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우리는 이미 도착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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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3-08-07 ㅣ No.5215

 

 

지난 가을 영국에 있을 때 나는 이런 꿈을 꾼 적이 있다. 내 동생과 내가 시장 한가운데 서 있는데, 한 남자가 시장 모퉁이에 있는 자기 가게로 우리를 불렀다. 우리가 그곳에 들어갔을 때, 나는 그 가게에 진열된 물건들이 전부 내가 직접 경험한 사건들임을 깨달았다. 내가 동생과 함께, 도는 나와 가까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경험한 사건들이었던 것이다. 그 경험들, 그 물건들 대부분이 고통스런 것들이었다. 가난, 화재, 홍수, 배고픔, 인종 차별, 무지, 미움, 두려움, 절망, 정치적인 탄압, 불의, 전쟁, 죽음, 불행등이 그것이었다. 그 각각의 물건들을 만질 때마다 내 안에 큰 슬픔과 함께 자비의 감정이 물밀어 왔다.

그런 다음 우리는 그 가게의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기다란 탁자가 있고, 그 위에 초등학생 공책들이 여러 권 진열되어 있었다. 탁자 왼쪽 끝에서 나는 내가 쓰던 공책과 동생이 쓰던 것을 발견했다. 나는 내 공책으로 다가가 안을 펼쳐 보았다. 그곳에는 내가 어린 시절 경험했던 많은 행복한 일들과 의미 있는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물론 고통스런 일들도 적혀 있었다. 동생의 공책을 펼쳐 보았더니, 그곳에도 나와 비슷한 경험들이 적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어린 시절의 일들을 책으로 쓰고 있었는데, 그 공책에 적혀 있는 것들은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들은 내가 꿈에서만 경험한 것들이고 잠에서 깨어났을 때 전부 잊어버린 것들인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그것들은 전생에서 경험한 일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느 것이 맞는지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것들이 내가 정말로 경험한 일들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것들을 책에 포함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무척 기뻤다. 그것들을 다시는 잊어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 때, 우리를 안으로 불러들인 그 가게 주인이 끔찍한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내 오른편에 서서 내게 말하였다.

"넌 이 모든 일들을 다시 겪어야만 한다."

그는 마치 판결을 내리듯, 그리고 비난하듯 그렇게 말했다. 마치 나에게 그런 결정을 내릴 권위라도 있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내가 정말로 그 모든 고통을 다시 겪어야만 한단 말인가? 그 모든 화재, 홍수, 폭풍, 배고픔, 인종 차별, 무지, 미움, 절망, 두려움, 슬픔, 정치적인 탄압, 불의 불행, 전쟁, 죽음들을?

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 동안 내 동생과 함께, 그리고 다른 동료 여행자들과 함께 그것들을 겪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너무도 많은 어두은 터널을 통과했으며, 이제 마침내 넓고 자유로운 공간에 도달했다. 그런데 그 모든 일들을 다시 경험해야만 한다니!

나는 강한 반발심을 느꼈다. 그래서 속으로 외쳤다.

’아, 그건 안 돼!’

하지만 다음 순간 내 반응은 바뀌었다.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은 나를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없다. 설령 내가 이 모든 일들을 다시 경험해야만 한다 할지라도, 난 떨지 않을 것이다! 한 번 만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수천 번이 될지라도."

그 순간 나는 잠에서 깨어났으며, 꿈의 내용을 기억할 수가 없었다. 단지 방금 매우 강렬하고 중요한 꿈을 꾸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침대에 앉아 호흡을 했다. 그러자 서서히 꿈의 내용들이 떠올라 왔다. 첫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내가 며칠 내로 이번 생을 마치고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게 되리라는 예감이었다. 나는 마음이 평온했다. 죽음은 내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것이 잘못된 예감이라는 걸 알았다. 그 꿈은 그것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좀더 깊게 들여다보자. 나는 그 가게 주인이 내 안에 있는 두려움의 씨앗, 게으름의 씨앗을 대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내 영혼의 깊은 곳, 내 무의식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에 대한 나의 첫번째 반응은 역사적인 차원, 파도의 차원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두번째 반응은 궁극적인 차원, 곧 바다의 차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탄생도 없고 죽음도 없는 세계와 만났을 때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 그 남자와 맞설 수 있도록 내게 힘과 용기를 준 것은 바로 통찰력과 자유에서 나온 확신이었다.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7년이 지난 어느 날 밤이었다. 나는 한밤중에 문득 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가 밝게 빛나는 달을 보았다. 새벽 두세 시쯤에 떠 있는 달은 언제나 깊고, 평화롭고, 부드러운 빛을 지니고 있다. 아이에 대한 엄마의 사랑 같은 빛이다. 나는 어머니의 사랑이 나를 감싸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여전히 살아 있고, 언제나 살아 있으리란 것을 깨달았다. 잠에서 깨어나기 두세 시간 전, 나는 꿈속에서 어머니를 너무도 분명하게 보았다. 어머니는 젊고 아름다웠으며, 어머니와 나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뒤로 나는 어머니가 언제나 나와 함께 있음을 알았다. 어머니는 죽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의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늘 우리 안에 살아 있다. 우리의 깨달음은 곧 그들의 깨달음이다. 우리가 변화를 위해 하는 모든 일들은 곧 그들의 변화를 위한 것이다.

이곳에 흙을 만질 때, 그대는 저곳에 흙까지도 만지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만날 때, 그대는 과거와 미래를 만나는 것이다. 시간을 만날 때, 그대는 공간을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공간을 만날 때, 그대는 시간을 만나는 것이다.

 

이른 봄 레몬 나무를 만질 때, 그대는 서너 달 위에 나무에 달릴 레몬을 만지는 것이다. 레몬이 이미 거기 있기 때문에 그대는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대는 레몬나무를 역사적인 차원에서 만날 수도 있고 궁극적인 차원에서 만날 수도 있다. 어느 차원에서 만날 것인가는 그대에게 달린 일이다.

명상은 궁극적인 차원에서 자기 자신과 잎사귀, 그리고 나무를 만나는 것이다. 파도를 만날 때, 그대는 동시에 바다를 만나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수행이다. 앉아 있고, 걷고, 차를 마시는 동안 친구들과 함께 깨어 있는 마음을 실천한다면, 그대는 역사적인 차원에 살면서도 궁극적인 차원과 만날 수 있다 그대의 두려움과 고통, 분노는 쉽게 탈바꿈할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파도에 갇히지 않고 바다를 만날 수가 있다.

평화와 기쁨의 세계는 우리의 손끝에 있다. 우리는 다만 우리의 손가락으로 그것을 만지기만 하면 된다. 자두 마을의 주방에 들어서면서, 나는 명상을 배우러 온 여성에게 이렇게 묻는다.

"무얼 하고 있습니까?"

만일 그녀가 "당근을 자르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한다면, 나는 조금 실망할 것이다. 나는 그녀가 역사적인 자원에서 벗어나 궁극적인 차원과 만나기를 희망한다. 그녀는 단지 고개를 들고 미소를 지으면 된다. 또는 그녀가 다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가 내 질문을 듣고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왔다면, 고개를 들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전 지금 숨을 쉬고 있습니다."

이것은 좋은 대답이 될 수 있다. 그대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세상을 떠날 필요가 없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그대는 지금 이 순간에 살아 있어야 한다. 무엇이 그대로 하여금 살아 있게 하는가? 바로 깨어 있는 마음이다.

깨어 있는 마음을 가질 때 그대 주위와 그대 안의 모든 것이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될수 있다.

 

어렸을 때 나는 아프리카 정글에서 길을 잃은 프랑스인 사냥꾼에 대한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죽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정글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에고가 강한 사람이러서 신에게 기도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농담하듯 신에게 말했다.

"신이시여, 당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이곳으로 와서 나를 좀 구해 보시죠!"

몇 분 뒤, 한 아프리카인이 나타나 그가 정글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 주었다. 나중에 프랑스인 사냥꾼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신을 불렀는데, 흑인이 왔다."

그는 그 아프리카 신이라는 걸 몰랐던 것이다.

우리는 꽃과 조약돌, 새와 구르는 천둥을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 모든 것이 우리에게 하늘의 메시지, 장엄한 우주의 메시지를 전해 줄 수 있다. 모든 것이 이금 이곳에서 우리에게 삶을 일깨워 줄 수 있다. 어떤 것이라도 하찮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안에 기적적인 힘을 갖고 있다. 만일 우리가 깨어 있는 상태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만일 사랑과 보살피는 마음을 갖고 깨어 있는 상태에서 모든 걸음을 내딛는다면, 우리는 기적을 만들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기적이 일어나는 장소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깨어 있음 속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것은 자신을 대자유에 이르게 하는 일이다.

그대는 걸으면서 모든 걱정과 불안, 계획과 집착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킨다.

한 번의 발걸음은 그대를 모든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살아 숨쉴 때, 그대는 그대 자신을 변화시킨다. 그대의 자바로운 마음이 바로 그 변화된 자신을 증명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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