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음동성당 게시판

모두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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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학남 [obbji] 쪽지 캡슐

2004-12-08 ㅣ No.3814

  


Abbey sunrise
모두의 것입니다 사람들은 참 아무것도 모른다 밭 한 뙤기, 논 한 뙤기 그걸 모두 '내' 거라고 말한다 이 세상 온 우주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내' 것은 없다 하느님도 '내' 거라고 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아기 종달새의 것도 되고 아기 까마귀의 것도 되고 다람쥐의 것도 되고 한 마리의 메뚜기 것도 되고 밭 한 뙤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 '내 것이 아니다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 권정생의 시 '밭 한 뙤기' -
Near Pienza
기도할 때 자기가 하는 기도를 스스로 들을 때가 있습니다. 엊그제는 제단 앞에 루릎을 꿇고 기도를 하다가 내 귀에 들리는 나의 기도 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랐습니다. 나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주시옵서서' 의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내 것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참으로 고약한 기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대부분이 기도는 "집을 주시고 땅을 주시고 명예를 주시고 자리를 주시고 병을 고쳐주시고..." 하는 '주시고의 기도'입니다. 거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업어 달라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일용할 양식이 있으며, 사랑하는 벗이 있고, 주님의 성전이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습관적으로 자꾸만 '달라는 기도' 를 합니다.
A bit before sunset
분명한 것은 이 세상 모든 것은 내 것이란 없습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것이요, 모두의 것이지요. 우리가 잠시 빌려 쓰고 있을 뿐인데도, 우리는 자꾸만 내 것이라 말하고 내 것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어쩌면 인간의 역사는 '내 것의 역사'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땅도 내 것, 집도 내 것, 국가도 내 것, 남의 것도 내것. 그래서 내 것이 되게 하기 위해 싸우고 남의 것을 빼앗고,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죽고 죽이는 전쟁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Chianti Vineyards
'내 것이 되게 해달라는 신앙'은 분명 그리스도교 신앙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시고도 자기 것이라 고집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모든 이들의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은총을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선한 이든 악한 이든, 높은 이든 낮은 이든, 나이 많은 이든 어린 이든, 하늘의 햇빛처럼 공평하게 값 없이 내려주십니다. 이 또한 모든 이들이 골고루 나누어야 할 모두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은 우주만물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으십니다. 또 피조물인 우리 사람을 종 부리듯 마구 대하지도 않으십니다. 당신이 만드신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우리 사람들이 다투지 않고 서로 공평하게 나누어 가지며 평등하게 오손도손 살아가기를 바라실 뿐입니다. 그것은 모두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Gray and sand
극단적 이기주의가 이 시대를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자기만 잘 살면 남이야 어떠하든 상관이 없다고들 합니다. 자기 가족밖에 없고, 자기 교회밖에 없으며, 자기 나라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은 더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는 더 힘이 없습니다. 도대체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며 싸우며 살아가는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의 복음은 무엇입니까? 폴 틸리히 라는 신학자는 인간의 죄를 소외에서 보았습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고 남을 해하는 것만이 죄가 아니라 나와 너를 분리해서 너를 나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죄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삶을 통해 타인을 소외시키고 자기자신도 소외되어 살아가는 소외와 고립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Snow in "Crete" land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죄 중에 죄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자기 중심주의를 깨뜨리기 위해서입니다. 성서 73권의 핵심되는 말씀은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가 아닐까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할"는 이 말씀을 이루기 위해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나 아닌 모든 존재를 지금까지 남으로 보고, 싸움의 대상으로 보았다면, 이제부터는 네 이웃을 바로 '나'로 보라는 말입니다. 모든 것이 다 '나'라는 말입니다. 자식이 아프면 부모도 함께 아파합니다. 친한 친구가 슬퍼하면 나도 슬퍼합니다. 그들을 남이 아닌 나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나의 자식, 나의 친구만 내 몸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를 자기처럼 여기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분만 아니라 풀 한 포기, 새 한 마리, 나무 한 그루, 이 모든 것이 바로 '나'인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나라는 말은 곧 내 것이 아니라는 말이며, 모두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어느 것도 내 것은 없습니다. 모두의 것이며, 모두의 것이 '나'입니다.
Snow in "Crete" land
이제부터 나의 기도는 '주시옵소서'의 기도에서 "내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모든 게 내 것이 아님을 알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롤 바뀌어야겠습니다. "교회도 내 것이 아니요, 책도 내 것이 아니요, 땅도 내 것이 아니요, 밥도 내것이 아니요, 종달새 까마귀의 것이며, 다람쥐 메뚜기의 것이며,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라고 기도를 드려야겠습니다. 그래서 남의 것이 내 것이 된 것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버리심으로 모든 것을 자기로 여기셨던 주님을 본받아 우리도 마침내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이며, 하느님의 것인 이 모든 것은 곧 나 자신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사랑의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우리 사는 세상은 만물평등이 이루어진 참 생명의 나라가 되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나라는 이렇게 열어가는 것이지요. - 채희동 -
Autumn gold vineyards
Monticchiello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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