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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있는 나다"--반석회 2월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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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록 [peterkauh] 쪽지 캡슐

2009-02-04 ㅣ No.6743

 
 
"편향적인 특질을 지닌 체 다른 쪽과의 조화를 이루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는 자기 영혼에 대한 독재를 하는
 것이다."
 
2월 1일, 서미원 수잔나 수녀님과 함께 한 반석회 월례 세미나의 주제는 "통합적 인성"의 원리였다.
 
(진리를 탐구하고 아낌없이 나누는 수도자와 반석회의 주기적인 나눔 !
그의 탐구와 묵상에 귀를 기울여 자신의 인생여정을 반추해보고 마음과 자세를 새롭게 하는 "청년"의 열정이 반석회에 가득하다. 그것도 교중미사 후 점심을 한 시간이나 미루면서도 영성의 양식에 감사하고 토론하고 유머로 마무리 하는 분들. 필자는 그분들의 한 마디 한마디와 삶의 자세에서 인생을 새로 배우는 은총과 즐거움에 빠져있다.  벌써 2년 째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으니. 교회 문턱을 넘는 순간 세상의 얼룩으로 가득찬 우리가 이처럼 정화되며 "아가페"적 경지에 이를 수 있도록 해주시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거기에서 우리의 본향을 찾을 수 있음에)  
 
 본당의 수잔나 수녀님께서 같은 주제로 지난 해에 이어 이번 반석회 월례 세미나에서 해주신 말씀의 배경은 "로맨틱 러브에 대한 융의 심리학적 이해-We"라는 로버트 A 존슨의 작품을 인용한 수녀님 고유의 영성적 인성론이다.  한편 We는 12세기의 신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융의 심리학적 논리로 분석한 것이다. (아래 세미나 요지)
 
 수잔나 수녀님의 착안은 전통적인 남성편향 중심의 관념이 지배해온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 불완전하고 비극적인  사회현상의 치유책을 인성의 통합적 조화에서 모색하는데 있다.
 
 남성의 땅 콘월에서 태어난 트리스탄은 왕인 백부 밑에서  남성적 매력인 지(智)와 용(勇)을 겸비한 기사로 성장했고
 적국 아일랜드로부터 나라를 구했지만, 상처투성이인 그의 무의식은 끊임없이 그를 이졸데가 살고있는 여성의 땅 아일랜드로 끌어당긴다.  불완전한 남성성(아니무스 animus)이 통합과 조화(치유)를 갈구하며 여성성(아니마 anima)을 향해 표류하는 여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대인을 상징하는 트리스탄은 자신이 갈구하는 여성상(아니마)을 이졸데에게 투사하고 이졸데 역시 자신의 아니무스를 트리스탄에게 투사하며 서로를 향한 내적(무의식적) 통합의 여정에 몰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것에 실패하며 서로가 죽음을 맞게된다. (참고로 신화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이후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쥴리엣" 의 모태가 된 것으로 알려진다.)
 
 "트리스탄처럼 우리는 모두가 슬픔의 자식들이다. 
비록 외견상 현대인은 모든 것을 다 누리고 사는듯 보이지만 내적인 곤궁에 고통받고 있다. 인류 역사상 현대인 만큼 외로움과 소외감을 겪으며 가치에 대한 혼란을 겪는 신경증적인 사람들이 존재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모루체같은 강한 힘과 전자 크기 정도의 미세한 정밀함으로 자연을 지배해 왔다.  역사상 선례가 없는 엄청난 부를 축적했지만 우리 가운데 자신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간관계에서 안전함을 느끼고 사랑에 만족하면서 자신이 사는 세상을 편안한 곳으로 느끼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대다수의 우리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 그리고 사랑과 관계를 찾아 떠다니고 있다. "  
 
 이기적 자의식(ego)과 사회생활에서 형성된 거짓 자아(페르조나 persona)에서 완전한 참자아(self)를 찾아서, 편향과 극단에 치우쳐 있는 불완전한 현실에서 통합과 조화의 전일성(wholeness)을 향한 여정에서 .... .
 
 아마도 인류의 역사상 영웅적인 인물은 많았지만 지속적으로 존경받는 위인들은 흔히들 갈등을 빚어 공유될 수 없으리라고 여기는 전혀 상반된 특질들을 조화롭게 통합하여 전일성의 참자아를 갖추었던 분들이었을 것이다.
 명장 이순신은 남성적인 용맹함 못지 않게  긍정적인 여성성, 즉 배려와 헌신 그리고 지혜와 예지를 갖추고 있지 않았던가. 반면 신사임당은 자애로운 여성성 못지 않게 율곡을 교육하고 자아를 실현함에 있어 남성적 단호함과 추진력을 갖추고 있지 않았던가.
 
 하물며 그리스도 예수님과 성모님의  생애에서 보는 상반된 면들의 통합적 조화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무의식이 주는 통합과 조화의 메시지를 따라 살며 전일성을 내면화 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 것은 참 자유와 만나기 위해서다. 신이 주신 나의 과업, 즉 참 나로  살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나는 있는 나다(탈출기 3,14)"라고 하신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다.  
 
 수녀님의 세미나 후 같은 주제로 환담이 있었고 새로 입회하신 베드로 님을 환영하며 중식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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