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홀로 있는 시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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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8-19 ㅣ No.5251

 

우리가 너무 편리한 문명의 이기에만 의존하다 보니까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이 자꾸만 소멸되어 간다. 그리하여 문명의 노예처럼, 조금만 문명의 장치가 고장나도 옴짝 못할 정도가 되었다.

내가 사는 곳에는 다행히 전기가 안 들어오기 때문에 불편이야 하지만 마음은 더 편하다.

전에는 촛불을 켰는데 겨울에는 외풍에 초가 팔락거려서 요샌 램프를 켠다. 저녁 예불 끝에 램프를 켜고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그 불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월이 고개를 넘는 것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그런데 만일 전기가 들어오고 여러가지 편리한 장치가 있다면 그걸 누리지 못할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밖에서 오는 행복도 있겠지만 안에서 향기처럼, 꽃향기처럼 피어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그것은 많고 큰 데서 오는 것이 아니고 지극히 사소하고 아주 조그마한 데서 찾아온다. 조그만 것에서 잔잔한 기쁨이나 고마움 같은 것을 누릴 때 그것이 행복이다.

너무 문명의 이기에 의존하지 말고 때로는 밤에 텔레비전도 다 끄고, 전깃불도 끄고, 촛불이라도 한번 켜보라.

그러면 산중은 아니더라도 산중의 그윽함을 간접적으로라도 누릴 수가 있다.

또한 가족들끼리, 아니면 한 두 사람이라도 조촐한 녹차를 마시면서 잔잔한 얘기를 나룰 수 있다면 거기서 또한 삶의 향기가 피어나올 수 있다.

때로는 전화도 내려놓고, 신문도 보지 말고, 단 십 분이든 삼십 분이든 허리를 바짝 펴고 앉아서 나는 누구인가 물어 보라.

이렇게 스스로 묻는 속에서 근원적인 삶의 뿌리 같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명의 커다란 이기로부터 벗어나 하루 한 순간만이라도 순수하게 홀로 있는 시간을 갖는다면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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