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12월 20일 월요일 ’2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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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1-12-14 ㅣ No.4875

1220일 월요일 ’21/12/20

 

중세로부터 많은 예술가들이 성모영보고지 사건을 아름답고 거룩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그에 반하여 어떤 예술가들은 그 당시 마리아라는 어린 처녀 아이의 처지에서 바라본 성모영보고지 사건을 묘사하기도 합니다. 작가들은 주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 이전에, 하느님의 아들을 가지게 되리라는 소식에 놀라는 사춘기 소녀를 그리고자 했는가 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카 1,28.30-33) 라고 인사를 건넵니다. 난데없이 나타난 천사에게서 이 소식을 전해들은 14세의 사춘기 소녀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성경은 우리에게 당시 마리아의 상황에 대해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29) 라고만 전해줍니다.

 

우리도 어쩌면 이 코로나19 시대에, 한 개인으로서 개인위생과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그저 하루 빨리 이 감염상황이 지나 가기만을 바라는 것 이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 감염상황이 우리 인류가 주 하느님의 창조질서 보존과 유지를 위한 적절한 방법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자연을 지나치게 인간의 유익과 편의를 위해 착취함으로써 오는 자연의 부작용이라는 것과 자연이 인류세계에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 인류의 지난 생애가 이렇게까지 끔찍하고 위협스러운 결과를 가져올지는 미쳐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그저 자연을 개간하고 개발하여 인류 문명과 세상이 발전하고 살기 좋게 되는 것으로만 여겼지, 자연을 보호하고 존중하며 그 영역을 지키고 유지해주어야만 한다는 사실까지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 자신에게 닥친 어처구니없고 허무맹랑한 제안에 마리아는 반문합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34) 이럴 때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주 하느님께서는 어떤 메시지를 보내시는 것일까? 감염상황에서 감염되지 않기만을 바라는 다 똑 같이 나약한 인간에 불과한 우리에게 주 하느님께서는 무슨 말씀을 하고자 하시는 것일까? 전년도에 대림절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로부터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환경보호에 관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따른 대림생태달력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 생태달력의 첫 날에 대림시기의 주제인 기다림은 자연을 통해 다가옴을 묵상하기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까지는 아가 예수님이 산타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실 줄 알거나, 사람들 사이에서 새롭게 벌어지는 일과 관계 안에서 발생하리라고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번 성탄에는 예수님이 자연에서 오신다는 묵상을 하게 됩니다. 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를 함께 지키고 보호하기 위한 자연과 함께하는 여러가지 다양한 방법들 중에, “인간 사회와 환경, 가난한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들이 무엇인지 자각하고, 그들을 위한 치유의 기도와 적절한 행동을 취하기나의 주변에서 발생하는 생태계 훼손을 조사하고, 어떤 행동이 요구되는지 검토하기기술이 지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성찰하고, 내가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은 나누어 주기등등의 행동강령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것들은 어쩌면 나 개인이 아니라 사회 환경 단체나 정부에서만 하는 것으로만 여겼지만, 이번엔 자연보호와 생태환경 유지보존을 위한 노력을 우리 각자의 일상으로 가져왔고 적용하도록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천사는 마리아의 고민과 궁금증에 대해 이렇게 답해주십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35-37)

 

우리는 어쩌면 지금까지 남들이 만들어 준 것을 사용할 줄만 알았지, 그 개발품들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연재해가 지금까지 여러 번 우리를 경고하고 덮칠 때, 어떻게 이 난국을 해결하고 우리 미래 사회를 건설해 나갈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 자연을 향한 복음적 회심을 기울여야 할 시기입니다. 앞으로는 내 삶이 자연과 생태환경에 어떤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살피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는 자연과 생태환경을 파괴하고 죽이는 죽음의 문화를 거슬러, 보존하고 살리는 생명의 문화를 건설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전통 문화 속에서 노인들과 연장자들이 견지해왔던 자연 친화적인 습관들은 무엇인지?’ ‘우리의 문화 관습 안에 자연을 이용한 긍정적이고 풍요로운 흔적은 무엇인지?’를 되새기고, 앞으로 자연을 보존하고 생태계를 주 하느님의 창조질서 뜻대로 유지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고안하여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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