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동성당 게시판

Dominico의 회고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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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석 [chsdominico] 쪽지 캡슐

2000-03-05 ㅣ No.601

 안녕하세요~~ 채현석 도미니꼬입니다...

 

 지난 1탄을 쓰고서는 무수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어떤 피씨방 모니터가 그렇게 크길래 글씨가 짤려서 아래로 떨어지냐는 둥...

 

 글이 난해하다는 둥...

 

 그렇다구 안 쓸꺼믄 애초부터 시작을 안 했겠죠? 히히~~ 그럼...

 

 p.s 전체 창으로 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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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여행 95~99

 

"길고도 짧았던..." 이 식상한 말을 실감한다. 오늘은..

 

  현석이의 회고록 #2 -- 95년 1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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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렇게 회고를 해보면 한장에 걸쳐 장황히 떠들만큼 나의 첫번째 피정은 큰 사건이었는데("인

 

생의 전환점"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그 당시엔 철이 없었는지 별루 관심이 없었다. 피정의 기억두 잊고 있었구...

 

개학을 해서 선배들의 신입생 환영회때두 신기하구 재밌어 보인다는 생각은 했어두 딱히 하고 싶은 부서가 없었으니

 

....  

 

 지금 생각해보면 연주누나가 그때 날 성가대루 끌어들이지 않은게 좀 원망스럽다. ’성가대루 오라’는 말을 할 정도

 

루 친해지기에는 너무 짧은 만남이었구... 사실 정수,정현이 형하구는 정말루 친했지만 여자선배들한테는 친해지기

 

가 어색했다. 그치만 덕분에 소비해버린 1년이 내 성당생활 5년 중 가장 아까운 시간이었다.

 

 사실 학생회활동... 성가대가 처음은 아니었다. 그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테지만 난 처음에 전례부엘 들어갔었다

 

 정수, 정현이 형하고는 아침에 같이 만나서 성당가구 같이 올 정도로 친했기 때문에 그 두사람의 손에 질질 끌려서

 

아니, 몸 전체가 거의 들려서 전례부실루 납치(?)되었었다. 그때 전례부와 함께 나를 차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

 

던 부서가 하나 있었는데 성가대였는지는 의문이고... 약간 아찔하다.

 

 잠깐 그때의 학생회를 돌이켜보고 싶군...

 

 어린 마음에 더욱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때의 중고등부 주일학교와 학생회는 내게 실로 거대한 단체처럼 보였구 실

 

제로두 그랬다. 성가대, 전례부는 잘은 몰라두 아마 주일학교가 생기던 1980년부터 있었을테구... 그 이후로 봉사부

 

, 홍보부등이 조그마한 규모로 있었는데 내가 중1이 되던 그해... 아마도 그때가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 풍물패

 

가 제대루 이름을 가진 공식 학생회루 인정을 받았구, 성가대, 전례부라는 양대산맥과 풍물패의 독자적인 활동만이

 

거의 전부인 현재의 학생회를 접하고 있는 지금의 학생들은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는 이름도 기상천외한 부서들

 

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었다.

 

 전부 기억은 안나지만... 갈무리 때면 *회지를 작성하고... 평소에도 연중 4회 ’열린 글터’를 발행하던 편집부며,

 

성서연극반, 성가중창반, 반주단(성가대 소속), 홍보부, 봉사부, 풍물패등... 96갈무리 회지에서 확인되는 부서는

 

이렇게 아홉개나 된다. (내 기억으로는 임비오 선생님이 운영하시던 성지순례반도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대부분이 1,2년을 못 버티고 쓰러졌지만 그런 부서들이 생겨날 수 있는 환경이 조성 되었었다는게... 지금과

 

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말해주고 있다.

 

 그 당시에는 앞에서두 언급했듯 부서모집경쟁이 매우 치열했다. 신기해하는 눈빛으로 회합실 앞을 삼삼오오 짝지어

 

서성이던 조그만 신입생과 학생회 이외의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 장정같은 고2 남자들이 이리 끌고 저리 끌며 고래

 

고래 소리두 지르구 그랬다. 가끔가다 보면 전통적으로 있어오던 성가대와 전례부의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그

 

래서 더 재밌게 보였던 것 같다 요즘처럼 겉으론 웃으면서 뒤에서 다른 부서 욕하는 것보단 그게 훨씬 10대다운 모

 

습이 아니었나 싶다.

 

 어쨌든 그런 빵빵한 학생회를 보고도 아직 초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나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전례부

 

에 들어간지.. 아니, 끌려간지 한달여만에 흐지부지되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4월이 지나면서 나는 당시 1

 

층 대성당 옆쪽에서 노래를 부르던(정말 그때 노래 잘했었다.)성가대의 모습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특히 난 당시 지

 

휘자이던 유종석 야고보 선생님의 지휘하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었다. 그리고 가끔 내가 그 자리에 서는 상상

 

을 하곤 했다. 물론 훗날 그게 현실로 돌아오리라곤 꿈에도 생각치 못했지만 말이다.

 

 나는 그때 상당히 친했던 오윤택(프란치스코)-전학와서 처음 사귄 친구-이한테 나랑 성가대엘 들어가자구 했었는데

 

그 녀석은 싫다고 했고 여름방학때쯤에 전례부엘 들어가서 결국 고2까지 전례부에서 성당생활을 한다.

 

 이미 기회를 놓쳤다구 생각했는지 아니면 성가대에 들어가고픈 맘이 그다지 절실하지가 않았는지 그저 바라보는 것

 

만으로 만족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후회되는 점이 그거다...

 

 교리는 열심히 했었다. 호준,현우는 둘이서 같은 반이었구... 나는 경수랑 그 누구더라... 이름은 기억이 안나는데

 

외국으로 떠버린... 꽤 친했던 녀석... 암튼 그녀석이랑 셋이서 같은 반에서 열심히 떠들었다. 선생님은 지금 학사

 

님이신 한호섭 요셉 선생님이셨는데... 기타치면서 노래부르는 걸 좋아하셔서 중1반 치고는 드물게 교리시간에 노래

 

부르는 시간이 많았구 난 그걸 아주 좋아했다. (회지루 확인한 결과 우리반은 안드레아 반이었구 회지에 반 소개하

 

는 글을 쓴게 나였군...)

 

 한편, 성당 이벤트 랭킹 2위가 다가오고 있었다. 내 생일 전후로 다녀왔던 95년 코이노니아... 그 뜨거웠던 여름이

 

왔다.

 

                                                            

                                                         다음편에 계속...

 

*갈무리 회지 : 연중 최고행사였던(슬프지만 이젠 과거형이 되어 버렸다.) 갈무리가 끝나면 왠만한 교과서 두께의

 

               회지를 선물로 받았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성당에서의 추억과 우정을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

 

               는 매개체였기에 인기가 많았는데 96갈무리를 끝으로 편집부의 해산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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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편두 썰렁해져 버렸네... 글두... 다음편에선 꿈의 이벤트 ’코아’가 있잖아~~요~~

 

 기대하란 말.. 못하겠네 그려 ^.^;

 

 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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