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아세요?

인쇄

사비나 [kimcupid] 쪽지 캡슐

2000-05-13 ㅣ No.3098

스님이 동성학교로 간 까닭은?

+사랑하는 예수님! 모두 한마음으로 사랑하게 해 주세요.

부처님의 생일날!!!

북한산의 정기를 받으며 힘들었지만 자연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맑은 미소의 원성스님이 동성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이 저를 기쁘게 한 하루였습니다.

사제와 승려의 향기로운 만남

 

‘향기롭고 아름다운 만남.’

 

지난달 28일 서울 혜화동 동성고 교정에서는 끊어지지 않는 ‘연(緣)’을 간직한 아름다운 만남이 있었다. ‘천국과 정토(淨土)’, ‘사목과 수행(修行)’, ‘사랑과 자비’, ‘영원한 생명에의 참여와 해탈(解脫)’이라는 서로 다른 구도의 길을 걸어가는 가톨릭 사제와 승려의 만남.

서울대교구 시노드 사무국 곽성민 신부와 조계종 원성 스님은 이 같이 전혀 다른 구도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사제지간이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으도 묶여 있다.

 

“정말 반갑다.”

 

“신부님은 얼굴이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네요.”

 

세상에 참된 진리를 설파하기 위해 부처님께서 오신 날을 기념하는 경축일을 며칠 앞두고 이뤄진 만남. 스승과 제자는 반가운 마음에 한참 동안 잡은 손을 놓지 못했다. 30년이라는 세월의 차이, 그리고 서로 다른 구원관과 내세관도 이들의 인연을 막지 못하는 듯했다.

곽 신부와 원성 스님이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곽 신부가 동성고 교장으로 재직하던 88년. 지금은 동자승 그림으로 유명 인사가 되었지만 당시 원성 스님은 그저 평범한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곽 신부는 원성 스님이 일찍부터 ‘천재성’을 드러냈다고 그의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원성 스님은 고등학교 때부터 산사에서 행자생활을 했어요. 더구나 각종 미술대회에 나가 입상하고, 교복을 직접 디자인할 정도로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원성 스님을 지칭하는 곽 신부의 말은 낮춤말에서 어느새 높임말로 바뀌었다.

당시 원성 스님에 대한 곽 신부의 배려는 각별했다. 원성 스님은 재학 시절 ‘아침 예불’ 때문에 늘 지각을 하곤 했지만 곽 신부의 배려로 일반 지각생들과는 다른 특별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원성 스님이 고등학교 3학년 때 ‘계(戒)’를 받기 위해 합천 해인사에서 한달간 행자교육을 받게 해 달라고 청했을 때에도 곽 신부는 흔쾌히 허락했다.

원성 스님에 대한 곽 신부의 애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원성 스님 졸업식 때 곽 신부가 직접 인사동에서 승복을 구입해 선물했을 정도다. 끊임없는 정진을 통해 진정한 구도자가 되어달라는 격려의 표시였다.

원성 스님은 “아마 그때 곽 신부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제가 이 길을 갈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라며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곽 신부의 사랑은 원성 스님이 졸업한 이후에도 계속됐다. 지난 92년에는 원성 스님이 있던 합천 해인사에 직접 찾아가 함께 참선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가톨릭계 고등학교를 나와 신부님과 이렇게 친하게 지내는 것 자체가 인과요,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생을 바쳐 하느님을 따르는 신부님과 수녀님들을 마음속 깊이 존경하고 있습니다.” 원성 스님은 가톨릭계 학교에서 3년을 공부한 덕분인지 가톨릭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여기에는 곽 신부와 나눈 사제지간의 정도 한몫을 했다.

로만 칼라와 승복이라는 복장의 차이뿐, 두 사람은 ‘사랑 안에 담겨진 진리(Veritas in caritate)’라는 동성고 교육이념 안에서만큼은 하나였다.

“원성 스님! 수행에 정진해서 해탈에 도달하세요.”

 

“신부님께서 열심히 생활하시는 것을 보니까 저도 신부님을 따라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가르침을 주십시오.”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장황하게 많은 말을 주고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서로의 눈빛에는 사제지간의 정과 격려가 가득했다. 오랜 인연에서 나오는 이심전심의 대화가 두 사람 사이에서 한참 동안 오갔다.

곽 신부는 원성 스님과 헤어지면서 꼭 하고 싶었던 마음속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그동안 편지를 통해 서로의 생활을 나누고 충고도 해주었지만 요즘처럼 원성 스님이 걱정되는 때가 없습니다. 사실 원성 스님이 너무 유명해지는 것이 반갑지 않아요. 속세의 유명세가 혹시 수행에 지장이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산속에만 있다고 해서 수행이 잘 되는 것이 아니고 속세에 있다고 해서 수행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바쁘게 생활하다 보면 세상을 멀리 떨어져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 신부님 말씀을 잘 기억하겠습니다.”

 

스승 신부의 걱정을 미리 알았을까. 원성 스님은 가까운 시일내에 산사로 들어가 수행에만 정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광호 기자]

● 곽성민 신부 76년 서울대교구 사제로 서품. 성신고등학교와 동성고등학교에서 10여년 동안 교사로 지냈으며 동성고등학교 교장을 거쳐 지난 95년부터 99년까지 서초동본당 주임을 역임했다. 올해초부터 서울대교구 시노드를 전담하고 있다.

 

● 원성 스님 천진 무구한 표정, 동자승의 해맑은 미소를 간직한 그는 동자승 선화(禪畵)로 뉴욕, 도쿄, 밀라노 등지에서 20여차례 개인전을 가졌을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CF에도 출연하는 등 불교계 화제가 되고 있다. 동성고등학교 졸업 후 해인사 강원(講院)을 거쳐 지난해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했다. 당분간 붓을 접고 산사에 들어가 수행에 정진할 계획입니다.



41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