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양동성당 게시판
태풍이 지나간 가을을 맞이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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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시죠! 요즘 날씨가 너무 좋지 않습니까? 더두 덜두 말고 날씨가 이맘 때만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며칠 전에 전국을 휩쓸고 갔던 태풍 때문에 가슴을 태우는 농부들을 생각하면 좀 죄송한 마음도 들긴하지만...
요즘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제 아무리 우리가 열심히 씨를 뿌리고 가꾸었다고 할지라도 결국 그 모든 것들을 풍성한 열매로 거두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는 생각을요.
물론 우리의 몫에 대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겠지만요. 반드시 우리의 노력과 정성에 따라 모든 열매가 정비례하지만은 않는 것이 이 세상의 논리가 아닐까 싶어요. 때문에 결국 우리는 하느님께 끝까지 의지할 수 밖에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이에 요즘 떠오르는 시 하나를 소개할께요. 가을의 추수 앞에서 이젠 온전히 하느님의 은총에 기댈 수 밖에 없는 한 농부의 나약하지만 겸손한 모습을 그린 시에요. 아마 여러분들도 다 아실겁니다.
가을날
R.M.릴케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에다는 많은 바람을 풀어 놓으십시오
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 그들을 완성시켜 마지막 단맛이 짙은 포도주 속에 스미게 하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로도 고독하게 살면서 밤새워,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러다가 바람에 불려 나뭇잎이 날릴때면 불안스러이 이리저리 가로수길을 헤맬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