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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하루하루 삶이 힘들어져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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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61.106.109.*]

2005-10-13 ㅣ No.3746

 

† 찬미예수

 

유학 생활 힘들지요? 주님을 떠난 우리네 인생이 외로운 순례자의 길이라 하는데

타지에서 고심이 만만치 않겠지요.

누구에게나 지치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가 밀려오겠지요.

 

그런가 하면 하루를 여는 새벽 노무직 아저씨들은 내가 만약 초보일 경우 가정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기에 무거운 시멘트, 쇠파이트등을 고참과 쉼없이 타이밍을 맞추며

날라야 하기에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하지 못하는 극심한 고초를 겪을 것입니다.

이럴 경우 나약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때때로 그 고초를 죽음보다 더 무거운 고행이라 여길 수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초대 순교자들은 왜 이러한 고초등을 두려움 모른채 참아 이겨내며

지상에서 티없으시기에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성모님의 전구 일치로써 따르셨을까요?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고..내가 노력을 안해서 못하는 건가?

그래서 선생님들이 날 싫어하는 건가?라고 되내일 수 있다는 것은 님이 지금 고독의 여정으로

초대받고 주님과 대화할 준비를 맞이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나약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때때로 그것을 방해하려는 어둠의 세력에게 속절없이

나의 몸과 마음을 내어 맡김으로써 고통의 시간만을 보낸다 생각되어지는 것이지요.

사실 고통의 시간만을 보내는 것은 아니겠지요.

 

주님 보시기 좋은 성가정의 가장이 되기 위하여 유학을 떠났고, 또 남들이 편하게 지낼 때

이국에서 책 한줄을 더 볼 수 있는 님은 이미 축복 받고 있다 믿어보세요.

 

비록 진정한 축복은 나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버리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의 그것을 나누려는

전투적 크리스천으로써, 오직 주님의 무한하시고 영원하신 권능을 받아들이려는

평화의 도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을 비우려 할 때 새롭게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님은 지금 그렇게 시작하려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로또 복권 당첨보다 더욱 행복한 축복이겠으며 단순한 진리이겠습니까?

 

자! 여기서부터 마인드 컨츄롤이 시작됩니다. 아니, 여기서부터 지배하러 오시지 않고

섬기러 오신 예수님이 당신 안에서 그 사랑의 힘을 발휘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시어 거룩한 주님의 침묵에 안기는 강물같은 평화의 침묵으로 쉬면 됩니다.

이 기쁨을 모르면, 온전한 기도인 미사 참례가 의무감 내지는 해치움으로 앞설 수 있으며

안타깝게도 또다시 냉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답니다.

 

따라서 조금씩 언제나 오늘만을 살겠다는 각오로 하루살이의 여정을 바쳐보시기 바랍니다.

평화의 도구는 절대 하느님이 아닌 자신의 사상이나 의지를 피력하지도 하고 싶어지지도 않기에

슬픔, 미움, 질시등은 이미 악령의 열매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이러한 평화의 도구가 되고자 하면 하느님께선 미운 이웃도 당신 자녀로 보아 주시기에

더 나아가 고마운 천사로도 묵상케 해주시기에 매사에 또다른 누군가의 시기, 미움, 질시를 받더라도

그것은 결코 죄가 아니며 다만 나와 닮은 꼴이지만, 즉 나도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는 체험을

하고 있지만 하느님을 흠숭하지 못한 결과일 뿐이라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선배 신앙인들은 주옥같은 편지와 시, 음악등을 다시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기에

이분들과의 경건한 능력안에 하나됨도 시간 문제일 뿐이며 주님안의 부록일 뿐일 것입니다.

이러한 미래가 있기에, 그 목표점이 보이기에 우리의 신앙 여정은 더욱 환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형제님의 입장에서 제일 가깝기에 어려울 수 있는 학업 또한 훗날의 주님과 함께 형제님의

원대한 꿈의 실현이라는 목표라는 정착역이 있기에 학업이 한결 가벼워지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이 기도속의 말씀이 주님의 말씀이요, 주님을 따르는 성모님의 기도이며, 모든 천사와 성인, 성녀, 형제, 그리고 자매들도 함께 바치는 기도임을 인정할 수 있기에 세상이 결코 외롭지 않음을 알고 기뻐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금 이시간도 어느 영혼들은 진리에 대한 무지속에서 어둠속에서 홀로 흐느끼며 자살이라는

큰 죄앞에서 슬퍼하고 있기에 우리가 때때로 어미의 마음으로 슬퍼하게 됩니다.

 

성당은 하늘나라로부터 파견된 배라고 말씀하신 어느 노사제의 말씀이 기억나는군요.

때때로 밀려오는 슬픔등에서 해방되고 싶으시다면 이 배를 탑승하십시오.

그러면 나만 미워해 보이는 선생님도 어느날부터인가 선명한 날개를 단 천사로 다가오실지 모를 일입니다.

사실, 님도 알다시피 님을 더 잘되게 해주시려는 좋은 선생님의 몫이잔아요.

 

그러나 선생님도 한정적인 인간으로 비추어지는게 오늘의 현실이기도 하겠지요.

그점도 걱정 마십시오. 평화의 도구는 의심할 능력조차 없게 허락하여 주실 것이고,

지금은 너와 내가 학생의 신분으로써 스승이신 예수님의 그것을 보다 겸손하게 따르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쉽고 편안함에 길들여져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기껏해야 힘들 때 화살기도를 바칩니다. 그것도 형편없는 아마추어 궁수로써 말이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선 그것을 일일히 주워담으시며 다만 우리의 선행만을 복돋어주시려 애쓰십니다.

 

고통이 따르지 않는 사랑은 짝퉁임을 유념하십시오.

청원/감사/찬미 기도로 점점 더 진화하고 싶으시다면, 그리하여 이웃에게도 보다 밝고 자신감있는

부탁/감사/찬사등을 사심없이 나누고 싶으시다면 조건없이 지금 여건을 수용해보십시오.

 

계속해서 지혜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현대인인 우리가 오관을 섬기기에 오관이 하느님을 만나는 창이기에

그 오관이 오염되면 하느님을 만날 수 없다 함도 은총입니다. 왜냐면 110V인 인간이 220V인 주님을 보면

죽는데, 하느님은 아무에게나 거룩한 죽음을 원하시지만 지옥을 향하는 죽음을 원치 않으실테니까요.

 

자! 힘내시고 다시 한번 시작해 봅시다.

하느님의 눈으로, 예수님의 입으로, 그리고 성령의 거룩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제가 당신 도구가 되게

해주세요. 꼭 그렇게 됨을 믿습니다라는 뜻의 성호경과 아멘을 언제 어디서든 실컷 바치시면서

앞으로 나아가시길 권고드립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풍성한 삶의 보고들을 맞이하셔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마음의 창이 더욱 선명하고 기쁘게 이어질 테니까요.

 

그리고 고통속에서 어쩔 수 없이 기도조차 어려울 때 이렇게 외쳐보세요.

 

온 머리를 다하여! 온 가슴을 다하여! 온 어깨의 힘을 다하여 당신의 권능에 의지합니다.

저를 당신 평화의 도구로 써주세요. 나의 아빠, 나의 하느님, 꼭 그렇게 해주세요. 꼭 그렇게 됨을 믿습니다.의 성호경으로 매달리시는겁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지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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