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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용서가 되질 않습니다.(신부님 읽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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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61.106.83.*]

2007-07-09 ㅣ No.5593

 
 
  결혼전 외사랑했던 여인이 생각나는군요.
  연중 300일을 그녀의 아파트를 지나야 했지요.
  불꺼진 그녀의 창가를 잠시 바라보면서
  그 밴취에 앉아 담배한대 물곤 했답니다.
  냉담 말기가 된 당시에는 이어폰의 해바라기 노래가 유일한 친구였답니다.
  소나기도 시원한 위로로 다가오곤 했지요.
  그 때 생긴 윤수일의 아파트 노래가 요즘도 여흥곡으로는 관심이 결여되네요.
 
  주님의 섭리는 오묘하답니다.
  사람이 내리지 않는 양화대교 입구에
  어느 할머니 한분이 손녀의 대입 치성을 위해 내리신 날 이후
  도시의 야경을 품은 강물이 물침대로의 유혹으로 오더니
  어느날 양화진 성지내 누군가의 땜빵 가수가 되었네요.
  아들의 마음 또한 모르는 이성에 대하여 애틋하겠지요.
  사랑에는 조건이 없지요.
  이때에 부모 말씀이 들어오겠습니까?
  우리도 육의 그것에 하느님의 영을 왕따시킬 때가 많은 것을요.
 
  하지만 부모는 부모일 것입니다.
  오늘아침 화장을 하는 아내의 거울을 보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당신도, 어느날 아들에게 배신감 당하고 싶지 않으면
  기도하는 습성부터 다시 길들여야 할 것이라고,
  어린 딸은 자정이 넘어 학원에서 귀가하여
  숙제 안해가면 매 맞는다고 울 때를 보면
  없는 돈이라도 긁어 위로를 해야합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이들이 그렇게 되었더군요.
  아침에 아이들하고 기도하자면 신경질부터 보냅니다.
 
  기도도 나 홀로 하는것이 편하지,
  아이들하고 기도할라치면 초고속 인터넷 저리가라입니다.
  저는 외사랑하였던 로사를 단 한순간도 서운해 한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서운감이 밀려오면 무조건 머리를 털 수 있었거든요.
  지금 아들이 그 여인을 그렇게 사랑하는듯 합니다.
  그리고 자매님은 그 아들의 어머니입니다.
  큰 은총이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저는 그해 성탄 성야때에
  로사가 보고싶어 화곡본동 미사로 초대받을 수 있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주님 제대도, 신부님도 볼 수 없었으며
  로사 찾는걸 포기하고
  파견성가가 끝난뒤
  본당 문까지 이르렀을 때
  문득 고개를 돌릴 수가 있었답니다.
  로사 모녀더군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순간은
  이 두사람이 어둠속으로 나를 등지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마도 자매님의 아픔과 같을 것입니다.
  이 아픔을 성부와 성모님께도 나누어드리세요.
  저는 더뎌서 꼬박 십년 뒤
  남, 북 정상이 악수한 그날에
  미사가 끝난 뒤
  이번엔 성부께서 저를 부르시더군요.
  난데없이 '도민고야, 너를 이 곳으로 초대한이는 로사와 로사의 어머니란다'의 이 한말씀속에
  나의 모든 기억은 사라지고
  나의 모든 지난 기억이 되살아났답니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웠던 기억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사건으로 변모된 것이지요.
  자매님도 그리 되실 수 있답니다.
  용기를 잃치 마세요.
  저야 요즘은 가끔
  주사위 숫자를 미리 정해놓고
  주님을 종으로 부리려는 기도는 하지 않치만
  이건 기도가 아니라 주문이라 하잔아요.
  아무튼 기도는
  청원보다 감사가
  감사보다 찬미가 좋타합니다.
 
  그렇타고 저처럼 무조건 찬미만 하려하진 마세요.
  청원은 여인의 특권이기도 하잔아요.
  자매님께 매일 성경과 묵상을 권하고 싶습니다.
  저야 남, 북 정상 만난날의
  다마스커스 회두의 은사로
  100일동안 꼬박 매우 선명한 해석의 능력으로
  어린 아이들을 위시한
  가족들에게도 매일성경 말씀의 찬미를 주입시킬 수 있어 좋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더 어린아이가 되어있답니다.
 
  하지만 이들도 시간이 흐르면
  여와 남이 서로 호감을 갖을 때
  자칫 부모 마음을 잊고
  스스로 힘든 길을 택해야 할 수도 있기에
  자매님도 이럴 때일 수록
  우리들의 죄로 인하여
  세번 넘어지시는 주님께
  세번 일으켜드릴 수 있는 용기를 청하시기바랍니다.
  부축해 드리라는 이야기지요.
  십자가의 길을 권해드립니다.
 
  자매님이 힘들면 주님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처럼의 시행착오는 겪지 마세요.
  저는 그 때
  오로지 그녀에 대한 갈망 뿐이었답니다.
  매일 그녀에 대한 애착과 갈망 뿐이었기에
  그녀에게 마음의 편지를 써야 했지요.
  왜 채념어린 그런 것 있잔아요.
 
  그런데 정작 그녀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으로부터
  사랑받아 성숙되는 꽃의 심리로
  매일 그 편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여심을 모르던 제가 그것을 알 수 없었던 것이지요.
 
  결국 그녀는
  그것의 우편 배달부와 결혼하고 말았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답니다.
 
  그 우편 배달부를
  세상속에 물든
  그런 우편 배달부로 만들지 마시고
  성체조배 때의
  주님으로 나누어보세요.
 
  분심이 들면
  내려놓는 수련도 나누어보시고요.
  평화가 올 것입니다.
  최소한
  아들과 그 여인에게도
  자매님의 평화를 위한 기도가
  선이 되지 악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선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고
  악은 사탄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방해하는
  어둠의 세력을
  자매님 충분히 선교할 수 있습니다.
  이왕이면 전교도 해주세요.
  자매님이 어머니이시기에
  성모님 맘을 더욱 헤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용서가 어려우면
  사제와 하나되어
  교회와 하나되어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미사에 참례할 때
  주님의 제단위에 그냥 올려드리는 것도 필요합니다.
 
  생활속의 준성사로는
  그것을 내려놓는 것도
  정신 건강에 좋쿠요.
 
  그러면 섬멸되지 않은 악은
  무관심 공격을 감행하려 들겠지요.
  그래서 늘 깨어나는 것이 좋코
  또한 고통은 최고의 은총이기에
  이럴 땐 조금 멀기도 하겠지만
  순교자의 고통을 묵상하거나
  헐벗은 이웃을 기억하거나
  자매님이 원하는
  믿음과 소망뿐이 아닌
  사랑까지 할 수 있는
  방법의 디딤돌이 참 많습니다.
 
  일단 자매님께서는
  주님안에 쉬는
  성체조배가 필요하실 듯 합니다.
  지금도 잘 하시겠지만
  용기 잃치 마시기 바랍니다.
 
  그저 생각나는데로 글을 올렸네요.
  너그럽게 양찰하여주시고
  잠시 자리 비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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