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동성당 게시판

[퍼온글]Tell Me Something에 대한 또 하나의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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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무승 [stpeter] 쪽지 캡슐

1999-12-15 ㅣ No.2572

일하기 싫어서 Web Surfing하다가 흥미로운 글이 있어 올려 봅니다. 참 재미있는 영화였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 보고나서 오히려 더 재미있어지는...

 

참, 영화 아직 못 보신 분은 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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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꼭 재미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다. 사실 영화들은 별로 재미없다. 그래도 우리는 영화를 본다.

"주유소습격사건"의 김상진감독은 수업시절 선배들의 권유로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을 보고 하품을 했다한다. "조또 재미없는 것을 두고 걸작이라고 호들갑들을.. 하여간 꼰대들이란.."

 

 

 

 

 

!

[텔미썸딩은 잘 만든 영화다]

 

까놓고 말하자. 걸작으로 알려진 영화들은 대개 재미없다. 그러나 깨어있는 이 있다면 그 재미없음 가운데서 잔재미를 찾아낼 수 있다.

 

"쉬리", "주유소...."는 워낙 재미있었고 "인정사정 볼것없다"는 졸뻔 했지만 허벅지 꼬집어가며 보았고 "식스 센스"는 졸음이 올려고 하면 깜짝 장면이 나와서 역시 감독의 수준이 다름을 느꼈고 "텔미 썸딩"은 심은하가 결국 나를 잠들게 하고 말았다.

 

깜빡 졸았지만 그래도 줄거리는 따라가겠는데 결론부터 말한다면 딴지일보의 혹평이 무색하게 "텔미 썸딩"은 훌륭한 영화였다. 그것은 "식스센스" 같은 치밀한-완벽주의적 역량이 아니라 철학이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이다.

 

장선우감독은 철학은 있지만 영화 만들줄 모른다. 강제규-김상진감독은 영화를 만들줄 알지만 철학이 없다. 장윤현감독은 철학이 있다. 그럼으

로 해서 자신이 가진 역량 이상의 것을 보여주었다.

 

텔미썸딩은 흔히 "유주얼 서스펙트"나 "식스 센스"와 비교된다. 평들은 대개 "텔미썸딩"의 반전이 예의 두 영화보다 못하다는 것이었다.

 

유주얼 서스펙트는 재미없다. 마지막에 반전이 있다는 것을 관객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혹 뭔가 있는가 해서 눈이 빠지게 보다보니까 재미

없음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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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상영 내내 관객들의 잔머리 굴리는 소리...소리들 ..물론 마지막의 반전은 그 중간의 재미없음을 상쇄시켜주고 남음이 있다. 그러나

두 번 볼 영화는 아니다.

 

"식스 센스"는 재미있다. 막판의 반전이 없더라도 귀신소동이 볼만하다. 물론 반전이 보태어져 금상첨화가 되었다. 반드시 두 번봐야 된다

 

심은하의 어벙한 마루타연기도 김을 빼긴 했지만 범인을 알고 간 것이 졸음의 원인이었지 싶다. "텔미 썸딩"의 반전은 확실히 김이 빠졌다.

그러나.. 세번 쯤 봐도 한번 더 볼 영화다. 텔미썸딩은..

 

"유주얼..."의 반전, "식스 센스"의 정교함 보다 더한 것을 텔미썸딩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영화의 가치는 재미도 재미지만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김으로 해서 이 사회에 어떤 화두를 던지는데 있는 바.. 그럼으로 하여 사회를 변

화시키는데 있다면 ..그 점에서 확실히 텔미썸딩은 앞섰다.

 

영화의 엉성한 부분에 대해서 장윤현감독은 "관객들에게 관람 후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내놓게 하기 위해서"라고 변명했는데 딴지일보 류

의 덜떨어진 평들은 ..과연 말이 많긴 많은데 ..그 말이란 것이..

 

식스 센스 -

"아하 그러고 보니 그게 그런 뜻이었군.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응 맞아 바로 그거야"

관객들은 무릎을 치며 즐거워 한다.

 

텔미 썸딩 -

"조또 그게 모야. 모냐구. A~ 쒸발. 넌 혹시 알겠니?"

"응, 나도 모르겠어. A~ 쒸바.. 장난치는거야 모야 투덜투덜"

관객들은 즐겁지 않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개봉초기 관객은 몰렸으나 나쁜 평이 쏟아졌다. 혹시 했더니 역시 별볼일인가 싶었더니 ..이거 아니다. 관객이

갈수록 는다. 대박이다. 좋은 평이 슬슬 나오기 시작한다.

 

왜 그럴까? 텔미~를 본 관객들은 이 영화의 숨겨진 코드에 대해 식스센스 만큼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에 악평을 하지만 그러면서

말이 많다. 자꾸만 말이 많기 때문에 더 많은 관객이 오는 것이다.

 

그만큼 영화는 풍성하다. 하드 고어..그 엽기 측면은 영화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반전도 역시 한 부분에 불과하다. 유주얼~이 반전 빼면

남는거 없고 식스 센스가 꼬마의 연기, 반전부분, 귀신이야기 등 몇가지 화제를 던져준데 비해 텔미는 더 저변이 넓다.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아귀가 똑 들어맞는 이야기가 아니다.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심은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거짓말을 하고

있다. 왜? 영화는 단절과 소통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잡음이 많은 전화기를 들고 통화하는 것 처럼 관객과 감독의 통화는 어설프다. 바로 그 비어있는 영역에 관객의 참여가 있다.

 

우선으로 동성애 코드에 주목해야 한다. 심은하와 염정아는 애정관계는 진짜가 아니다. 비뚤어진 집착이다. 그것이 염정아가 죽어야 하는

이유이다.

 

통화의 장애다. 두 사람의 교감은 일테면 전화통화를 하는데 이쪽은 저쪽의 말을 들을 수 있고 저쪽은 이쪽의 말을 들을 수 없는 상황과

같다. 의사는 잘못 전달된다.

 

물론 원작 시나리오가 이런 점을 담고 있었는지 장윤현감독이 이 점을 의식했는지 알수 없지만 제목에 나타난 바 "텔미 썸씽" 송화자 쪽에

서는 의사를 전하고 있지만 수화자 쪽에 전달되지 않는다.

 

그것은 동성애 그 자체의 본질이다. 염정아는 죽어가면서 눈으로 말한다. "내가 너의 의사를 잘못 알아들은 것이야?" 이 부분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다. 심은하가 대꾸한다. "처음이에요" 이 말은 거짓말이다. 그는 파리를 처음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염정아는 심은하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다. 심은하에겐 한석규를 죽일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거꾸로 말하기

때문이다. "처음이에요"가 처음임을 뜻하지 않듯이..

 

심은하의 말은 "어떻게 말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말하느냐"로 이해해야 한다. 아니 그는 말하지 않는다. 단지 어떤 상황을 연출

하므로 해서 언어를 대신할 뿐이다.

 

그렇다. 장윤현감독이 말하는 방법은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는 것들이 놓여져 있는 상황"들이다. 이 부분을 딴지일보 등 덜떨어진

평자들은 "불친절한" 혹은 "잘못된"이라고 말하지만 무식한 소리고..

 

이 영화의 주제가 언어로서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므로서 소통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도입부에서 한석규는 비리사건에 연루된다. 병원비가 필요한 상황에서 통장에 거액이 입금되었으니 비리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즉 사실여부

를 떠나 상황을 통해 유추한다.

 

역설이다. 사실을 떠나 상황을 본다. 상황이 잘못되어 있다. 바로잡으면 진실이 보인다. ..자 감이 왔는가?

 

감독이 관객에게 영화보는 법을 가르켜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정한 장면이다. 이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바로 그렇게 보라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말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는가를 ..

 

염정아는 심은하를 보호한다는 명백한 살인동기가 있다. 심은하에겐 살인동기가 없다. 통화장애, 의사소통에 장애가 되는 것을 제거해 나

갈 뿐이다. 고로 심은하는 한석규를 죽일 계획을 가지지 않았다. 한석규는 그의 소통에 장애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염정아는 장

애가 되었다.

 

최초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아버지가 딸을 그림작업의 모델로 하면서 희롱했다. 여기서 얻은 수치심으로 정신이 이상해져서 살인을 했다고

믿으면 초딩이고..그는 지극히 정상이다.

 

단지 그는 의사를 말하지 않는..혹은 거짓말을 하는..또는 어떤 상황을 연출하므로서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그때부

터 심은하는 정확하게 자기 의사를 말하지 않는다.

 

이때 어떻게 하면 자기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가? 원하는 것을 요구할 수 없을 때의 방법은 먼저 모든 것을 확보한 다음 필요없는 것을 제거

해나가는 것이다.

 

그는 살해된 남자들을 사랑했다고 말한다. 거짓말. 사랑하지 않았다. 그렇다면..그것은 시체의 절단이다. 심은하는 그 남자들에서 필요한

일부분만을 원한 것이다.

 

그것이 원하는 것을 지목하여 말할수 없게 된, 의사전달이 차단된 상태에서..모든 것을 확보한 다음 필요없는 것을 버려나가는 ..방법이며

이는 인체의 일부분만을 취하고 나머지를 버리는 식으로 암시된다.

 

즉 그들이 죽어야 했던 이유, 심은하의 명백한 살해동기는..심은하는 그들 모두를 진정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아니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하 역설이다. 자기 의사를 직접 전달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으므로.. 그렇다면 심은하는 살해한 아버지마저 사랑했다는 의미가 된다. 꼬마의 단추 하나를 챙기었듯이.

 

그는 그를 둘러싼 환경의 일부분만을 취하는 것이다. 왜? 그것은 그들이 그의 입을 막기 때문에, 의사전달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

떤 목적을 가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림을 그릴 목적으로, 남자들은 그를 도울 목적으로, 염정아까지도 심은하를 보호할 목적으로, 명백히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기

때문에 거부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심은하는 그 모든 것을 먼저 받아들인 다음 불필요한 부분을 절단하여 비닐봉지에 담아 내버리는데..

 

한석규만이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한석규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다. 이 시대의 서기 1999년에서 2000으로 넘어

가는 세기말 소통의 코드.

 

우리는 서로 상대방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을 때 진정한 의사소통을 얻을 수 있다. 무언가 기대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말할 기회를 박탈

한다. 그래서 말하지 못한다. 바로 소통의 단절.

 

텔미썸딩..내게 말을 해..왜 말하지 않지? 그것은 그대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야. 마치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처럼, 내게 마음의 부담을 지우지 않고 다가올순 없는거니? 이것이 심은하가 관객에게 주문하는 이 시대의 화두이다.

 

그 화두가 1999년을 관통하는 시대의 이미지가 되기에 부족함이 있다는 말인가? 탁월하다. "텔미 썸딩"엔 철학이 있다. 그 철학이 진정 이

시대의 문화적 코드가 되기에 모자람이 없다.

 

우리는 이 영화에 극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쉬리..좋지만 두 번 나오기 어려운 영화다. 인정사정 볼거없다...역시 일생에 한번 볼수 있

는 영화이다. 그것은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배용균에게 두 번 요구할수 없는 이치와 같다. 그러나

 

텔미썸딩은 다르다. 우리가 진정 놀라야 하는 이유는 장윤현감독에게는 얼마든지 이야깃거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건 시작이다. 소통의

방법에 대한 질문? 전편의 "접속"도 "텔미썸딩"과 같은 주제라는 점에서 보자 장윤현감독은 제대로 핵심을 포착한거다. 얼마든지 후속타가

나올수 있다.

 

이 시대의 문화적 코드..바로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주유소습격사건이 관객의 마음과 소통하는데 성공한 이유..이 시대 한국인의 주제인

개김의 미학, 그들 개기고 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에 주눅든 한국인들은 한마디로 개기고 싶고 김상진감독이 그 점을 바로 포착했다.

 

마찬가지로 텔미썸딩..주유소의 개기고 싶은 심리가 낮은 차원에서 이시대의 코드를 읽었다면 텔미썸딩은 더 높은 차원에서 시대정신의 본

질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후속작이 나올수 있고 모방작이 따를 수 있다. 새로운 에너지를 가지고 붐이 있는 것이다

 

텔미썸딩은 유주얼~처럼 깜찍하지 않고 식스센스처럼 달콤하지 않다. 더 큰 무언가가 있다. 아하 그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말하지 않고 단

지 상황을 드러내기만 하였는데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심은하는 거짓말을 하였다."

"감독은 불친절하다"

 

심은하는 "처음이에요"라고 말했다. 거짓말인가? 아니 그는 말하지 않았다. 단지 상대방이 원하는 답변을 내놓으므로서 호응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죽어야 한다.

 

자 이제 영화가 보여지고 있는가? 그렇다면 한번 더 보아야 한다.

텔미썸딩-

"왜 내게 말하지 않았니?"

"말하지 않음으로 하여 드러나게 하는 방법으로 말하곤 했었어"

 

말하는 입보다 듣는 귀가 필요한 시대 - 말 가지고 말이 많은 정치판을 돌아보면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김동렬 올림

a11111a@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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