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우리는 이미 도착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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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8-02 ㅣ No.5206

 

 

우리는 고통으로부터 치료받기 위해 명상을 한다. 명상은 우리에게 고통을 변화시키는 근본적인 치료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치료는 무엇보다 본질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다.

삶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우리는 그 두 가지 차원을 모두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첫번째 차원은 파도와 같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적인 차원이라 부른다. 두번째 차원은 바다와 같은 것으로, 우리는 그것을 궁극적인 차원, 곧 절대 세계라 부른다. 우리는 삶을 살아 가면서 대개 파도만을 만난다. 하지만 바다와 만나는 법을 배울 때, 명상이 주는 최고의 열매를 얻을 수가 있다.

역사적인 차원에서 볼 때, 우리에게는 출생 증명서와 사망 증명서가 주어진다. 그대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는 날, 그대는 고통을 겪을 것이다. 누군가 그대에게 다가와 관심을 보여 주면, 그대는 다소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의 우정과 다정함, 따뜻한 손길을 느낄 것이다. 이것이 파도의 세계다. 그것은 탄생과 죽음, 상승과 하강, 나타남과 사라짐으로 특징지워지는 세계다. 파도에는 처음과 끝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특징이 바다에서 생겨났다고 말할 수 없다. 바다의 세계에는 탄생과 죽음, 존재와 비존재, 시작과 끝이 없기 때문이다. 바다를 만질 때 우리는 궁극적인 차원에 있는 실체를 만지는 것이고, 바로 그 순간 앞에서 말한 모든 개념들로부터 벗어날 수가 있다.

바다의 파도를 보라. 종이 위에 파도를 그려 보라. 첫번째 파도, 두번째 파도, 세번째, 네번째..... 파도의 삶을 사는 것은 매우 어렵다. 우리들 각자는 하나의 파도다. 자신이 타어났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자신이 죽어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순간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이런 생각들이 날마다 우리를 괴롭힌다.

’그전에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순간 이후로 나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지금 나는 존재한다. 그전에 나는 존재하지 않았고, 이후에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이런 생각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그 생각들은 그대가 느끼는 모든 두려움을 만들어 낸다. 이제 그대는 철학자가 된다. 두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다른 파도들과 같아지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너무나 뛰어나다. 그래서 다른 파도들로부터 존경을 받는다. 왜 신은 나를 작은 파도로 창조하고, 그를 큰 파도로 창조했을까? 여기서 심한 질투와 시기가 생겨나고 그대는 혁명가가 되길 원한다. 그대는 모든 것을 평등하게 만들기를 원한다. 파도의 삶을 계속 살아갈 때 우월감과 열등감, 아름다움의 차이 같은 것이 계속 그대를 괴롭힌다. 그대는 흔들린다. 그대는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거기 그대가 만나지 못한 자신의 또 다른 차원이 있다. 지금 그대가 만나고 있는 것은 파도의 차원이다. 거기에는 탄생과 죽음, 위와 아래, 존재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있다. 하지만 그대는 내가 말하는 다른 차원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바다의 차원이다.

그대는 자신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그대 자신에게로, 그대의 진정한 집으로, 그대는 도착하길 원하지만 결코 도착하지 못한다. 그대의 진정한 집은 바로 그대 안에 있으며 그것은 바다이다.

파도는 파도의 삶을 살면서 동시에 바다의 삶을 살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궁극적인 차원을 살아야 한다. 지금 여기로 돌아올 때, 우리는 궁극적인 차원과 만날 수 있다. 현상의 측면에서 보는 것은 파도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파도는 다른 모든 파도들과 다르다. 자기가 있고 자기 아닌 것이 있다.

자신의 진정한 집, 곧 바다로 들어갈 때, 그대는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다가 된 그대는 결코 죽을 수 없다. 우월함과 열등함, 아름다움의 차이도 없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바다는 파도의 진정한 본성이다. 자신이 바다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대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그대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생각과 두려움과 욕망은 더 이상 그대를 괴롭히지 못한다.

2세기 무렵의 인도 철학자 나가르주는 물었다.

"어떤 것이 탄생하기 전, 그것은 존재하고 있었는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았는가?"

닭이 알을 낳기 전, 알은 존재하고 있었는가 아니면 존재하지 않았는가? 어떤 것이 탄생하기 전 이미 그것이 거기에 있다면, 이미 존재하고 있는 그것은 어떻게 태어날 수 있었을까? 아기 역시 엄마의 자궁 속에 이미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아기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가르주는 이미 존재하는 것은 태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태어난다는 것은 무에서 어떤 것이 생겨난다는 의미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에서는 어떤 것도 태어날 수 없다. 한 송이 꽃은 흙과 광물질, 씨앗과 햇빛, 비와 그 밖의 많은 것들로부터 탄생한다.

명상은 우리에게 모든것은 태어나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 준다.

삶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하나의 연속이다. 우리는 생일 축하 노래 대신 ’삶이 계속 이어진 것을 축하하는’ 노래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조차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날이다. 어머니는 다른 모습으로 계속 살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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