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동성당 게시판

두려움으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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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구 [YSK] 쪽지 캡슐

2003-02-08 ㅣ No.4488

 더 이상 하루를 지탱하기 어려운 순간에

 지친 영혼으로 나는 저 어두운 도시로 던져졌다.

 나는 몸도 마음도 몹씨 지쳐있었다.

 길에 그냥 쓰러져 버리지나 않을까  안간힘을 다하며  오가고 있었다.

 25살 나이 이후 맞은 가장 큰 위기였다.

 젊어서 굶주림과 죽음과 고문의 공포 때문에 그렇게 두려웠던 도시의 삘딩 숲 속으로

 하느님은 그렇게 나를 던져 버리셨다.

 ’아버지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내 영혼은 울부짖었다.

그리고 이제  벌써 10여개월이 지났다.그러나 놀랍게도

그 세월은 내게 기나긴 피정의 시간이었다.

내가 어차피 거쳐가야할 여정의 한 길목이었다.

나는 그동안에 저 소년의 가슴에 자랐던 두려움과 청년 때 생긴  두려움을 모두 극복했다.

 

두려움

 

스물 넷 스물 다섯의 나이에 내가 얻은 것이라고는 두려움 그것 뿐이었다.

수 없이 고백소에서 고백했던 내 두려움

사랑이라고는 겨울 풀처럼  말라있었고 나는 그 두려움을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다녔다.

 

그런데

10여개월의 여정에서 그 두려움이  큰 장애물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역경과 환난,가난과 박해 그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나는 극복한 것이다.

무엇이 정말 나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놀 수가 있을까?

도심지의 삘딩 숲을 지나면서 수 없이 나는 로마서 8장25절의 말씀을 묵상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사랑’

그것이 내게 있어 최상의 보배다.

그것이 내게 있어 최상의 가치이며 보람이며 그것이 내 삶의 긍극적 목표다.

 

 

순교하신 고조 할아버님과 할아버지 신부님과 아저씨 신부님의 영성을 묵상하게 된다.

우리 할아버님들을 점점 더 사랑하게 되었고 자랑스러워 하게 되었다.

그렇게도 무서움에 떨게 하셨던 할아버님들의 감옥 생활과 참수,무참한 죽음

그런 망상들로 부터 자유

 

 고조할머니와 어린 세 아들을 남겨 두시고 감옥에 갇히셨어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마저

버리셨던 고조 할아버님

 

나는 그 할아버님의 정신이 오늘 첨단의 시대에 도시의 삘딩 숲 저 위에서 위대하게 비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자손들에게 신앙이외에 그 아무 것도 물려 주신 것이 없으셨던 할아버지

그 신앙의 소중함을 나는 망각하고 하찮은 것들에 매혹되어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끝없는

방황의 시간들을 보낸 것이다.

 

 

나는 할아버님이 우리 자손들에게 물려 주신 신앙의 유산이 억만금의 재산 보다 더 가치있다는 아저씨 신부님의

말씀을 60살이 되어서야 이제 깨달았다.

 

 

IT의 강국, 글로벌의 시대, 선진국을 지향하는 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순교의 정신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하는 것을 묵상해본다.

 

 

세계의 빈곤,북한의 빈곤

북핵 문제

이라크 전쟁 위기

 

그러나 세계평화와 개인과 민족의 자유와 행복과 번영을 꿈 꾸는 인류의 소망이 분명히 보이는 이 시대에

그 누가 순교자들 보다 더 큰 그릇이겠는가

 

나는 정말 그분들의 정신이 얼마나 위대한가  깊이 되새겨 보게 된다.

하느님의 뜻을 담을 수 있을 만큼 크신 그릇

그리스도의 수난의 길을 같이 가셨던 순교자들

 

나는 이제 내가 태어난 이 도심지의 저 우람찬 삘딩들 앞에서 조금의 두려움도 없고 위축됨도 없다.

순교자들의 정신 앞에 그것들이 얼마나 초라한 것인가 새삼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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