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오름
*** 마음이 울적할 때는 ***
이승철
마음이 울적할 때는
종로 5가에 가보라
동대문에서 왼쪽길을 따라
종로 3가까지 걸어 보라
초가을 따가운 햇살 아래
꽃과 나무와 무더기로 쌓인 난초들
땀과 눈물과 무질서한 언어가 진하게 배인 발자국과
질펀하게 어우러진 삶이 거기 있다
" 아따! 요것이 무슨 나무당가요 잉"
" 하모 그기 당단풍나무랑 안카요"
채소 한 줌과 찐 고구마 몇 개의 노년을 파는 할머니
백화점 삼분지 일 값의 품질 좋은 넥타이가 즐비하고
값싸고 좋은 물건은 다 있다, 없는 것 빼고
주머니가 얇아도 한 개쯤 골라 사는 즐거움도 있다
신사 숙녀의 체면 같은 건 의식하지 말자
단 몇 천원으로 찌부둥한 기분까지 날려버린다
늘씬하게 잘 빠진 난이 한 촉에 오천원 팔천원 만원
너무 볼품이 없어 발길에 걷어채어도 밟고 지나갈 것 같은
못생긴 난이 한 촉에 십만원 이십만원 또는 삼십만원
사람도 겉만 보고 판단할 일이 아니라고
못생긴 난초가 가르쳐 주고 있다
꽃도 구분하기가 어렵다, 너무 잘 만들어
조화가 생화 같고, 생화가 오히려 조화 같다
어디 조화뿐이겠는가
싸늘한 가슴을 따뜻한 말로 포장한 사람들이
정의라고, 민심이라고, 큰소리치는 세상인 걸....
거리를 걸으며 가끔은 하늘을 보라
하늘에 목메달고 죽은 사람들이
히히 웃고있는 하늘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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