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동성당 게시판

권신부님 어떻게 된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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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skylee] 쪽지 캡슐

1999-12-10 ㅣ No.321

권신부님 !

안녕하세요? 성당에서 늘 뵙다가 이렇게 글로 인사드리니 기분이 묘한데요.

신부님. 신부님 말씀 한마디가 이렇게 저를 혼란스럽게 하다니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일전에 신부님께서 강론중에 "하루에 한가지씩이라도 감사할 일을 찿으라"고 하시길레

좋은 말씀이다 싶어 저희 가족기도 중에 "자 이제부터 매일 한가지씩 하느님께 감사드릴

일을 이야기하자"고 했죠. 당연히 신부님 말씀이니까 군에 가 있는 저의 큰 놈에게도 편지로

알렸죠.  처음에는 좀 쑥스럽기도 하고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생활에서

감사할 일을 찿기란 쉬운일이 아니었죠. 그런데 ...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날 저의 자매가 "오늘은 당신 와이샤스 세탁하는 일을 하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싶어요."하지 않겠어요. 아니 이놈의 여편네가 벌써 갈 때가 되었나하고 걱정이 되었답니다.

그도 그럴것이 직장생활 20년이 넘게 매일매일 와이샤스를 갈아입고 다녀야 했고 그것도

흰색이 아니면 안되니 짜증을 내면서 "하루 더 입어도 되겠네" "색깔있는 것은 왜 못입어?"

(그래서 성당 올 때는 파란 와이샤스 입고 옴)하던 때가 언젠데  

그런데 감사한 일이라니?  당연히 물어 보았죠. 그런데 한다는 말이 "IMF가 끝났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실업자가 많은데 당신도 실업자가 되면 와이샤스 세탁하는 일이 없어질게

아니냐"며 이것보다 더 감사해야 할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합니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저의 경우입니다. 저는 성격이 부드럽지도 못하고 원칙을 고수하는 편이라 부하직원들이

꽤나 어려워 하는 편입니다. 당연히 부서를 운영하는 데는 그래야 한다고 믿어 왔었고요.

그런데 일전에 직원 한사람이 늦게 출근했었습니다. 8시까지 출근해야 하는데 9시쯤 왔었습

니다. 그 직원은 머리를 끍적이며 "죄송합니다. 자명종 시계가 고장이 났는지 늦게 일어났습

니다."하길레 그따위 정신상태로 할려고 하다가 신부님 말씀이 갑자기 생각이 나서 "그래

별 일없이 출근하니 다행이군. 나는 무슨 사고라도 나지 않았나 걱정했네 아무일 없이

출근하니까 고마워."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습니다.

그 직원이 사무실에 들어 올 때 "이제 죽었구나."하고 들어왔는지 제 말에 어안이 벙벙해

하더군요. 점심시간에 직원들이 사무실에 없어서 전화받을 사람도 없이 휴게실에 모여

노닥거린다고 야단하러 휴게실에 갔더니 우리 부서 직원들이 모여서 떠들고 있더군요.

나중에 여직원한테 살짝 물어 보았죠 그랬더니  그랬더니 말입니다.

 

"아이고 우리 실장님이 50도 못 채우고 가시는구나. 사람이 안 하던 행동을 하면 죽는다는

데."하고 떠들었다는 겁니다. 나중에 회식자리에서 그 직원이 하던 말이 영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실장님. 그 때 지각했다고 야단이라도 맞았으면 금방 잊어 버렸을

텐데 오히려 고맙다고 하니까 그 날 퇴근 길에 자명종 시계 2개를 샀고 아침에 깜짝 놀라

일어나니 새벽 4시였습니다. 그 후로 한 잠도 못잤습니다." 아니 신부님! 지가 잠 못잔 것

까지 제가 책임져야 합니까? 그 다음은 저의 큰 놈 이야기입니다.

 

시간은 유수같다고 하지만 벌써 제대 날짜가 100일도 안 남았습니다.         

요사이는 고참이라 내무반장을 한다는군요. 그런데 어느날 저녁 점호시간에

우리도 하루에 한사람씩 감사해야 할 일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한 다음

무슨 칭찬 릴레이처럼 했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제일 쫄병이 지명을 받자 "저는 최병장님

께 감사드리겠습니다." 하는게 아니겠어요. 아니 하느님께 감사드릴 일이라고 제가 분명히

편지에 써서 보냈는데 왠 최병장? 하면서 아들 놈의 편지를 계속 읽어 내려갔죠.

최병장은 부대내에서도 악명(?)높은 고참이었는데 아들 놈이 점호시간에 감사할 일을 한사람씩 이야기하자 달라졌답니다. 한 밤중에 근무교대를 위해 깨울 때 머리카락만 건들여

도 일어나야지 그렇지 않으면 야단이 났답니다. 그런데 그날밤 그 쫄병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머리카락을 통째로 뽑아도 안 일어 나길레 10분이나 기다리다 깨우고 기다리다 깨우고

했답니다. 겨우 일어나서 그 최병장을 보자 "이젠 죽었구나"했는데 왠 걸

"피곤하지 그래도 군인이 근무는 서야지."하면서 어깨를 툭툭 치면서 격려하더라는 겁니다.

신부님 일련의 사건이 어떻게 됩겁니까? 혼란스럽기도하고 뭐가 뭔지 정리가 안됩니다.

제가 혹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겠습니다.(판공성사 전까지)

아무쪼록 영육간에 건강하시고 좋은 말씀 깊이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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