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동성당 게시판

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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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구 [ysk] 쪽지 캡슐

2003-02-14 ㅣ No.4495

딸아

 

졸업을 축하한다.

 

명동 성당에서 있은 너희 졸업식은 감동적이었다.

 

’천주’로 시작되는 너희 교가를 부를 때 찐하게 마음이 울리고 감동의 눈물이 내 눈시울을 적셨다.

 

우리 집안이 겪어야 했던 숱한 수난의 세월이 갑자기 엄습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명동 벽돌 성당 , 돌 성수대,오랜 나무 문,제대와 파이프 올갠 들,나무들이

내 아픈 상처들과  아련한 기억들,슬픔들 위에

아름다운 그림를 그리고 노래를 지어주었기 때문이다.

 

내 삶이 일순간 승화되는 것을 느꼈다.

 

너희 할아버님과 아빠가 이 사회에서 얼마나 천덕구러기로 살아 왔더냐

출세도 모르고 권력도 모르고 그저 목숨 부지하려고 살아 온 서러운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너희 할아버님께서 계성 국민학교를 1학년 뿐이 다니시지 못했던 고통을 너는 모르겠지

아빠가 서강대학교를 졸업 못하고 슬프게 울던 아픔도 모르겠지

엄마의 슬픔을 더더욱 모를 것이다.

너희 고모들,너희 작은 아버지들

모두 가방 끈이 짧아서 우리가 태어난 이 도시는 슬프고 아픈 곳이었단다.

그리고 너희 오빠들

그 누구도 이런 아름다운 졸업식은 없었단다.

너의 졸업식이 아빠의 서러운 마음을 씻어 주는 구나 봄비처럼

너는 선조들의 순교정신을 아무 것과도 바꿔치기 하지말아다워

 

 

 

이한택 주교님의 졸업 강론 말씀이 얼마나 사랑과 정겨운 것이었더냐

주교님의 눈에

너희들은 너무나 소중한 소녀들이었고 미래의 주인이었다는 말씀을 나는 들었다.

너희들은 주교님들의 사랑과 부모의 사랑이 깔린 종현 성당 언덕을 밟고 다니며 3년이라는 세월을 살아 오 것이다.

종현 성당의 나무들도 모두 그런 사랑을 증언해 주듯이 서 있었다.

 

 

 

샛별 동산에서 사랑의 언덕에서

너희들은 성숙해 진 것이다.

 

명랑하고 밝은 너희의 밝은 모습에 아빠는 몹시 기뻤다.

 

지난 10여년 세월 아빠의 혼란 스러웠던 정신세계가 죄스러웠다.

한 참 너희들이 잘랄 때 아빠의 마음과 정신은 자꾸 병들어 가고 있었구나

용서해 다오, 아빠의 죄의 무게가 가슴을 짓 누렀지만

다행이도 요즈음 아빠는 할아버님의 순교정신에 마음을 집중하고 있단다.

얼마나 감사한일인 줄 모르겠다.

 

밖에서 밖에서 자꾸 큰 정신을 찾다 늘 되돌아 오곤 하는 나의 모습이구나.

 

여은 큰아기 마리아야

아빠가 이제부터는 순교정신으로 정말 열심히 살아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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