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성당 게시판

행복한 자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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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balumi] 쪽지 캡슐

2001-04-30 ㅣ No.3903

 

 

 

 

양팔나무 곁의

 

 

 

구멍양말은 추웠습니다

 

 

 

발가락 끝에 난 구멍으로 온통 차가운

 

 

 

겨울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으니까요

 

 

 

옆에 널려 있는 붉은 색 털 양말은

 

 

 

아침부터 양말들의 시선을 듬뿍 받고 있었습니다

 

 

 

새로 이사온 하얀 색 실 양말도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습니다

 

 

 

삶의 시작이 누군가에게 받는 관심이라면 구멍양말의 삶은 어디에도

 

 

 

그 시작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삶의 어떤 부분도 쉽지가 않았습니다

 

 

 

어쩌면 삶이란 이렇게 화려한 색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구멍양말은 슬퍼했습니다

 

 

 

구멍양말은 양팔나무를 가로질러 활처럼 휘어있는 붉은 빨래줄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 빨랫줄님.. 저는 왜 이렇게 구멍이 나서 누구하고도 어울릴 수 없나요?"-

 

 

 

 

 

 

 

 가만히 겨울바람에 이리저리 산들거리던 빨랫줄이 말했습니다

 

 

 

 

 

 

 

[ 넌 어울릴 수 있어.."]

 

 

 

 

 

 

 

-어울릴 수 있다니요?-

 

 

 

 

 

 

 

[ 누구에게나 시련은 있어!

 

 

 

  그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한다면

 

 

 

  넌 조금 전 시궁창으로 떨어진 파란 양말이 되는 거야..]

 

 

 

 

 

 

 

구멍양말은 파란양말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어..

 

 

 

  이곳에 남는다면 넌 평생 남의 발바닥 냄새만 맡다가

 

 

 

  끝날 걸? 벗어나는 거야.. 힘든 삶을 고스란히 안고 갈 수 없잖아?..=

 

 

 

  

 

 

 

그렇게 파란양말은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다 그만 시궁창으로 빠지게 되었습니다

 

 

 

 

 

 

 

- 그러나 이런 삶은 너무나 힘겨워요. 아침부터 저에게 눈을 돌려주는

 

 

 

  양말은 하나도 없었다고요"

 

 

 

 

 

 

 

[ 겉으로 보이는 삶에 너무 실망할 필요는 없어!

 

 

 

  중요한 건 너의 마음속에 깃 든 삶이 누군가에게

 

 

 

  진정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야..

 

 

 

  보이는 삶의 절벽으로 떨어지지마!

 

 

 

  나 역시 힘들단다.. 너희들 말고, 바지들하고

 

 

 

  잠바들을 매달고 있으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아!

 

 

 

  그런데 난 그렇게 할 수 없단다..]

 

 

 

 

 

 

 

구멍양말이 궁금한 듯 물어보았습니다

 

 

 

 

 

 

 

- 왜죠?-

 

 

 

 

 

 

 

[ 내가 포기한다면 빨래들은 어떻게 되겠니?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나 깊이 관계를 맺고 있단다]

 

 

 

  

 

 

 

- 그러나 그 관계의 얽힘이 너무나도 힘들고 슬퍼요...-

 

 

 

 

 

 

 

[ 슬픈가보구나..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어.

 

 

 

  슬프다는 건 행복이 이미 너에게 오기 시작했다는 말이야..

 

 

 

  너의 슬픔의 강이 어디로 이어있는지 잘 보렴..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수 있는...

 

 

 

  자신의 존재를 찾는 시간이 올 거야]

 

 

 

 

 

 

 

 

 

 

 

구멍 양말은 기분이 좀 나아졌습니다

 

 

 

이제 다른 양말들이 놀려도 그 자리에 걸린 채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금산댁 아줌마가 깜빡 잊고

 

 

 

걷어 가지 않은 어두운 밤이 와도

 

 

 

아침의 햇살 한 줌을 뜨겁게 집히며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겨울이 오고.

 

 

 

세상에는 첫눈 내렸습니다

 

 

 

그리고 그 세상의 첫 눈은

 

 

 

겨울 추위에 선인장을 따스하게 뒤덮고 있는

 

 

 

구멍 양말 위에도 말없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 가시에 온 몸이 따끔거려서

 

 

 

  눈물이 납니다

 

 

 

  그래도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꾹/

 

 

 

 

 

/ 모두 건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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