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남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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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6-30 ㅣ No.5043

 

남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욕망을 합리화하지 마라

 

프레드릭은 아내와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오히려 그 반대

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내 클로디아와 아이들은 고통받고 있었다.

프레드릭은 그들에게 정말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그의 머리 속을 맴

돌고 있는 일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그는 스스로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내 클로디아가 일을 좀 줄이고 대신 좀더 많은

시산을 자신이나 가족과 함께 보내달라고 부탁했을

때, 그는 자기는 즐겁게 일하고 있으며 일은 자신

에게 일종의 취미와도 같은 것이라고 말했었다.

과연 프레드릭은 자신의 내밀한 욕망을 바르게 보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

자신의 동기가 좋은 것이었는지 아니면 좀더 많은

부와 명예, 성공, 자신감을 얻기 위한 것이었는지,

또는 성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는지 스스로에

게 물어봐야 한다.

자신의 내면 깊숙이 존재하는 욕망의 본성을 자세히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욕망과 동기의 진정한 얼굴을 발견하려면 평상시에

깨어있는 마음을 수행해야 한다.

우리의 가장 깊은 욕망은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단지 좀더 많은 명예와 부,

권력, 자신감, 성욕을 추구하기 위한 것인가?

환경운동이나 사회운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 중에는

남을 위한다는 명분 뒤에 자신의 고통을 감추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들의 진짜 동기는 자신에 대한 부정적 감정, 마주

하고 싶지 않은 문제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욕망

이다.

그런 사람들은 결코 내면의 발전을 이룰 수 없다.

자신도 돌보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도울 수가 있겠

는가.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남을 행복하게

할 수 있겠는가?

 

프레드릭의 하루하루는 힘든 일의 연속이었다.

그는 출세하고 싶었다. 사람들 또한 그가 출세할 거

라고 기대했다. 그는 조금도 틈이 없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살 수도, 가족 곁에 있어줄 수도

없었다.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한 출세욕, 명에욕을

가족을 위한 사랑이라는 가면으로 덮여버렸기 때문

이다.

클로디아가 그들의 현실과 고통을 좀더 명확하고

바르게 보기 시작했을 땐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었다.

기차는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기에 도저히 멈출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을 멈추고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찾아야 한다.

나에게 불교의 진리인 다르마와 진리를 수행하는 공동

체인 승가가 그런 존재였다.

다르마와 승가를 불교적인 용어로 표현하든 비불교적인

용어로 표현하든 그것이 길임은 분명하다.

함께 모였을 때 그 구성원들은 자신의 상황을 깊이 바라

보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무지는 그릇된 인식의 근원이며, 고통을 낳는다" 라는

붓다의 말처럼 그릇된 욕망은 언제나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인식의 본모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식을

자세히 살펴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확신하기 쉽지만 우리의

생각은 종종 틀린다.

 

하나의 생각을 믿는 사람은 많지만 그 생각의 본모습을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정치가로서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변함없이 간직해온

어느 정치인의 신념이 사실은 잘못됐을 수도 있다.

그의 생각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고통받았다면 그건

누구의 잘못인가?

그 정치인은 국민들이 행복해지기를 원했을 뿐이라고

되뇔지 모르지만 결국 남은 건 모두의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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