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홀로 있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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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8-12 ㅣ No.5226

법정 스님의 말씀

 

내가 사는 곳은 겨울이면 영하 20도를 오르내린다. 지대가 높고 또 개울가라 무척 춥다. 대관령이 영하 몇 도라고 일기예보가 나가는 걸 보면 내가 사는 곳이 대개 4,5도 더 낮은 듯하다. 얼음이 두꺼워 개울에서 물을 길어올 때는 도끼로 얼음을 깨야만 한다. 깨고 나면 또 금방 얼어붙는다.

추운지는 별로 모르겠지만 숨을 쉬면 코기 찡찡해지고 눈이 어릿어릿하다. 그 정도인데 견딜 만은 하다. 이보다 더 추운 지방에서도 사람이 살지 않은가. 계절이라는 게 추울땐 추워야 하고 더울 땐 더워야 한다.

 

 

산중은 여름보다는 겨울이 더 지내기 좋다. 여름도 내가 사는 곳은 지대가 높아 모기나 파리가 없기 때문에 아주 쾌적하지만, 산중이라는 곳이 다 그렇듯 겨울이 차분하다.

둘레가 조용하고, 가끔 뒷골에서는 올빼미나 노루 우는 소리라든가 바람소리가 지나가고, 밤으로는 등잔불 켜고 이렇게 벽에 기대 앉아 등잔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 이런 공간이 나한테 주어졌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바쁘게 사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미안하지만 혼자 거기서 조촐한 삶의 기쁨을 주릴 때가 많다.

 

 

그 전에 불일암에 있을 때도 혼자 사니까 가끔 사람들이 와서 홀로 지내기 무섭지 않느냐고 묻곤 했다. 무섭다는 것은 마음의 문제다. 밤이라고 해고 한낮과 똑같은 것이다. 그 골짜기, 그 산, 그 나무, 그 바위 그대로 있는데 단지 조명 상태가 어두워진 것일 뿐이다. 그런데 마음이 무서움을 지어낸다.

내가 세속에 있을 때는 무서움을 많아 탔었다. 특히 시골집이니까 변소에 가려면 꼭 할머니를 앞세우고 갔다가는 빨리 튀어나오곤 했다.

그러다가 무서움이 사라지게 된 계기가 있었다. 지리산 쌍계사에서 있을 때인데 한번은 섣달 그믐날 무슨 일로 밖에 나갔다가 화개장에서 내려 거기서부터 시오리 길을 걸어가야만 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전혀 앞이 안 보였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을 부르면서 반은 뛰다시피 하고 갔더니 옷이 전부 땀에 젖어 있었다.

그 뒤로부터는 무서운 생각이 사라졌다.

무서움이란 것이 내 마음 안에서 오는 것임을 어느 순간 깨달은 것이다.

 

 

사실 혼자 사는 사람들만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세상 사람 누구나 자기 그림자를 이끌고 살아가고 있으며. 자기 그림자를 되돌아보면 다 외롭기 마련이다. 외로움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무딘 사람이다.

물론 외로움에 젖어 있어도 문제이지만 때로는 옆구리께를 스쳐가는 외로움 같은 것을 통해서 자기 정화, 자기 삶을 맑힐 수가 있다. 따라서 가끔은 시장기같은 외로움을 느껴야 한다.

내 경우는 완전히 홀로살이가 되어 이제는 고독 같은 것도 별로 느끼지 않고, 그저 홀가분하게 지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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