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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그 사람을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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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록 [peterkauh] 쪽지 캡슐

2006-03-16 ㅣ No.4927

 70년대 육군 모 통신부대 파견 소대에 근무 중이었다오.

 

 밤 2시 30분 경. 불침번이 "기상!"을 외쳐대면서 내의 바람에 군번 순으로  줄을 세웠고

난 하위 5번째 쯤의 졸병(일병)으로 위로 10 여명 뒤에 줄을 섰답니다.

술 취한 선임 병(별명: X X  X)이 "요새 고참을 가지고 논다"며  "줄 빠따"를 치기 시작했어요.

 

 맨 위 4명의 고참을 재외하고 계속 내려 오면서 매의 숫자가 2배씩 불어나고 있었는데 나는 나마 30 여대는 맞아야 되는 상황이었답니다. (매는 겁나지 않았어요. 원래 이유 없는 모욕과 구타에 격분하여 밤중에 중대를 휘저었다가 하루 종일 맞은 적도 있었으니까.)  

 근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바로 내 앞에 몸도 강인하지 않은 유 상병이 다 맞고 쓰러졌고 내가 맞기 위해

엎드렸는데, 유 상병이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때리지 않고 몽둥이(곡굉이 자루)를 땅바닥에 밟고는

 "고 일병을 때릴 수 는 없으니 때리고 싶으면 그 수만큼 나를 때리세요." 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아닙니다. 유 상병님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저는 잘 맞을 수 있고 또 제 졸병 네 명 몫을 다 맞겠으니 걱정 마세요. 자, 치세요."

그날 "줄 빠따"는 거기서 끝났고. 나는 비록 작은 일이지만 유 상병의 인간적 사랑과 용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답니다. 그 후 X X  X 선임 고참이 제대를 몇 주 앞 둔 어느 날 밤 조용히 불러 내어 손 좀 봐줬지요.

 

 나에겐 유 상병이 있었답니다. 지금 어디 사는지 모르지만, 그 분은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참인간과 용기'을 심었답니다.  

 

 그리고 1980년 5월, 계엄령 하의 밤 12시 30분!

 

 계엄군의 탱크와 기관총이 명동 성당을 향하고 있을 때. 검은 제복의 수녀님들과 그 뒤를 이은 신부님들이 촛불을 들고, 총살 위험(계엄법상 2인 이상의 집회나 통금 위반시)을 불사하고, 성당 앞으로 나가 계엄 해제를 요구하며 침묵 시위를 했습니다. 순교의 각오로 정의를 위해 몸을 던졌던 이 분들이 나로 하여금 하느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다오. "사랑이되 정의의 바탕에 입각한 사랑이라야 한다"는 김수환 추기경의 가르침과 함께, 그 수녀님들과 신부님들은 내 인생에서 영원한 신앙의 생명을 심어 준 분들이었지요.

 

 나는 그런 분들을 가졌다오. 사랑하는 안젤로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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