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홀로 있는 시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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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8-16 ㅣ No.5239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자기가 살던 집을 훌쩍 나오라는 소리가 아니다. 낡은 생각에서, 낡은 생활 습관에서 떨치고 나오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눌러 앉아서 세상 흐름대로 따르다 보면 자기 빛깔도 없어지고 자기 삶도 없어진다. 자주적으로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남의 장단에 의해서, 마치 어떤 흐름에 의해서 삶에 표류당하는 것처럼 되어 버린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곧 자기답게 사는 것이다. 자기답게 거듭거듭 시작하며 사는 일이다. 낡은 탈로부터, 낡은 울타리로부터, 낡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행명은 늘 새롭다. 생명은 늘 흐르는 강물처럼 새롭다. 그런데 틀에 갇히면, 늪에 갇히면, 그것이 상하고 만다. 거듭거듭 둘레에 에워싼 제방을 무너뜨리고라도 늘 흐르는 쪽으로 살아야 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일단 새롭게 살기가 누구보다도 손쉬울 것이다. 나는 이렇게 묻는다. 진짜 어떻게 사는 것이 나답게 사는 것인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늘 스스로 묻는다. 그러면서 똑같은 일을 되풀이라고 깊진 않다. 늘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

가령 서울에 오면 가끔 큰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는데, 나하고는 전혀 상관도 없는, 내 전공분야하고는 상관도 없는 책들을 고르기도 한다. 그것들을 읽어 보면 거기서 얻을 게 많다. 요즘 우리나라에도 많이 소개되는 시오노 나나미라는 일본 작가의 책을 읽어 봤더니 매력 있는 남성에 대한 이론이 있었다. 자기 빛갈을 지니고, 세속에 타협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매력 있는 남성의 하나라는 것이다.

그런 책을 통해서 과연 나는 남으로부터 매력을 즈낄 수 있는 삶인가 아닌가 하는 것을 돌아볼 수 있다. 내 삶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나는 내 전공과는 상관없는 책이나 사상을 접하곤 한다. 나는 그렇게 늘 새롭게 살고 싶다.

 

 

내가 전에 살던 볼일암에는 서너 달에 한 번씩 가끔 가다 들른다.

요즘 강원도에 살면서 거처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전기도 안 들어 오고 전화도 없는데, 그전 내 성격 같아서는 기를 쓰고라도 전기를 끌어들였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거기서 사는 의미가 없다. 어딜 가나 전기는 있다.

또 일단 전기가 들어와 보라. 이제 냉장고다, 텔레비젼이다, 오디오다, 비디오다, 그밖에 무슨 빵 굽는 기계다, 세탁기다, 이게 다 곁들여 올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그런 상중에 사는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요즘에 와서는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몰라도 주어진 여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대로 수용하는 쪽으로 돌아가고 있다.

 

 

불편하다는 것, 그것이 좋은 것이다. 우리가 너무 편리하게 살다 보니까 잠시라도 전기가 나가고 전화가 끊어지면 안절부절 못하고 모든 기능이 정지된다. 그러나 내가 사는 곳에는 그런 것들이 아예 없고, 또한 필요로 하지도 않다.

나는 이 땅에 살면서도 전기세와 수도세를 내지 않는다. 따라서 내 자신의 어떤 잠재력, 원시적이고 야성적인 잠재력이 마음껏 드러난다.

지난 해 내가 변소를 하나 만들었는데 그 전에는 변소가 없었다. 사람들이 들으면 조금 언짢은 소리겠지만, 비 오는 날은 우산을 쓰고 밭에 가서 구덩이를 파 가지고, 거기서 동물처럼 배설하고는 덮어 버렸다.

그런데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내리면 그것도 불편했다. 그래서 개울가에서 막돌을 주워다가 쌓아올리고 굴피로 지붕을 덮어 뒷간을 하나 만들었다.

혼자 하니까 시간이 많이 걸렸다. 한 달 가까이 걸렸는데 좀 불편하지만 최소한 내가 노력해서 그런 건조물을 짓고 나니까 훨씬 흐뭇하고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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