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머리 두갈래 딴 이쁜 소녀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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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경 [lsk55] 쪽지 캡슐

2003-08-19 ㅣ No.5253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산성당

學窓時節 숨겨둔 아련한 追憶


머리 두갈래 딴 예쁜 소녀

가난하고 배고팠던 소학교에 다니던 시절, 축구 선수는 학교에서 옥수수 빵을 2개 지급 한다기에 저는 축구선수로 자청하고 나섰습니다. 비록 지금은 배불뚝이 금복주 같은 처지지만, 코흘리던 시절 한때지만 사실 우리 동네에서는 이름을 좀 날렸지요.

어떻든 그 후, 중학교 때에는 국화빵 이 등장하고 또 이어 정부의 분식 장려운동이 거세게 일자, 국수와 찐빵이 새로운 인기를 누리던 시절이 도래 되면서부터 옥수수 빵은 자연히 시들어 졌지만, 그후 고교시절에는 “짜장면과 삼양 라면”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 찾아 왔습니다.

그래서 진빵도 서서히 사글어 들어갔지요. 오늘날은 “피자가 인기를 끌고 있듯이...”



 


고교학창시절 크리스마스 연극을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기념촬영한 전경입니다.


하여간 어린시절 동네 村의 논밭에서 축구경기를 허벌나게 많이 하면서 짜장면 내기를 통해 국가시책인 분식 장려 운동에 크게 일조를 한 애국학생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밟으면서 비교적 건강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오늘 글의 주 요지는 학창시절 성당에서 학생회 활동을 할 때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필을 들었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 담을 꺼내 볼까 합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지요.



 


위 연극 공연시의 대비마마역으로 출현했던 조여사님의 40년 후의 모습은 아래 마니산 테마여행사진에서 볼수 있습니다. (아래의 사진에 빨간 파카를 입은 분이 조여사님입니다.)


고교 학창시절 성당에서 학생회 활동(당시는 "쎌"활동이라 하였음)을 하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우리 성당의 고교학생회 내에는 그때 머리를 두갈래로 딴 예쁜 세라복을 입은 엄청 이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가시나는 우리 학생회 회합에 나오기 보다는 “JC 모임”에만 꼬박 꼬박 참석하고 우리 cell회합에는 결석이 아주 잦았습니다.

그 가시난 우리 회합에서 직책이 부회장으로 되어있는데도 말입니다요. 저는 그때 정말 사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뽀족한 대책이 없었드랬지요.

나중에 원일을 알고 보니깐, 그쪽 "JC 활동“하는 곳에는 타 개신교 출신의 떵빨 큰 어떤 괜찮은 머스마가 있는 탓인 것 같았습니다.

그 머스마 넘은 같은 학교에 다녔기에 평소 좀 안면이 많은 친구였는데, 넘은 읍내에 있는 큰 장로교회의 학생부 대표였습니다.

어느날 저는 그느마와 우연히 조우하였는데, 대화중, 얼떨 결에 그느마 교회 팀과 우리 성당의 학생회와 축구경기를 제안하게 되었지요.

넘은 자기다 다니는 교회에는 유명한 축구선수도 있었던 지라 “우릴 깔보며 아주 가소롭게 여겼습니다.”성질이 좀 급하고 자존심이 강했던 상기 본인은 그저 “정의감에 불타서...” 지든 이기든 용기를 내어 당시 좀 큰 껀을 제안했습니다.

즉, 축구시합에 진편은 쩐과 더불어 그날 참가한 모든 학생(응원단 포함)들에게 빵집을 전세내 먹고 싶은 만큼 몽땅 빵값을 제공하기로...

하여 저는 우리 성당의 학생회 후배들을 며칠동안 스파르타 훈련을 시켰지요.

드디어 벼그로 벼르던 공설운동장에서 넘의 교회 팀과 우리 팀이 결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큰 소리 팡팡치는 넘의 코를 반드시 납작하게 만들어 주어야 겠다는 불타는 승부욕에 불탔습니다.

특히 기고만장한 머리 두갈래 딴 좀 이쁘장한 우리 성당의 그 가시나의 존심을 확실하게 밟고 싶어서

악착같이 공을 쫓아 달렸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입당동 성당팀은 4 : 0이라는 앞도적인 점수차로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흑~흑~흑~

그때의 그 감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당시 강릉 임당동 성당 학생회 멤버들입니다. 이들은 강릉 감리교 교회 학생들과 친선축구경기에서 맹활략을 펼친 그 주인공들입니다.

좌로부터 김남철, 장호열, 박은식, 이상경, 김용일, 김남일 입니다.


그리하여 강릉 임당동 성당 옆, 오복당이라는 고로게 빵집에서 그날 밤의 파티는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그 후부터 그 머리 두갈래 딴 이쁜 가시나는 우리 Call 회합에 열심히 참석 하였답니다.

어느덧 30여년이 훨씬 지났지만, 당시 성당에서 학생회 활동을 함께하던 친구들을 저는 지금도 매 분기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답니다.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에 들었건만, 늘 만나면 한떼거리인 아자씨들과 아줌씨들도 “야~! 자~!”하는 반말로 대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답니다. 중년의 나이지만, 아이처럼 산다는 것이 참 행복이지요.



 


위의 사진은 그 옛날 학창시절에 만난 40여년지기의 친구들과 함께 대둔산과 마이산으로 테마여행을 갔을 때의 전경입니다.

물론 이중에 검은 빵모자를 쓴 남정네(조규홍)는 당시 강릉 감리교회와 우리 임당동 성당의 학생회와 축구경기를 했을 때의 주역이지요.


2003년 8월 19일

용문동 구역장 李 相卿 가브리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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