는 사고 방식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자신들은 그저 위에서 지시하고 시키는 데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의식수준을 벗어나지 뭇하고 있습니다.

 

둘째, ' 호구 '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역량이 ' 호구 '이다.

 

들은 풍월에 교회에서 평신도들이 차지하는 능동적인 역할과 위상에 대해 적극적인 인식은 갖게 되었지만, 말

 

과 생각만일 뿐 전혀 역량을 갖추지 못한 평신도들이 많습니다. 신앙의 기본기가 허술하니 ' 호구 '소리를 안들

 

을 수가 없습니다.

 

셋째, ' 호구 '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영성이 ' 호구 '이다.

 

신앙공부도 많이 하고 교육도 많이 받아서 역량을 갖춘 이라도 영성이 부족한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영성이

 

모자라는 이들은 교회를 보는 시야가 편협하거나 포용하는 가슴이 좁고 교회 안에서의 성령의 역사를 실질적으

 

로 믿는 실천적인 신앙이 부족하여 교회의 일을 인간적인 잣대로만 판단하고 해결하려 합니다. 이런 이들은 교

 

회 내에서 강도 있는 발언도 하고 열심히 활동도 하지만,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기여하기보다는 공동체를 분열

 

시키려는 소위 '악의 세력'에 이용당할 소지가 많습니다. 결국, 성숙된 그리스도인으로 봐주기 어려운 사람들입

 

니다.

 

넷째, 비대한 교회 구조가 ' 호구 '를 양산한다.

 

비대한 교회에서는 겉으로는 사람들이 북적대고 살아 있는 듯이 보이지만 자세히 통계를 내보면 5 - 10%의

 

신도들만 신앙생활을 할 뿐 절대 다수는 익명으로 숨어 지내고, 신앙적인 무능력과 무기력에서 헤어나질 못 하

 

고 있습니다. 거의 유일한 대안이 소공동체 운동으로 개선되고는 있다해도 비대한 교회가 갖고 있는 구조적인

 

약점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입니다.

 

다섯째, 사제들이 ' 호구 '를 좋아한다.

 

냉정하게 말해서, 평신도가 '호구 '신세를 면하면 사제들에게는 좋은 면도 있는 반면 곤란한 점도 생깁니다.

 

점점 똑똑해 지는 신도들을 사목해야 하는 사제의 부담이 이만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야하고 영성적으로도 깨어 있어야 하니, 귀찮기도 할 것입니다. 하늘같은 사제의 권위가 도전 받지 않기 위해

 

서는 오히려 평신도가 덜 똑똑했으면 좋겠다는 은근한 바램에서 ' 호구 '를 좋아하는 마음을 우리 사제들은 갖

 

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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