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나무가 준 선물

인쇄

김정이 [pear] 쪽지 캡슐

2001-05-24 ㅣ No.4630

避世精念

 

오늘 하루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나무하는 아이’ 가 되어보기로 했다.

 

정릉 산자락의 아카시아 꽃잎이 눈발처럼 날리는 숲속에서,

 

이처럼 가문날에도 지난 가을 떨어져 싸여있는 낙엽들덕분에 엉덩이를 적시기에 충분한 산비탈에 앉아서 세상으로부터 무겁게 지고 온 오만가지 생각의 고리들을 비워내기 위하여

 

언제였던가 지게에 나무 한 짐지고 돌아오고 싶었던 막연한 꿈같은 걸 행동으로 옮겨보고 싶어졌던 거다.

 

선녀와 나무꿋에 나오는 도끼를 맨 어른 나뭇꾼말고,  

 

밥하시던 어머니가, 마당에서 철없이 놀고 있는 아이에게

 

"얘야 나무 한짐 해 오너라...’ 하시면 아이는 빈지게를 지고 터덜터덜 산으로 올라간다.

 

나는 그  삭정이 나무를 주워모아오는 아이가 되어보기로 한 것이다.

 

산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목마다 수북히 쌓여있는 마른나무 가지들...

 

지게에 얹기 좋은 크기로 자르고 다듬어서 수북히 쌓아놓는 노동덕분에 애써 생각의 고리들을 비워내려 노력하지 않아도 머릿속이 개운해진다.

 

한참을 그렇게 주워모으다가 조금 쉴  요량으로 나무밑에 주저 앉았다.

 

아카시아의 푸르고 여린잎 냄새를 맡아보고 뺨에 부벼보기도 하고...

 

우거진 나무 가지들 사이로 맑게 개인 하늘을 보니

 

마치 내 몸은 나무밑에 기생하는 이름없는 조그만 버섯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

 

’ 하늘아 너 정말 이쁘구나.......... ’

 

내 몸위로 온통 하늘을 향해 얼기설기 누워있는 나뭇잎사귀들은 하늘을 향해있는 내 얼굴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 나뭇잎사귀들.... 매일 같은 하늘을  보는 일이 처절하도록 지겹지 않을까?

 

하늘가 꼭대기에 바람이 불면 눈발을 날리우는 아카시아 꽃무더기는 매일 그 모습을 달리할텐데......

 

손으로 나무를 쓰다듬어 본다. 거칠디 거칠은 나무 한그루....

 

인위로 찌들어버린 도시에서 삭막하게 살아가는 내 감성과 비슷한 것같아 그리 굵지 않은 마른 나무를 끌어안았다.

 

한참을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나무를 끌어안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가슴 한군데가 싸아하게 아파진다.

 

이건 그냥 느낌이 아니라 실존하는 육체적 아픔이다.

 

’ 아프다.... 아프다...’ 이건 생각이 아니라 내 오감이 감각하고 있는 느낌이다.

 

나라는 사람이 나무가 되어있는 것 같은 착각, 아니면  同化.........

 

한참을 그러고 있었더니 내가 아니라 나무가 아프다고 한다.

 

끌어안고 있는 나무가 나에게 무어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아 귀를 기울여 보지만

 

말이 없는 나무는 자연의 순리처럼 나를 바라보기만 한다.

 

나무가 나에게 말을 한다.

 

’ 아이와 어른의 차이는 무엇이니? ’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해맑은 아이와  제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 잘 안되는 나..’ 인 어른.........

 

온갖 치레와 형식과 고정관념과  타성을 내 마음 하나 뒤집어서 버리는 일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닐텐데.............

 

나무에게 배운다.

 

한 자리에 서서 온 우주의 영롱함을 만끽하는 말이 없는 意志

.....

 

하늘보다 잠시의 꿈에서 깨어난 나무하는 아이처럼 다시 나무를 주워모으는데

 

마른 나무 가지가 파사삭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그리 유쾌하게 느껴지지 않는 끈적한 수액을 내 손에 묻혀 놓았다.

 

’ 이렇게 말라 비틀어진 여린 나무 가지 안에 생명의 끈끈함이 숨어있었다니...’

 

찡그린 얼굴로 수액이 묻어있는 손가락을 코에 갖다 대었다.

 

코를 찌르는 향긋한 내음...............................

 

나무가 오늘 내게 준 선물일지........

 

저를 죽여 아궁이에 태워질 삭정이 나뭇가지에서도 이처럼 풍부한 생명의 냄새를 간직할 수 있다는 자연의 섭리......

 

푸른 하늘위로 아카시아 꽃잎이 눈발처럼 날리고,  

 

나무하는 아이가 되었던 나는 나무가 준 선물냄새를 맡으면서 행복해졌다.

 

 



28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