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계동성당 자유게시판 : 붓가는대로 마우스 가는대로 적어보세요

1/21 성녀 아녜스 축일

인쇄

김윤홍 [clemenskim] 쪽지 캡슐

2012-01-21 ㅣ No.7526

 



정결한 희생물이요 순결한 제물인 용감한 동정녀

    글 : 이기양 신부님 ㅣ 서울대교구
    
    오늘은 아녜스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오늘 미사 지향에 ‘아녜스’ 본명이 많은 것을 보니 우리 성당에 
    아녜스 본명을 가진 이들이 인덕이 많은가 봅니다. 
    요즈음도 새로 영세 받는 신자들이 자주 택하는 본명이 아녜스이기도 하지요. 
    물론 이름이 예뻐서이기도 하겠지만 성녀의 
    순결한 삶을 흠모하고 희망해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아녜스 성녀이지만 
    성녀는 지금으로부터 1700여 년 전의 삶을 살았던 분입니다. 
    로마의 디오클레티아누스(284-305)황제 박해 시대, 
    통상적으로 304년 경 순교했다고 전해 내려오는데 
    순교 당시 성녀는 고작 12-13세 정도의 어린 소녀였다고 합니다. 
    
    성녀 아녜스의 양친은 유명한 로마의 귀족 가문이었을 뿐 아니라 
    열심한 신자로써 자녀에게 그리스도교적 교육을 시켰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아녜스는 그 당시 상류 계층에 유행되던 
    사치와 향락에 격렬한 거부감을 보이며, 자신은 하느님 안에서 
    동정을 지키며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려는 굳은 결심을 합니다. 
    시간이 흘러 로마 사람들에게 알려진 미모의 소녀 아녜스가 
    13세가 되었을 때 로마 시장의 아들로부터 청혼이 들어옵니다. 
    대단히 좋은 조건의 청혼이었지만 아녜스는 거절하지요. 
    남편이 결정되어 있다는 아녜스의 거절 이유를 수상히 여긴 
    시장측에서 조사한 결과 아녜스가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시장은 다행으로 여겨 그녀를 법정으로 소환하여 배교를 강요하고 
    며느리가 될 것을 요구합니다. 사람들은 아직 어린 소녀라 겁을 주면 
    마음이 바뀔 것이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아녜스는 겁을 내지 않고 
    오히려 배교의 표시로 우상 앞에 향을 피우라는 요구에 
    우상 앞에 십자 성호를 긋는 대담함을 보입니다. 
    
    아녜스의 회유에 실패한 시장은 몹시 화가 나서 
    그녀를 악마의 소굴에 보내어 정조를 빼앗게 하겠다고 위협합니다. 
    그 위협에도 굴하지 않자 시장의 말대로 아녜스는 
    마굴에 끌려가 더러운 사람들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러나 그 순간
    예수 그리스도님, 저를 보호해 주소서. 라는 기도대로 아녜스의 모습은 
    세상 사람이 아닌 선녀 같은 모습으로 변모되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모습을 보고 누구하나 가까이 가려하지 않았지요. 
    그런데 한 무모한 자가 갑자기 용기를 내어 그녀의 몸에 손을 대려 했지만 
    그 순간 강한 힘에 눌려 기절해 버렸다고 합니다. 
    
    계획했던 것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자 증오에 사로잡힌 시장은 
    그녀를 불태워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맹렬한 화염도 그녀를 삼키지 못했지요. 
    이와 같이 여러 번 하느님의 기묘한 보호를 받아 
    위험을 모면한 그녀였지만 결국 교수형의 선고를 받고 형장으로 끌려갑니다. 
    
    꽃과 같은 어린 처녀의 사형을 불쌍히 여긴 구경꾼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 가운데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에 찬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아녜스 성녀였다고 하지요. 성녀는 머뭇거리는 형리를 재촉하여 
    꽃봉오리와 같은 생명을 하느님께 바쳐 순교했다고 합니다. 
    성녀 아녜스를 표현한 그림들을 보면 그녀가 
    한 마리의 어린양을 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성녀가 순교한 후 
    슬픔에 젖어 있던 양친을 위로하기 위해 
    그러한 모양으로 나타났다는 전설에서 기인한다고 합니다. 
    부모와 친구들이 성녀의 시체를 수습하여 
    비아 모멘따나 카타콤바에 안치하고 밤을 지낼 때, 
    아름다운 동정녀의 무리들이 원을 그리며 나타나 성가를 부르는데 
    그 한가운데 기쁨에 찬 성녀 아녜스가 있었다고 합니다. 
    성녀의 손에는 약혼 반지가, 그 옆에는 어린양이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물론 어린양은 그녀의 순결한 무죄를 상징하는데, 
    그녀를 기념하여 350년경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딸이 
    성녀의 묘지 위에 아녜스 성당을 건립하였고, 
    교황 호노리우스 1세(625-638)가 증축한 이래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건립한 아녜스 성당에서는 두 마리 새끼 양을 축복하고 그 양에서 깍은 털과 
    다른 양털을 섞어 교황이 대주교에게 직분과 권한을 수여하는 상징인 
    빨리움(Pallium, 대주교나 교황의 목에 걸치는 영대 같은 견의)을 만든다고 합니다. 
    
    아녜스 성녀 기념일을 지내면서 우리가 1700여 년 전의 성녀를 
    지금도 사랑하고 기억하는 것은 성녀와 같은 
    순결하고 거룩한 삶을 희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시대는 너나 할 것 없이 욕망을 쫓아 살며, 
    그 결과 채울 수 없는 갈증과 공허에 시달리며 살아갑니다. 
    인간적인 모든 욕구를 자제하고 하느님께 봉헌하며 사는 
    아녜스 성녀의 삶은 옛날에나 믿었던 유물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삶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얼마 전에 선진국들의 성교육 실태를 밝힌 자료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성적인 타락과 미혼모 문제로 골치를 앓다가 순결 서약 운동을 펼쳤고, 
    영국에서는 실질적인 피임법과 미혼모 복지를 뒷받침하는 정책을 펼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에서는 성적인 타락이 
    서서히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영국에서는 더 혼란이 가중되어 가기만 한다는 자료였습니다. 
    
    인간의 행복과 평화는 끝없는 욕망의 추구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자제하고 하느님 안에 살 때 가능하며 
    그것이 훨씬 아름다운 삶일 것입니다. 
    아녜스 성녀는 그 어린 나이에 벌써 그것을 통찰하고 실천하였던 것입니다. 
    12-13세의 나이에 순교의 월계관을 받은 
    용감한 성녀 아녜스의 굳센 정신을 묵상하는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26 1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