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동성당 게시판

나눔의 쌀통

인쇄

임용학 [yhim] 쪽지 캡슐

1999-07-16 ㅣ No.784

나눔의 쌀통

  주일 미사 때면 받아보는 주보의 본당소식란에 "나눔의 쌀통에 쌀이 떨어졌습니다"라는 짧

은 글이 실렸다.

아뿔싸 전화 한 통으로 쌀을 배달 받지 못하는 이웃이 있음을 그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만약에라도 끼니를 구하지 못한 우리 이웃이 어쩌다 용기를 내어 쌀통을 찾았을 때

그것이 빈 통이었다면 얼마나 충격일까 그 아픔을 짚어 본다.

보채는 아이와 돌아오지 않는 남편 생각에 쏟아지는 눈물을 닦으며 발길을 돌리기까지 얼마

나 많이 하느님을 원망하였겠는가,

그럼에도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전쟁후 우리 어머니들이 겪었던 하루살이가 오늘날에도 엄연히 상존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성체조배를 마치고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교리실로 향하는 문이 둘 있는데 그 한 곳

은 신자들이 그의 사용하지 않는 지하통로이다. 그곳 계단 모퉁이에 조그만 쌀통이 휑하니  

놓여있다, 관심 있게 보는 사람 외는 그냥 지나치기 일쑤인 그런 볼품없는 통인데, 누군가

살며시 와서 아무도 모르게 손가방에서 쌀을 꺼내어 통에 넣고 가면, 또 알지 못하는 우리

이웃이 오늘 먹을 만큼을 가져가는 "마르지 않는 샘"인 것이다. 보는 사람이 없으니 넣고도

생색을 낼 바도 아니지만 가져가는 사람이 부끄러워 할 것도 없다. 다만 나중에 돈 많이 벌

면 몇 배 더 채워 놓겠오 하는 독백이나 있을까, 그저 하느님의 것을 되돌려 주고받을 뿐이

다.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시는 하느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기에 오늘도 그 "나눔의 쌀통"은 그 자

리에서 그렇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주일 오후 그 쌀통에는 쌀이 가득하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주보에 싣지 않아도 될 모자라

기만 한 우리 생각이었나 보다



34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