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시편을 통한 생활묵상 - 시편8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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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희 [veronica1] 쪽지 캡슐

2003-08-18 ㅣ No.5248

 

 

           하느님, 침묵을 깨소서.

           잠잠하지도 쉬지도 마소서. 하느님,

           당신의 회리바람으로 저들을 쓸어 가소서.

           돌풍으로 저들을 어지럽게 하소서.

           저들이 당신의 이름을 부르기까지

           야훼여, 그 얼굴에 부끄러움을 씌워 주소서.

           온 세상에 지극히 높으신 분,

           당신의 이름만이 야훼이신 줄을 알게 하소서.

 

 

 

  가끔 이런 질문을 받곤 합니다.

  구약의 하느님은 복수의 하느님이 아닌가?  사랑의 하느님이 왜 이처럼 저주와 복수의 하느님으로 나타나는가?  왜 항상 이스라엘 민족 편에서만 일하시는 편애를 보이시는가?

 

  구약 성서는 신약의 저자들처럼 예수님의 구원적 사랑에 감격하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보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래서 구약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스라엘 민족을 근거로 해서 신앙 고백을 하고 역사를 쓰고 또한 신학적인 서술을 한 것입니다.

 

  시편 역시 구약 성서의 기본적인 입장을 그대로 따른 것이구요.  따라서 이미 본 것처럼 하느님의 정의가 실현되고 하느님의 공의가 만백성에게 미치는 일을 위해서는 하느님이 이런 악의 세력을 무너뜨려 주시기를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조용히 사색, 성찰할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철학자 칸트는 그지없이 ’고속화’되어 가는 문명을 인류의 비극적 시행 착오라고 말하고, 언젠가 산책길을 걷듯이 ’초저속화’ 사회가 다가올 것이라는 저속 문화론을 펴기도 했습니다.

  머리(생각)가 큰 사람은 몸이 작아지는 기현상이 생기기도 합니다.  아주 위험한 일이며, 실제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요.  아무쪼록 생각과 행동이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 사랑과 진실 <기쁜소식>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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