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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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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홍 [clemenskim] 쪽지 캡슐

2012-01-14 ㅣ No.7523




보물
    글 : 류해욱 신부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마라. ...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단순히 자선을 베풀라는 말씀일까요? 우선 저 자신에게 보물이 무엇인지를 묻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보물이 무엇입니까? 원로시인 성찬경 선생님이 재미있는 제목의 책을 내셨습니다. [먹을 수 있는 보석]입니다. 성 선생님은 쌀알 몇 톨을 들여다보다가 시인이 감성이 사색의 여정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볼수록 신비한 생김새와 빛깔에 넋을 잃는다. 반투병의 쌀알의 깊이를 헤아리다가 그만 상념의 시공에서 길을 잃는다. 세상에 이런 보석이 있는가. 이 보석은 먹을 수 있는 보석이다.” 나아가 그 쌀알이 생명이라는 사실, 또한 생명을 위한 양식이라는 사실에 새삼 머물며 이 보석은 살아있는 보석이며, 생명의 진기가 득실 고여 있기에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이라고 찬탄합니다. 시인에게는 언어가 보물이겠지요. 성찬경 시인은 좋은 시구 한 구절을 위해 생명까지 바치겠다고 하는 시를 쓴 적이 있습니다. 시인에게 좋은 시구가 보물이겠지요. 저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좋은 언어’를 보물로 생각하며 때로 찾고 싶은 욕심을 지닐 때는 있습니다. ‘좋은 언어’라는 말을 하니, 너무나 가슴 아프게 일찍 세상을 떴던 민중 시인 신동엽의 ‘좋은 언어’가 생각납니다. 사실 저는 이 시를 읽으며 늘 예수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좋은 언어 ㅣ 신동엽 외치지 마세요 바람만 재티처럼 날려가 버려요. 조용히 될수록 당신의 자리를 아래로 낮추세요. 그리구 기다려보세요. 모여들 와도 하거든 바닥에서부터 가슴으로 머리로 속속들이 굽어돌아 적셔 보세요. 하잘 것 없는 일로 지난 날 言語들을 고되게 부려만 먹었군요. 때는 와요. 우리들이 조용히 눈으로만 이야기할 때 하지만 그때까진 좋은 言語로 이 세상을 채워야 해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지만 외치시지는 않고 조용히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조용히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 위해 사람들 자신들도 조용히 귀를 기울여야 했겠지요. 조용히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 왔겠지요. 보물 이야기하다가 조금 샛길로 빠졌는데, 우리에게 참으로 소중한 것, 바로 보물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하늘은 저에게 마음과 통하는 이미지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는 말은 또한 우리 마음 깊은 곳, 내면 안에 쌓으라는 말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목소리를 심어 놓으셨지요. 그분을 만나고 그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아야 하지요. ‘마음 깊은 곳’이라는 말을 하니, 2003년 작고하신 또 다른 원로 시인이었던 조병화 선생님의 ‘외로운 영혼의 섬’이라는 시도 떠오릅니다. 외로운 영혼의 섬 ㅣ 조병화 내 마음 깊은 곳엔 나만이 찾아갈 수 있는 외로운 영혼의 섬이 하나 있어 쓸쓸할 땐 슬며시 그곳으로 숨어 버립니다. 내 마음 가려진 곳엔 나만이 소리 없이 울 수 있는 외로운 영혼의 섬이 하나 있어 고독할 땐 슬며시 그곳으로 숨어 버립니다. 아, 이렇게 내 마음 숨은 곳엔 나만이 마음을 둘 수 있는 외로운 영혼의 섬이 하나 있어 만사가 싫어질 땐 슬며시 그곳으로 숨어 버립니다. 내 마음 보이지 않는 나만이 숨을 수 있는 외로운 영혼의 섬이 하나 있어 쓸쓸하고 쓸쓸할 땐 슬며시 그곳으로 숨어 버립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우리가 찾아가서 머물고 쉬며 다시 힘을 얻을 수 있는 내밀한 장소가 있고, 그것을 시인은 외로운 섬이 하나 있다고 표현합니다. 외로움, 절대 고독 안에서 우리는 절대자,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 그분이 우리 존재의 근원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으며 그분께 의탁 드리며 우리의 외로운 마음을 달래게 되지요. 우리에게 진정한 보물은 바로 그분뿐이라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되지요. 우리가 보물로 간직하는 다른 모든 것도 그분이 주신 은총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오늘은 성찬경 선생님의 글로 시작했으니, 그분의 시로 마칩니다. 은총을 내려 주시는구나 ㅣ 성찬경 은총을 내려 주시는구나 야속하다 싶을 만큼 묘하게 표 안나게 내려 주시는구나 슬쩍 떠보시고 얼마 있다가 이슬을 주실 때도 있고 만나를 주실 때도 있고 밤중에 한 밤중에 잠 못 이루게 한 다음 귀한 귀절 하나를 한 가닥 빛처럼 내려 주실 때도 있다. 무조건 무조건 애걸했더니 그 불쌍한 꼴이 눈에 띄신 모양이다. 얻어 맞아도 얻어 맞아도 그저 고맙다는 시늉만을 했더니 말이다. 시늉이건 참이건 느긋하게건 절대절명에서건 즉시 속속들이 다 아신다. 다 아신다. 그러니 오히려 안심이다. 벌거벗고 빌면 그만이다. 은총을 내려주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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