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성당 게시판
행복한 자리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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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팔나무 곁의
구멍양말은 추웠습니다
발가락 끝에 난 구멍으로 온통 차가운
겨울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으니까요
옆에 널려 있는 붉은 색 털 양말은
아침부터 양말들의 시선을 듬뿍 받고 있었습니다
새로 이사온 하얀 색 실 양말도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습니다
삶의 시작이 누군가에게 받는 관심이라면 구멍양말의 삶은 어디에도
그 시작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삶의 어떤 부분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어쩌면 삶이란 이렇게 화려한 색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구멍양말은 슬퍼했습니다
구멍양말은 양팔나무를 가로질러 활처럼 휘어있는 붉은 빨래줄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 빨랫줄님.. 저는 왜 이렇게 구멍이 나서 누구하고도 어울릴 수 없나요?"-
가만히 겨울바람에 이리저리 산들거리던 빨랫줄이 말했습니다
[ 넌 어울릴 수 있어.."]
-어울릴 수 있다니요?-
[ 누구에게나 시련은 있어!
그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한다면
넌 조금 전 시궁창으로 떨어진 파란 양말이 되는 거야..]
구멍양말은 파란양말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어..
이곳에 남는다면 넌 평생 남의 발바닥 냄새만 맡다가
끝날 걸? 벗어나는 거야.. 힘든 삶을 고스란히 안고 갈 수 없잖아?..=
그렇게 파란양말은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다 그만 시궁창으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 그러나 이런 삶은 너무나 힘겨워요. 아침부터 저에게 눈을 돌려주는
양말은 하나도 없었다고요"
[ 겉으로 보이는 삶에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어!
중요한 건 너의 마음속에 깃 든 삶이 누군가에게
진정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야..
보이는 삶의 절벽으로 떨어지지마!
나 역시 힘들단다.. 너희들 말고, 바지들하고
잠바들을 매달고 있으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
그런데 난 그렇게 할 수 없단다..]
구멍양말이 궁금한 듯 물어보았습니다
- 왜죠?-
[ 내가 포기한다면 빨래들은 어떻게 되겠니?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나 깊이 관계를 맺고 있단다]
- 그러나 그 관계의 얽힘이 너무나도 힘들고 슬퍼요...-
[ 슬픈가보구나..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어.
슬프다는 건 행복이 이미 너에게 오기 시작했다는 말이야..
너의 슬픔의 강이 어디로 이어있는지 잘 보렴..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수 있는...
자신의 존재를 찾는 시간이 올 거야]
구멍 양말은 기분이 좀 나아졌습니다
이제 다른 양말들이 놀려도 그 자리에 걸린 채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금산댁 아줌마가 깜빡 잊고
걷어 가지 않은 어두운 밤이 와도
아침의 햇살 한 줌을 뜨겁게 집히며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겨울이 오고.
세상에는 첫눈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세상의 첫 눈은
겨울 추위에 선인장을 따스하게 뒤덮고 있는
구멍 양말 위에도 말없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 가시에 온 몸이 따끔거려서
눈물이 납니다
그래도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꾹/
/ 모두 건강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