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모니카언니의글이퍼올려준기억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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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호 [cary] 쪽지 캡슐

2000-04-04 ㅣ No.717

80년대초 경향잡지에 근무할 때의 일입니다.

제가 편집을 맡은 코너 중에 ’내가 좋아하는 성구(聖句)’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왕성하게 활동하는 가톨릭 명사를 매달 한 분씩 선정하여 그분이 좋아하는 성서 구절과 함께 그 구절을 특별히 좋아하는 연유라든가 생활에 밀착된 얘기를 듣는 코너입니다. 신자들에게 ’이런 분도 우리 신자구나’ 하는 자긍심을 가지게 하려는 의도로 마련된 것이지요.

모두 엄청 바쁘셔서 시간내기 어려우시지만, 이런 의도를 잘 말씀드리고 거듭 간청하면 대개는 응해 주시는 편이었지요.

새내기였던 저는 겁없이 떼를 써 귀한 글들을 곧잘 얻어냈는데, 긑내 뜻을 이루지 못한 두 분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한 분은 수필가이신 피천득 선생님이고, 또 한 분이 바로 봉두완 선생님입니다.

피 선생님은 원래 수필 외의 글을 쓰시지 않기로 유명한 분이어서 기대할 수 없었지만, 제가 워낙 좋아하는 분이어서 펜레터 삼아 가끔 청탁서를 올린 것이고(작년인가 TV에서 아기처럼 순하게 늙으신 선생님을 뵙고 흐뭇했습니다),

당시 "안녕하십니까,봉두완입니다"를 진행하시던 봉 선생님은 여러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동하시며 거침없이 내뱉으시는 말로 주목받던 분이어서 젊은이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어 거듭 공을 들인 것인데 끝내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저도 오기로 잊을 만하면 청탁서 올리고 이를 부득부득 갈기를 계속했지만...

해서 제 기억 속의 그분은 샤프하지만 다소 오만한 지식인쯤이었지요.

 

오늘 모니카 언니의 글에서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아가시는 그분의 모습을 뵈니, 기억 저 한켠에 숨어 있던 씁쓸한 기억이 가시고 새삼 존경의 마음으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우리는 얼마나 사람의 한 면만 보고 단정짓는 잘못을 저지르며 사는지요...

가정이라는 작은 울타리에 안주해 사는 나...

나를 아는 사람들은 그나마 있는 나의 좋은 면만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은근히 걱정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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