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동(구 미아3동)성당 게시판

[주영에게]진리의 바다는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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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원 [94deofilo] 쪽지 캡슐

2000-02-01 ㅣ No.768

회신을 하려고 했는데 자기가 회신을 하면 나는

어떻게 '(thread)'에 매달지?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의 것만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도 나의 믿음만이 최고라고 믿었답니다.

 

물론 아직도 가톨릭 신앙이야말로 최고라고 인정을

하고.

 

사람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엇인가에 한번

빠지면 우물안 개구리가 되기 쉽지요.

 

그런데 우리와 다른 세계를 보게 되면 처음에는

혹하게 되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 단계를 넘어서면

자기가 몸담고 있는 세계를 더욱 잘 볼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지요.

 

불자의 냄새가 난다고 했는데 올 겨울에는

불교의 세계에 심취를 했었습니다.

해인사에도 다녀왔구요.

 

잘 보면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들어온지는 2백년이 조금

넘습니다.

불교는 거의 10배나 되지요. 오히려 불교는 이 땅에

들어와 민족종교와 가깝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민중과 몇천년을 살아온 종교가 서양에서

들어온 종교때문에 무시당하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매도해온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것을 너무나 모른채로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받아들이고만 있지는 않은지?

 

하지만 가톨릭 신앙도 2천년을 흘렀지요.

역사가 깊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것을 넘어서서

점점 바다에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종교의 문제는 내것, 너희 것 이런 것과는 무관함을

일단은 밝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점은 반드시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내용과 천주교에서 말하는 내용이

비슷한 점을 무척 많이 보았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불자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나의 신앙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칼이 날카롭게 되려면 마구 사용해서가 아니라

숫돌에 갈거나 불망치로 두드려서 다시 날을 세워야

합니다.

불교는 이런 의미에서 내 가는 길에 일련의 숫돌이

되는 것 같습니다.

 

숫돌은 칼이 될 수 없지요.

혼재되어 있는 상황에서 무엇이 자신인지 남인지

분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와는 다른 무엇이 올때 자신의 정체성이나

길이 확연히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누리는 은혜와 은총을 알게되고

그 분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게 되지요.

 

진리는 바다처럼 넓고 깊습니다.

그 바다에 뛰어들려고 합니다.

아직 불교 경전을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직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복음입니다.

내 자신이 복음화가 되어있지 않은데 말입니다.

일단은 칼을 갈았으니

더욱 철저히 복음에 뛰어들어야 겠지요.

 

어쨌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하셨으니까.

참 자유는 진리를 누리는데 있고 믿음에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안에 우리가 살기까지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고?

 

투신하는 것, 복음대로 살아가는 것. 정말 이상(理想)이기만

할까?

 

아이고 또 너무 어려운 이야기만 풀어놓았네.

 

상임위 연수때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성당에서 꼭

해야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먼저 가야만

했습니다.

저도 오래동안 같이 있고 싶었는데 지난번 그런 일이

있어서 온 신자들 앞에서 조는 바람에 망신을 당한일이

있었거든요.

 

재미있게, 혹은 진지하게, 우리 사는 이야기를 이야기할

기회는 반드시 있으니까 너무 아쉬워하지 마세요.

 

옛말에 '회자정리요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反)이란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한자가 맞나?

틀리면 가르쳐주고.

 

그보다도 가차없는 질문과 비판을 많이 부탁합니다.

그래서 저를 넘어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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