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세인트 에프렘 앙상블 제4회 정기연주회 관람기 -2016.07.02 1707_ 평화의 기도문은 출처불명

인쇄

. [119.194.105.*]

2016-07-05 ㅣ No.1702

게시자 주: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02.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찬미 예수님!

 

0. 들어가면서

다음은 2016년 7월 2일 의정부교구 일산성당에서 밤 8시에 개최되었던 의정부교구 St. Ephrem Ensemble제4회 정기연주회 참관기입니다.

 

앙상블 측에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게 연주회 실황 녹음 의뢰가 있었고, 그리고 상쾌하고 쾌적한 날씨에 이날 연주회 참관을 하면서 내내, 청중을 기도로 이끄는 것이 분명한 이 좋은 연주회에 오시어 또한 지켜보면서 듣고 계실 천주께서도 기뻐하셨을 것이 틀림없는 양질의 훌륭한 연주회라고 생각하였는데, 또한 연주회 참관 소감도 글로 작성해서 다른 분들도 읽을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이 있어, 기쁜 마음으로 즉시 수락하였으며,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별도의 시간을 할애하여,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필력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이 졸글이, 가톨릭 음악을 통한 선교/전교(mission)/복음화(evangelization)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조금 더 바란다면, 20-40대 청춘들의 영성 함양에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도 가져봅니다. 특히, 유아세례는 받았으나 그러나 부모의 냉담 때문에 신앙적 도움을 받지 못하고 영적으로 방황해 온 청소년, 청년들의 신앙 회복에, 이 글이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입니다.

  

0-1. 통상적으로 연주회 참관 시에 필자가 제일 먼저 살피는 것은 합창단/앙상블 단원들의 구성 비율입니다. 이번 성 에프렘 앙상블의 연주회의 경우, 필자의 기억에, 자매님들이 약 20명, 형제님들이 약 14명(Bass 8명, Tenor 6명) 정도로 구성되었기에, 형제님들의 따뜻한 음성이 부족하지 않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0-2. 그리고 특히 일부 악장(parts)들의 prelude에서 현악기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한데, 신호철 음악감독이 이끄는 트리니타스 쳄버 오케스트라 소속의 8명의 현악기 연주자들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또한 오르간 반주자 한 분께서도 수고해 주셨습니다. 

 

0-3. 아래의 본문에 서술된 바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연주회 당일에 직접 관람한 바와, 녹음된 바를 여러 번 들으면서 필자에게 다가오는 느낌들과, 가사들에 대한 그리스도교 신앙 관련 내용 분석으로부터 도출한 바들인데, 이들을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i) 좋은 곡들을 선정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에 합당하도록 잘 배열한, 상당한 숙고(deliberation) 끝에 마련된 것이 분명한, 좋은 프로그램을 제시하셨으며,

(ii) 지도신부님의 말씀처럼, 여러분들에게 거저 주어진 음악적 재능들을 공동체 구성원들의 성화를 위하여 자발적으로 내놓을 때에 비로소 이 재능들이 가능태 상태로부터, 은총(grace)의 한 종류인, 은사(charismata)들로 변성(變成)함(becoming)을, 그리하여 청중에게 은총으로서 다가감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좋은 연주회였습니다.

(iii) 그 결과로, 약 석 달 동안의 연습 기간을 거쳐 펼쳐진 이번 연주회의 종합적 앙상블(ensemble, 조정)이 무르익어감에 따라, 연주자들과 청중의 평화와 기쁨으로 가득찬 얼굴들로부터 점차 뚜렷하게 다가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필자가 감히 뵈올 수 있었던, 정말 좋은 연주를 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여러분들께서 앞으로도 이번과 같은 좋은 연주회를 개최해 주실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하며, 이렇게 훌륭한 세인트 에프렘 앙상블을 창설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셨다는 김재홍 마르코 지휘자의 노고를, 무심한 세월 속에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임을 특별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평소에 단원들을 뒷바라지하느라 크게 수고하셨을 것이 분명한 단장 및 임원들에게도 감사드리며, 그리고 이런 훌륭한 합창단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배려를 해 주셨을 것이 분명한 의정부교구에 또한 깊이 감사드려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상, 요약 끝)

 

1.

시작기도(주님의 기도) 및 지도신부님의 인사 말씀

 

지도신부: 이종경 비오

지휘자: 이혜형 엘리사벳

반주자: 이민경 소피아

데스칸트: 김진례 율리아나

음악감독: 신호철 베드로

 

2.

2-1. Ubi Caritas by  Maurice Durufle (1902-1986)

연주 시간: 약 2:32.

 

주: 일부 스마트폰에서 바로 위의 오디오 덱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다음의 링크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링크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954/69/05_Ubi_Caritas_M_Durufle.mp3

 

이번 연주회의 제1부를 성공적으로 연주한 뒤에 약 10분 정도의 휴식 시간을 가졌으며, 위의 곡은 제2부 첫 번째 곡인데, 참 잘 불렀다는 생각입니다.

 

이 곡은 성 목요일 세족례를 위한 교창송(antiphones)들 중의 하나로서 오래 전부터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사용해온 그레고리오 찬미가의 라틴어 가사를 또한 가사로 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1)

 

무반주 다성음악 연주의 경우에 각 파트별로 넉넉한 호흡 및 정확한 음정의 유지가 대단히 중요한데, 비록 연주회 공간의 음향이, 조금 과장하여 말하면, "boom box"의 소리처럼 쉽게 "웅웅"하면서 마구 퍼져 흩어지는 경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여건 아래에서도 차분하고 그리고 깨끗하게 잘 불렀다는 생각입니다.

 

테너 파트와 베이스 파트가 각각 둘로 나누어지기에 6성부 곡인데 (즉, 무대에 선 형제님들의 숫자를 고려할 때에 쉽지 않은 곡이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다른 파트들과 잘 조화를 이루는 형제님들의 푸근하고 따뜻한 음성이 좋았다는 생각입니다.

 

자매님들에 의한 그레고리오 선율의 도입 부분이 조금 더 가볍고 더 잘 모아진 더 깨끗한 단선율이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 아쉬움은, 어쩌면 이 부분까지 잘 불렀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라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 개인의 과도한/지나친 욕망(inordinate desire)이 요구하는 아쉬움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오르가니스트이기도 하였던 작곡가 M Durufle는 네 편의 모테트 곡들로 구성된 Quatre Motets, Op. 10과 한 편의 장례 미사곡 Requiem, Op 9을 남겼는데, 이들 모두 대단히 훌륭한 곡들로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오늘 연주된 곡은 이들 네 개의 모테트 곡들 중의 첫 번째 곡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족입니다만,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경우에, 2004년 5월 2일에 미국 펜실베니아주 State College Choral Society 봄 연주회 (장소: Grace Lutheran Church, State College, PA)에서, 1st Tenor Member로서, 참가하여 위에서 말씀드린 곡들 전부를 부른 경험이 있습니다. 만 12년도 더 지나서 당시의 연주회 프로그램과 악보들을 꺼집어 내어 들여다 보니, 세월이 참으로 무심하다는 생각을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당시 연합 성가대의 인원이 약 150명이었는데, 이 연주회의 무대에 서기 위한 오디션 통과 후 들은 첫 마디가, 악보 구입 안내였습니다. 연주될 곡들의 악보들 모두를 반드시 구입하여야만 연주회 무대에 설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다성음악 곡들을 부르는 상상을 해 보십시오. 대단히 커다란 바위들이 그러나 가볍게 사푼 사푼 굴러가는 듯한, 평소에 합창단 연주회에서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소리를, 대단히 인상적인 소리들의 어우러짐 속에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당시의 연주회 모습과 뒷풀이 모임을 담은 사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기능이 보강된 사진첩 제공자: 필자]:

http://org.catholic.or.kr/conservatory/frames/prelude2SCCS2004SpringConcert.htm [PC 사용자]

http://org.catholic.or.kr/conservatory/frames/SCCS2004SpringConcert.htm [스마트폰/PC 사용자]

 

다른 한편으로, 이곡은 "Ubi caritas et amor, Deus ibi est", 즉, "Where charity(caritas) and love(amor) are, God is there", 즉, "애덕(caritas)사랑(love)이 있는 바로 거기에, 하느님께서 계시옵니다"로 시작하는데, 그러나 우리말본 성경들과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의 핵심 문헌들에서 "caritas (charity)""amor (love)" 들 다를 모두 "사랑"이라는 동일한 순수한 우리말 단어로 번역하고 있기에 국내의 교우님들께서 그렇게 번역된 우리말본 문헌들만을 읽고서는 "이 사랑이 저 사랑과 어떻게 다른지"를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에(대단히 심각한 수준의 번역 오류라 아니 할 수 없음), 이 글이 또한 이들 두 "사랑"들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에 대하여 제대로 학습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예를 들어, 그동안 국내에서, 이 기도문 중의 caritas et amor, 즉, 애덕(caritas)사랑(love) 을 "사랑"과 "사랑"이라고 번역할 수는 없다 보니, 이들 둘 다를 임의적으로 뭉쳐서, "참사랑"으로 번역해 온 모양인데, 그러나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이들 두 "사랑"들 사이의 차이점을 모르는 분이, 자신의 무지를 감추기 위하여, 심지어 개인에 따라 대단히 주관적일 수도 있는 "참"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하면서까지, 의역 번역(free translaltion)을 하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악보에 이 곡의 가사를 우리말로 번역을 해 주신 신호철 음악감독께 감사드립니다.

 

이 가사에서 말하는 "amor(love, 사랑)"은, 이 라틴어 교창송의 두 번째 가사 중의 "Christi amor", 즉, "Christ's love", 즉,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구체적인 표현 때문에, 예를 들어,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991항의 신성(神性)적 사랑(amour divin, divine love)에서 말해지고 있는 사랑이며, 따라서, "love of concupiscence"를 말하는 종(種)적 사랑(special amor)만이 아니고, 네 종류의 종(種)적 사랑들로 구성되는 속(屬)적 사랑(generic amor)을 말함을 알 수 있습니다.(*2) 

 

-----

(*1) 게시자 주: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을 읽도록 하라:
https://en.wikipedia.org/wiki/Ubi_caritas

 

(*2) 게시자 주: 사실, 영어권 개신교 측에서 성경 번역 시에 주도적으로 라틴어 "amor"를 영어로 "love"로 번역해온 것부터, 왜냐하면 이들 두 단어들의 어원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아니 할 수 없다.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들을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47.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91.htm <----- 필독 권고

http://bbs.catholic.or.kr/home/bbs_list.asp?menu=question_and_answer&PSIZE=100
&searchkey=N&searchtext=%EC%82%AC%EB%9E%91
 

-----

 

[내용 추가 일자: 2016년 7월 20일]

그런데,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위의 (#) 부분을 작성하면서, 한편으론, 상당히 의아해 하였는데, (*1) 게시자 주에 안내된 자료를 잘 읽어보면, 위의 노래의 가사인 "Ubi caritas et amor, Deus ibi est" 라틴어 문장이, 과거에, "Ubi caritas est vera, Deus ibi est" [즉, (졸역) Where charity is true, God is there, 즉, (졸역) 애덕이 충만하게 구현(具現)된/실재(實在)하게 된(vera, true) 바로 거기에, 하느님께서 계시나이다]이었다는 언급이 주어져 있음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한 졸번역인 "애덕이 충만하게 구현(具現)된/실재(實在)하게 된(vera, true) 바로 거기에, 하느님께서 계시나이다"라는 문장이, 위에서 이미 우리말 번역 오류라고 필자가 지적한 국내에 알려진 기존의 번역문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께서 계시나이다"와 동일한 의미를 독자들에게 전달하지 않음에 또한 주목하십시오.

 

사실 이 부분에 대하여 어제 밤에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하였는데, 그러나 들여다본 바를 이글에다 무작정 추가하는 것은, 관람기이어야 하는 이 글이 더 길어질뿐만이 아니라 또한 일종의 여담/벗어남(digression)이므로, 이글의 주된 부분인 연주회 실황 음악 감상을 주되게 원하는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어쩌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필자의 판단에 따라, 별도의 글에서 다루고자 하오니,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서는 약간 수고스럼더라도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여 계속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04.htm <----- 꼭 필독 권고 

[이상, 2016년 7월 20일 내용 추가 끝]

 

2-2. Ave Maris Stella by Edward Grieg (1843-1907)

연주 시간: 약 2:43.

 

주: 일부 스마트폰에서 바로 위의 오디오 덱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다음의 링크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링크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954/69/06_Ave_Maris_Stella_E_Grieg.mp3

 

기뻐하소서, 바다의 밝은 별이여!(Hail, bright star of the sea)라는 제목의 이 노래의 가사는 8세기 경의 저녁기도 찬미가의 가사로 알려져 있습니다.(*1)

 

대부분의 특정 시각에 4성부-6성부를 유지하는 결코 쉽지 않은 무반주 모테트인데, 잘 불렀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옥에 티"라고 할까..., 첫 번째 조바꿈 후 두 번째 마디인 제6번째 마디 세 번째 박자에서 음정이 좀 떨어졌다는 생각입니다.

 

반주가 없는 경우에, 어느 한 파트의 음정이, 올라갈 때에는 [주파수들 사이의 비(ratio) 값으로 결정되는] 순정률적 온음 혹은 반음의 거리보다 더 적게 올라가나 그러나, 적게 올라간 만큼 정확하게 적게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갈 때에는 순정률적 온음 혹은 반음의 거리/간격대로 제대로 내려감으로써, 음값(pitch)이 떨어지면,(*2) 대개의 경우, 다른 파트들의 음정들도, 화음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미 떨어진 만큼 또한 떨어지게 되는데, 연주회 무대 위에서 바로 이 문제가 한 파트에서 0.01초도 안되는 짧은 시간 사이에 일단 한 번 발생하여 [다른 파트들의 음정들에 의하여 억압되어 소멸되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파트로 파급되고 나면, 연주를 멈추고 맨처음부터 다시 부를 수도 없고 하여, 하여튼 끝까지 부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

(*1) 게시자 주: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주어진 이 곡의 가사에 대한 글을 읽도록 하라:

https://en.wikipedia.org/wiki/Ave_Maris_Stella

 

(*2) 게시자 주: 지금 지적한 이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주된 이유는, (i) 입 안에서 소리가 모이는 공명점이 "올바른" 위치에 있지 않을 경우, 그리고 (ii) 노래를 부를 때에 음값이 올라가고 또 내려감에 따라, 덩달아. 입 안의 윗 천정 중앙부에 있어야 하는 공명점이 올라가고 또 내려가는 경우 등이라고 함.

-----

 

2-3. Alleluia by Ralph Manuel (1951 - ) 

연주 시간: 약 3:24.

 

주: 일부 스마트폰에서 바로 위의 오디오 덱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다음의 링크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링크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954/70/07_Alleluia_R_Manuel.mp3

 

알렐루 - 야! (찬양하라 하느님을!)(*)만이 가사인 상당한 난이도가 있는, 경건하게(reverently) 부를 것을 작곡가가 요구하는, Sharp 네 개(즉, D Sharp)로 시작하여, 제17번째 마디에서 C로 조바꿈되고, 그리고 제41번째 마디에서 Flat 세 개(즉, A Flat)로 조바꿈되어, 제54번째 마디에서 끝나게 되는 무반주 모테트 곡인데, 잘 소화하여 연주하였다는 생각입니다. 다가오는 편안함과 내재된 역동성 때문에, 청중이 상당히 좋아하였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개신교 신자인 것으로 파악되는 작곡가 Ralph Manuel에 대한 소개의 글은 다음에 있습니다:

http://www.morningstarmusic.com/composers/m/manuel 

 

-----

(*) 게시자 주: "할렐루-야"가 아니고 "알렐루-야"로 발음하는 것이 더 정확한 이 용어의 기원 등에 대한 글은 다음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34.htm <----- 필독 권고

-----

 

이상, 무반주 모테트 세 곡들을 함께 들어보았습니다.

 

2-4. Amazing Grace(놀라운 은총) by J. Rutter arr.

연주 시간: 약 4:33.

주: 일부 스마트폰에서 바로 위의 오디오 덱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다음의 링크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링크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954/70/08_Amazing_Grace_J_Rutter_arr.mp3

 

1779년에 출판되었고 시인이며 그리고 늦은 나이에 영국 성곻회 목회자의 길을 걸었던 John Newton(1725-1807년)의 시가 그 가사인, 피아노 반주를 수반하는 이 곡은, 영어권에 널리 잘 알려진 좋은 곡이라고 알고 있으며,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새삼스럽게 이 좋은 곡 자체에 대하여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별로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그런데 왜 이 곡이 그리스도교 신앙적으로 좋은 곡인가 하면, 단순히 듣기 좋아서라기 보다는, "은총(grace)"이, 특히 "자비의 은총"이, 하느님 보실 때에 우리의 영혼이 의롭게 되어 그리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에, 즉, 천당에 가서 영원한 지복직관을 누리는 데에, 절대적으로 필수적임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는 연주자들과 청중이 바로 이 "은총(grace)"이라는 그리스도교 고유의 전통적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제대로 알고서 부르고 또 듣는다면, 시인이며 작사가인 John Newton의 신앙 고백이 그 가사인 이 곡을 더욱 더 감사와 기쁨으로 부르고 또 들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다음의 주소들을 클릭하여, 이 노래의 가사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에 대한 글들을 반드시 여러 번 읽고 이들 용어들의 의미들을 숙지하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55.htm [은총의 정의(definition) 외]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89.htm [수용(受容)된 올바름(rectitude) 안에서만 오로지 의화가 가능하다] <----- 필독 권고

 

그런 다음에, 바쁘신 분들께서는 별도의 시간을 내어, 다음의 글들도 또한 읽으실 것을 권고드립니다:

http://bbs.catholic.or.kr/home/bbs_list.asp?menu=question_and_answer&PSIZE=
100&searchkey=N&searchtext=%EC%9D%80%EC%B4%9D

http://bbs.catholic.or.kr/home/bbs_list.asp?menu=question_and_answer&PSIZE=
100&searchkey=N&searchtext=799

 

2-5. 평화의 기도(Make Me a Channel of Your Peace) by Sebastian Temple (1928-1997)

연주 시간: 약 3:36.

주: 일부 스마트폰에서 바로 위의 오디오 덱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다음의 링크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링크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954/71/09_평화의기도_S_Temple.mp3

 

틀림없이 청중의 영혼들의 심장(heart) 안쪽으로 친한 이웃처럼 편안하게 다가갔을 것이 분명한 좋은 노래를 불렀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제91번째 마디부터 제102번째 마디까지 소프라노 데스칸트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떼굴떼굴 굴러가는, 옥소리 음성이 마치 한 송이의 빨간 장미처럼 솟아오르는 산뜻한 연주였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의 가사는, 국내에 알려진 바와 달리,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1181-1226년)의 기도문(*1)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좋은 곡을 1967년에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작곡가 Sebastian Temple (1928-1997)에 대하여서는, 예를 들어, 다음에 있는 안내의 글을 읽도록 하십시오:
http://www.ocp.org/artists/587

 

다들 잘 알고 계시겠지만, 나의 벗의 벗은 나의 벗이 아닐 수도 있으나, 그러나,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생각에, 왜냐하면 나의 교우의 교우는 항상 나의 교우이기 때문에, 향주삼덕(the three theological virtues)들(1코린토 제13장) 중의 하나인 애덕(caritas, charity)의 실천으로서 일상의 삶 속에서 누구나 서로에게(to each other)(로마 13,8), 서로의 성화(sanctification)를 위하여, 능동적으로(actively) 그러나 조용하게(quitely) 성취/구현(fulfill)해 나갈 수 있는 바[즉, 성령의 12개의 열매들(대중 라틴말 성경, 갈라티아 5,22-23)](*2)에 대한 권고가, 이 노래의 가사의 깊숙한 내면에 담겨있다는 생각입니다.

 

-----

(*1) 게시자 주: 다음의 자료들에 의하면, 1912년보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알려진 바는 역사적 사실로서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무슨 말씀인고 하면, 1912년 이전에 기록된, 이 프랑스어 기도문의 라틴어본 기도문을 찾을 수 없는 문제가 있다고 한다. 특히, 이 기도문이 널리 알려지게 된 배경은 아래의 첫 번째 자료 중의 History 항에 제시되어 있다. 혹은 더 자세한 내용이 담긴 두 번째 자료를 읽도록 하라:

 

자료 1: https://en.wikipedia.org/wiki/Prayer_of_Saint_Francis

자료 2: http://www.franciscan-archive.org/franciscana/peace.html 

자료 3: http://maria.catholic.or.kr/dictionary/term/term_view.asp?ctxtIdNum=3805 [굿뉴스 서버 제공의 가톨릭대사전]

 

(*2) 게시자 주:

(1)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성령의 선물들과 성령의 열매들의 차이점]을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69.htm <----- 필독 권고

 

(2) 성령의 열두 개의 열매들 중의 하나인 "평화(peace)"라는 그리스도교 전통적 윤리 신학 용어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의 글들에 있으니, "이 평화"가 세속의 국어사전 등에서 말하는 평화의 의미와 어떻게 다른지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하여,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02.htm [제목: 그리스도의 평화란???]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03.htm [제목: 평화(peace)] <----- 필독 권고

-----

 

2-6. 라신느의 찬미가(Cantique de Jean Racine) by Gabriel Faure (1845-1924)

연주 시간: 약 4:48.

주: 일부 스마트폰에서 바로 위의 오디오 덱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다음의 링크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링크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954/71/10_라신느의찬미가_G_Faure.mp3

 

다음의 주소 제공의 정보에 의하면, 스무 살 이상의 나이 차이가 있는 [동료(?)였던], 이번 연주회의 Curtain Call (앙콜) 곡으로 불리는 Psaume 150 (시편 150)의 작곡가인, Cesar Franck(1822-1890년)에게 헌정되었다고 알려진, 1895년에 프랑스 작곡가 Gabriel Faure (1845-1924년)에 의하여, 약관 19세의 나이에, 작곡되었고 그리고 1866년 8월 4일에 처음 연주된 곡이라고 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Cantique_de_Jean_Racine

 

이 곡의 가사는 17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비극] 극작가였던 Jean Racine(1639-1699년)에 의하여 쓰였고 그리고 1688년에 출판되었다고 합니다.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이 극작가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www.newadvent.org/cathen/12630b.htm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글의 마지막 두 문장들을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이 곡을 듣고 더 잘 이해하는 데에 혹시라도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 찾아서 전달해 드립니다:

 

(발췌 시작)

Racine was a sensitive, vain, and irritable man, with deeply religious feelings, and a keen, supple, and strong intellect. He displays in his work almost unique powers of psychological analysis, a wonderful delicacy of sentiment, and an exquisite sense of literary art.

 

라신느는, 깊숙하게 경신덕적인 느낌(religious feelings)들을,(*1) 그리고 어떤 예민하고, 유연한, 그리고 뛰어난 지성을 가지고 있는, 한 명의 감각적이고, 지나치게 자신감 있는(vain), 그리고 자극 과민성적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 안에서, 거의 유일한, 심리 분석의 힘들을, 정서(情緖)/정조(情操)(sentiment)(*2)의 경이로운 미묘함을, 그리하여 문예학(literary art)에 있어서의 한 정교한 감각을, 나타냅니다.

 

-----

(*1) 번역자 주: "느낌(feeling)"이라는 전통적 그리스도교 윤리 신학 용어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의 제3-1항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95.htm

 

(*2) 번역자 주: "정서(情緖)/정조(情操)(sentiment)"라는 전통적 그리스도교 윤리 신학 용어의 정의(definition)는 위의 주소에 있는 글의  제3-8항에 있다.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위의 곡을 듣는 분들이 다 느낄 것입니다만, 말로써 형용하기 힘든 따스한 그 무엇(something)이 다가와 나를 감싸는 듯이 끌어당기는 어떤 포근함을 한껏 느낄 수 있도록, 다정 다감하게, 잘 연주하였다는 생각입니다.

 

즉, 가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음악적으로 잘 소화하여 표현하였다는 이야기인데, 가사 중의 key words들은 "망덕(hope)"과 "애덕(caritas, charity)"이라는 생각이며, 이들은, 세례를 받을 때에 하느님에 의하여 세례자의 영혼에 주입되는 초자연덕(supernatural virtues)들인, 소위 말하는, 신덕(faith), 애덕(caritas, charity), 망덕(hope)으로 구성된, 향주삼덕(the three theological virtues)들(1코린토 제13장) 중의 두 개를 말합니다. 그리고, 또한 세례를 받을 때에 세례자의 영혼에 하느님에 의하여 주입되는 성화 은총(sanctifying grace)과 함께, 더 나아가, 이들 초자연적 은총들을 지상에서의 신앙 생활 동안에 끊기지 않고 지속적으로 하느님으로부터 받지 않으면, 그리스도인들이 이 삶 안에서 열망하는 가장 커다란 행복, 초자연적 행복인 지복직관의 상태에 장차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영생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지속적인 귀의/회심/윤리적 변화(conversion)(Credere in Deum)(*1)를 하여야 할 현실태적 필요성(actual necessity)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여기까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이 참관기 글을 작성하고 나서, 지금까지 말씀드린 전후의 연주곡들을 가만히 다시 살펴보니, 이어서 연주되는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라는 곡이 왜 이번 연주회의 주제라고 생각한다고 지휘자가 Curtain Call(앙콜) 곡을 연주하기 직전에 청중에게 말하였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이번 연주회 곡들 전반에 대하여 이해한 바에 의하면, 그리스도교 신앙적으로 청중에게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번 연주회의 후반부 곡들을 선정하여 이토록 잘 배열해 주신 분(들)의 묵상(meditation)(*2)과 노고(labor)에 또한 크게 감사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위의 곡의 우리말 가사 번역자가 누구인지 필자는 모르고 있는데, 혹시 알고 계시는 분께서 필자에게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1)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들을 필독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9.htm <----- 필독 권고

 

(*2) 게시자 주: 그리스도교 기도의 세 종류들 중의 하나인 "묵상(meditation)"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글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88.htm <----- 필독 권고 [링크 오류 바로 잡았음]

-----

 

2-7.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Guide us, we surrender ourselves to you)  - 작사: 이해욱 신부, 작곡: 김효근, 편곡: 이현주

연주 시간: 약 8:06.

주: 일부 스마트폰에서 바로 위의 오디오 덱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다음의 링크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링크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954/72/11_주님께모든것을맡깁니다_김효근.mp3

 

가만히 들어보면, 그 가사 내용이 너무 좋고, 선율도 이 기도문에 대단히 적합하게 작곡되었고, 그리고 이들 작사가와 작곡가의 의향을 잘 담은 좋은 연주를 하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좀 더 안내를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인터넷 검색을 하여 찾아 보았더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즉, 이 곡은 이해욱 신부님(도쿄 한인본당 주임, 서울대교구)의 기도문을 가사로 김효근 형제님께서 작곡한 곡이며, 2013년에 이르면 10개 국어로 가사가 번역되어 널리 애창되고 있는 좋은 곡이라고 합니다.(*1)

 

클라리넷 전주(prelude)에 이어서, 제10번째 마디(00:28)부터 대단히 풍성하고 따뜻한 남성들의 단성 목소리가 이어지고, 제26번째 마디(01:14)부터 4부 합창이 제41번째 마디(02:00)까지 계속된 후에, 첫 번째 클라리넷 간주(interlude)가 제58번째 마디(02:51)까지 있고, 그런 다음에 다시 4부 합창이 제89번째 마디(04:22)까지 이어지고, 계속하여 소프라노가 멜로디인 5부 합창이 제97번째 마디(04:44)까지 진행되며, 계속하여 테너가 멜로디인 4부 합창이 제106번째 마디(05:10)까지 계속됩니다. 그런 다음에 두 번째 클라리넷 간주(interlude)가 제122번째 마디(05:54)까지 있으며, 제138번째 마디(06:39)까지 4부 합창, 그 다음에 소프라노 데스칸트가 얹혀진 4부 합창이 제164번째 마디인 끝(08:05)까지 진행합니다.

 

현악기들의 반주와 호흡이 잘 맞은 클라리넷 전주 및 간주들도 훌륭하였고,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있게 정말로 잘 이끄는, 절대 음감뿐만이 아니라 뛰어난 박자 감각을 지닌, 지휘자의 감추어 두었던 역량이 우아하게 살짝 돋보이는, 탁월한 움직임의 전개였습니다.

 

그런데, "옥에 티"라고 할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제일 마지막 부분인데, 이 부분에서 실제적으로 소프라노 I 파드를 혼자서 맡은 소프라노 데스칸트의 음성이 다른 4성부의 상대적으로 커다란 소리에 파묻힌 점일 것입니다. 이번 연주회의 정점에 도달하여 다들 흥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겠지만, 이 부분에서는 소프라노 데스칸트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떼굴떼굴 굴러가는, 옥소리 음성이 마치 한 송이의 빨간 장미처럼 솟아오르는 것을 대단히 아쉽게도 양쪽 귀(ears)들로 볼(see)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족입니다만, 이 곡의 가사인 참 좋은 기도문을 마련해 주신 "거룩한 내맡김의 영성"을 전하는 이해욱 신부님과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인터넷 상의 만남은 2013년 1월 30일에 작성된 다음의 필자의 졸글[제목: 성스러운(sacred)거룩한(holy)의 차이점]의 댓글들에서 2013년 2월 7일에 처음 있었습니다.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위의 제목의 졸글을 이해욱 신부님께서 읽으신 후에 다른 까페로 퍼서 가져가겠다는 내용의 댓글들을 주셨던 것인데, 되도록 많은 분들께서도 이 졸글을 읽으실 것을 적극 권고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28.htm <----- 필독 권고 [링크 오류 바로 잡았음]

 

-----

(*1)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들을 꼭 읽도록 하라:

http://web.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441366&path=201302 [평화신문 2013.02.24일자 기사]

http://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262559 [가톨릭신문 2014.08.17일자 기사]

-----

 

2-8. Veni, Sancte Spiritus(오소서, 성령이시여) (Lux Aeterna 중에서) by Morten Lauridsen (1943 - )

연주 시간: 2:25.

 

주: 일부 스마트폰에서 바로 위의 오디오 덱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다음의 링크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링크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954/72/12_Veni_Sancte_Spiritus_M_Lauridsen.mp3

 

이 곡은, 지휘자이며 작곡가인 Morten Lauridsen (1943 - ) 교수에 의하여 1997년에 작곡된, 성가대와 실내 오케스트라단 혹은 오르간을 위한, 대단히 훌륭한 그리고 널리 알려진 Lux Aeterna(영원한 빛)(*1)라는 제목의 작품의 네 번째 장(part)인데, 따라서, 이 작품의 절정에 해당하는 성령강림(the coming of the Holy Spirit)을 간구하는 라틴어 기도문(*2)을 그 가사로 하는 곡인데, 연주회 당일 청중이 연주자들과 함께, 우리들 쪽으로, "거룩한 빛(Light)"으로서, 찾아 오시는, 그리하여 우리들을 한 방향 쪽으로 인도하시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다해 연중 제13주일 제2독서(갈라티아 5,1.13-18)에 포함되는, 갈라티아서 5,16.18 참조(*3)], 진리의 영이신 성령의 현존(presence)을 환희 안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오르간 현악기들의 반주와 함께 참 잘 연주하였다는 생각입니다.

 

이번 연주회 당일, 작곡가에 의하여 활력이 넘치게(exuberantly) 그리하여 상당히 빠른 템포(사분 음표 세 개 = 약56, 즉, 1초당 4분 음표 세 개의 빠르기)로 연주될 것이 요청되고 있는 이 곡을 들으면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생각에, 애초에 이번 연주회를 준비하면서 혹시라도 이 곡을 Cultain Call(앙콜) 곡으로 준비하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언뜻 하였습니다.^^

 

다음은,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구입 비용이 $7.95인, 합창단용 Lux Aeterna 악보 겉표지의 바로 뒤에 안내되어 있는 작곡가 Morten Lauridsen의 자신의 곡에 대한 입문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혹시라도 일부 독자들에게 참고가 될 수도 있겠다 싶어 또한 안내해 드립니다:

 

(발췌 시작)

[...] Each of the five connected movements in this choral cycle contains references to 'Light' assembled from various sacred Latin texts. I composed Lux Aeterna in response to my Mother's final illness and found great personal comfort and solace in setting to music these timeless and wondrous words about Light, a universal symbol of illumination at all levels - spiritual, artistic and intellectual.

 

[...] 바로 이 합창용, 동일한 주제를 취급하는 창조적 작품들의, 한 집단(cycle) 안에 있는 다섯 개의 연결된 움직임들은 다양한 성스러운(sacred) 라틴어 본문들로부터 모아진 '빛(Light)'에 대한 언급들을 포함합니다. 저는 Lux Aeterna(영원한 빛)를 저의 어머니의 최후의 노환에 응답하여 작곡하였으며 그리고, 영성적, 예술적 그리고 지성적 모든 수준들에서 조명/계몽(illumination)에 대한 한 개의 보편적 상징인, 빛(Light)에 관한 이들, 특정 시간에 제한 받지 않는 그리고 경이로운, 표현들에 곡을 붙이는 행위(setting to music)에서, 커다란 인격적 위로와 위안을 발견하였습니다.

 

[...] For the Lux Aeterna I chose as my point of departure the sacred music of the late Renaissance, especially that of Josquin des Prez, to create a quiet, direct and instospective meditation on Light, using primarily the consonant harmonies, intricate counterpoint, formal procedures and chant-like melodic lines of that era.

 

[...] Lux Aeterna(영원한 빛)의 경우에 저는, 저의 출발점으로서, 빛(Light)에 대한 한 개의 조용하고, 직접적이며 그리고 내관적인(introspective) 묵상(meditation)을 위하여, 후기 르네상스의 성음악을, 특히 Josquin des Prez의 성음악을, 선택하였으며, 그리하여 바로 그 시대의 협화음적 조화들, 뒤얽힌 대위 선율(counterpoint), 형식적 발전(formal procedures)들 그리고 [그레고리오] 성가(chant)같은 선율 윤곽들을 주되게 사용하였습니다.

 

The work opens and closes with the beginning and ending of the Requiem Mass, with the central three movements drawn respectively from the Te Deum, O Nata Lux and Veni, Sancte Spiritus. [...] O Nata Lux and Veni, Sancte Spiritus are paired songs, the former an a cappella motet at the center of the work and the latter a spirited, jubilant canticle. [...]

 

이 작품은, Te Deum, O Nata Lux 그리고 Veni, Sancte Spiritus.로부터 각각 끌어 낸(drawn) 중심적인 세 개의 움직임들을 가지는, 장례 미사의 시작 부분 및 끝 부분으로써 시작하고 그리고 끝맺습니다. [...] O Nata LuxVeni, Sancte Spiritus 는, 전자는 이 작품의 한가운데에 있는 한 편의 무반주(a cappella) 모테트(motet)이고 그리고 후자는 한 편의 기운찬, 활력이 넘치는 찬가(canticle)인, 한 쌍을 구성하는(paired) 노래들입니다. [...]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그리고 사족입니다만,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경우에 2014년 8월 - 12월 동안에, 이 Lux Aeterna(영원한 빛) 제목의 노래 전체를 각기 다른 장소에서 총 8번(유럽 지역에서 네 번(*4), 그리고 국내에서 네 번)의 연주회들에서 노래를 하였던 경험이 있기에, 이번 연주회에서 네 번째 장(part)인 Veni, Sancte Spiritus(오소서, 성령이시여)를 듣는 것은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

(*1) 게시자 주: 

(1) 이 작품의 작곡가 Morten Lauridsen (1943 - )에 대한 안내의 글은 다음에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Morten_Lauridsen

 

(2) 예를 들어, 장례 미사 전례문 중에 사용되는 바로 이 표현 Lux Aeterna(영원한 빛)의 출처는, 시편도 아니고, 심지어 더 나아가, 성경 본문의 어느 다른 부분도 아니고, 외경인 에스드라 4서 2,25이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에 있으니 여태까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계셨던 분들은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65.htm <----- 필독 권고

 

(*2) 게시자 주:

(1) "성령 송가"로 불리는 Veni, Sancte Spiritus(오소서, 성령이시여)로 시작하는 이 기도문은, 예를 들어, 전통적으로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성령강림 대축일 로마 미사 전례문에 있는 부속 기도문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Veni_Sancte_Spiritus

http://www.newadvent.org/cathen/15342a.htm

 

(2) 그리고, 기도 생활에 있어, "성령 송가" Veni, Sancte Spiritus(오소서, 성령이시여) 기도의 역할 및 중요성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670항-제2672항에 주어진 설명은 다음에 안내되어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c_ot_26_c2670.htm <----- 필독 권고

 

(*3) 게시자 주: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다해 연중 제13주일 제2독서(갈라티아 5,1.13-18)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대단히 훌륭한 해설(우리말 번역문 포함)은 다음에 있으니, 또한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c_ot_13.htm <----- 필독 권고 

 

(*4) 게시자 주: 유럽 순회 연주회 장소들에 대한 안내의 글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66.htm

------

 

3. Curtain Call(앙콜)

3-0. "주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가 이번 연주회의 주제라고 생각한다는 지휘자의 언급 및 감사(感謝)

 

3-1. Curtain Call (앙콜) 한 곡

Psaume 150 (시편 150) by Cesar Franck (1822-1890)

연주 시간: 약 5:08이고 그 이후 6:24까지는 청중의 박수 소리.

주: 일부 스마트폰에서 바로 위의 오디오 덱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다음의 링크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링크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954/73/13_Curtain_Call_Psaume_150_C_Franck.mp3

 

이번 연주회에서 앙콜 곡으로 연주된 곡은, 가톨릭 성가집 제503번 곡인 "생명의 양식(Panis Angelicus)" 의 작곡가이기도 한, 벨기에 태생의 그러나 이후에 프랑스 국적을 획득한 Cesar Franck (1822-1890년) 교수가 1883년에 작곡한 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1)

 

참으로 정말 낭만적이라 아니 할 수 없는 좋은 곡을, 관람하고자 모처럼 오시어 자리를 다 채움으로써 이번 연주회를 빛내주신 청중을 위하여, 한껏 잘 연주해 주셨다는 생각입니다. 이제 더 불러야 하는 곡도 없으니, 시쳇말로, 힘껏 부르게 되는 것이 앙콜 곡인데, 과연 청춘의 역동(力動)/힘을 잘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매달 두 번째 와 네 번째 주일 성무일도(시간경)(*2) 아침기도에서 봉독되는, 시편집의 제일 마지막 시편/성시(聖詩)인 시편 150에 대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대단히 좋은 주석/해설들(필독 권고)과 작곡가 Cesar Franck (1822-1890년)에 대한 추가 안내 등은,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60_Psalm_150_by_C_Franck.htm [스마트폰 사용자들의 경우에는 클릭한 후에 제5항부터 읽도록 하십시오]

 

-----

(*1)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있는 정보를 참고하라:
http://imslp.org/wiki/Psaume_150_(Franck,_C%C3%A9sar)

 

(*2) 게시자 주:

(1) 시간경(성무일도) 중에서 아침기도와 저녁기도의 시편들 및 찬가들에 대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교회에 대한 마지막 봉사로서 시작하셨고, 그리고 선종 후에, 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마무리하신, 주석/해설들은 다음에 있으니, 특히 성직자들과 수도자들께서는 필히 클릭하여 들여다 보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psalter/jp2_b16_commentaries.htm <----- 필독 권고 

 

(2) 그리고 바로 위의 접속 주소는 다음에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하여, 제공되고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 용] <--- 접속후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 용] <--- 점속후 "북마크(별표)"에 추가하십시오

----- 

 

====================

 

<< 부 록 >>

 

최근에 들어와, 청춘 작곡가 Ola Gjeilo(1978 - )"일출 미사곡(Sunrise Mass)"이 국내에서 연주되고 있다고 하는데, 혹시 약간 도움이 될까 싶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한 이 곡에 대한 전반적인 안내를 이 글의 부록으로서 붙여보았습니다.

 

(1) 다음은, 구입 가격이 $9.95인 합창단용 악보의 겉표지 뒷면에 있는, "일출 미사곡(Sunrise Mass)"의 작곡가 Ola Gjeilo(1978 - )에 의한 자신의 곡에 대한 입문 전문입니다. 이 곡이 연주되는 연주회에 참석하는 청중들을 포함하여, 이 곡을 쉽게 이해하는 데에 필수적이라 생각되어, 전달해 드립니다.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생각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일찌기 그리스도교 예술가들에게 요청하셨던, 예술적 감각의 그리스도교 신앙적 탁월한 구체화 능력을 이 청춘 작곡가가 지니고 있음을 또한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입문이라는 생각입니다:

 

(발췌 시작)
SUNRISE MASS

일출 미사곡

 

Symphonic Mass for SSAATTBB Chorus and String Orchestra

SSAATTBB Chorus(두 개의 4부 합창단들)과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악 미사곡

 

The reason I used English titles, seemingly unrelated to the (mostly) Latin texts, for the movements in this setting of the Mass, has mainly to do with the initial idea behind Sunrise. I wanted the musical development of the Mass to go from the most transparent and spacey, to something completely earthly and grounded; from nebulus and pristine to more emotional and dramatic, and eventually warm and solid, as a metaphor for human development from child to adult, or as a spiritual journey. I always want there to be a positive evolutionn in artistic expressions; to move everything forward, to transcend conflict and dissonance, by going through it, not avoiding it. Ideally, it has the capacity to help bring us deeper into ourselves rather than the other way. I really do thingk that's the main point of art, and I hope with all my heart a silver of that sentiment comes out in this piece, somehow.

 

제가, (대부분은) 라틴어 본문들 쪽으로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영어 제목들을 사용하였던 이유는, 이 미사곡의 바로 그 설정에 있어, 움직임(movements)들이 주로 일출(Sunrise) 배후/이면에 있는 초기 관념(idea)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미사곡의 음악적 전개가, 아이로부터 성인 쪽으로 인간 발전을 위한 한 은유(a metaphore, 隱喩)로서, 혹은 한 영성적 여행으로서, 가장 초월적이고 그리고 기묘한(spacey) 그 무엇으로부터, 전적으로 지상에 있는(earthly) 그리고 땅 위에 기초를 둔(grounded) 그 무엇 쪽으로, 그리고 성운 모양의(nebulous) 그리고 원래의(pristine)의 그 무엇으로부터 더 감동적이고 그리고 극적인(dramatic),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따뜻하고 그리고 견고한 그 무엇 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원하였습니다. 저는 예술적 표현들 바로 거기에, 모든 것을 앞쪽을 향하여 움직이는, 갈등과 불화를 초월하는, 한 긍정적인 점진적 전개(a positive evolution)가, 그것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관통함으로써, 있기를 항상 원합니다. 관념적으로, 이 전개는 우리를 다른 길보다 오히려 우리 자신들 안쪽으로 더 깊게 데려가는 것을 도우는 능력(capacity)을 가졌습니다. 저는 바로 이것이 예술의 주된 요지라고 실제로 생각하며, 그리고 바로 이 정서(sentiment)로 구성된 한 가닥의 은빛(a silver)이,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바로 이 악보에서 드러나는 것을, 저의 심장 모두와 함께(즉,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 미사 중의 전례 용도로 작곡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이 곡은, 기본적으로, polyphony(다성 음악)가 아니고, homophony(단성 음악)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i) 제1악장과 제4악장의 경우에 두 개의 합창단들이, 

(ii) 제2악장과 제3악장의 경우에 소프라노와 테너가 한 조, 알토와 베이스가 한 조를 구성하여 이들이, 

대체적으로 각각 동일한 선율을 유지하면서도, 때로는 약간의 변화들을 제시하는, 두 개의 동적 선율 흐름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여림, 셈, 여림 등의 phrasings들을, 전건적 및 후건적 적절한 박자 변화들과 함께, 대단히 효과적으로 구사함으로써, 청중들에게 전달되는 시각과 청각을 통한 정변(change of passions)의 원만함과 무난함도 잘 조절되고 있어, 그리하여 그 결과, 연주자 집단과 청중이 하나로 합쳐 (즉, 통공/하나 됨을 이루어) 한 방향 쪽으로, 즉, 하느님 쪽으로, 기도하면서 나아가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천주를 향한 의식의 흐름에 있어, 수용(受容)된 올바름(rectitude)으로서 요구되는, 우수한 영성적 한 지향성 및 수렴에 있어서의 한 적합성을 이 곡이 가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3) 그리고 이 곡의 악장(parts)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The Spheres (하늘들의 외견의 표면들, 예를 들어, 대기권의 여러 층들) [가사: Kyrie]

2. Sunrise (일출) [가사: Gloria]

3. The City (도성) [가사: Credo]

4. Identity & the Ground (정체성 및 대지)  [가사: Sanctus & Benedictus, Agus Dei]

 

그리고 이 청춘 작곡가의 Sunrise Mass 곡에 대한 Kira Zeeman Rugen의 안내와 예술적 주제 분석의 글 전문은 다음에 있습니다. 교회 음악 전공자들(여기에는, 합창 지휘자들, 작곡가들이 포함됨)의 필독을 권고드립니다:

http://olagjeilo.com/admin/wp-content/uploads/SUNRISE-MASS-Kira-Rugen-paper.pdf

 

(4) 이들 각 악장(part)에 대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본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1. The Spheres (하늘들의 외견의 표면들, 예를 들어, 대기권의 여러 층들) [가사: Kyrie]

우선적으로, 다음의 제1악장 연주 음악 mp3 듣기는 작곡자의 홈페이지로부터인데, The Spheres (하늘들의 외견의 표면들, 예를 들어, 대기권의 여러 층들) [가사: Kyrie] 전부를 들을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음악 선교/전교(mission)/복음화(evangelization)를 위한 이 청춘 작곡가의 관대하고 또한 사려깊은 형제애적 배려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며, 따라서 깊이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바로 아래에 있는 오디오 덱의 시작 단추를 클릭하십시오:

 

출처: http://olagjeilo.com/sheet-music/choral-satb-strings/sunrise-mass-satb/

연주 시간은 약 5:30입니다:

 

주: 일부 스마트폰에서 바로 위의 오디오 덱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다음의 링크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링크 주소: http://olagjeilo.com/admin/wp-content/uploads/The-Spheres.mp3

 

하나의 무대 위에서 연주 중인 두 개의 합창단들이, 예를 들어, Kyrie를 한 음절씩, 두 마디들을 단위로 하여, 서로 반복 혹은 나누어 부름으로써, 주고 받는, 그리하여 청중에게 가사가 분명하게 전달되도록 또한 배려된, 독특한 교창 형식인데, 그러나 그 효과는 마치 북극 지역의 긴 겨울 밤에 소리없이 펼쳐져 쏳아지는 오로라(aurora)의 파노라마 은빛 춤이 내뿜는 듯한 "정중동(靜中動)"이 청중에게 경외심(敬畏心, awe)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첫 시작 부분부터,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3:38 쯤에, 즉, 악보의 제69번째 마디, 즉, [C]에서, 현악기들에 의하여 진행하는 mood의 변화를 악보의 제81번째 마디, 즉, [E]에서, 합창단 I(Chorus I)이 동적으로 넘겨받아서 들어올림으로써, 마치 한 명의 거인이 저 멀리서부터 성큼 성큼 걸어서 청중 쪽으로 점진적으로 다가오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ff로 장중하게 펼쳐내는, homophony로써 대단히 사실(寫實)적으로, 제1악장을 제102번째 마디에서 끝내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듣고 계신 음악의 wave 물결은 다음과 같습니다:

 

파형 1-A:

 

그런데, 소위 말하는 white noise가 별로 귀에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스튜디오 녹음인 것으로 생각되는 바로 위의 파형 1-A와 바로 아래의 파형 1-B 사이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정밀하게 비교/검토해 보십시오:

 

파형 1-B:

 

이들 정밀한 비교/검토로부터 우리는, 파형 1-B의 연주 시간이, 작곡가의 의향이 담긴 것으로 생각되는, 파형 1-A의 연주 시간과 거의 동일한 것을 쉽게 알 수 있고, 또한 phrasing도 거의 동일하나, 그러나 3:30  이전까지에서는 artistic expression에 있어 차이가 좀 있으며, 그리고 그 이후부터 끝까지에는 artistic expression 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Sunrise (일출) [가사: Gloria]

다음의 제2악장 연주 음악 mp3 듣기는 작곡자의 홈페이지로부터인데, Sunrise (일출) [가사: Gloria]에서 발췌된 일부를 들을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래에 있는 오디오 덱의 시작 단추를 클릭하십시오:

 

출처: http://olagjeilo.com/sheet-music/choral-satb-strings/sunrise-mass-satb/

발췌된 음악의 연주 시간은, 예상되는 전체 연주 시간의 2/3 정도인, 약 6:56입니다:

주: 일부 스마트폰에서 바로 위의 오디오 덱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다음의 링크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링크 주소: http://olagjeilo.com/admin/wp-content/uploads/Sunrise-(excerpt).mp3

 

3. The City (도성) [가사: Credo]

다음의 제3악장 연주 음악 mp3 듣기는 작곡자의 홈페이지로부터인데,The City (도성) [가사: Credo] 전부를 들을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음악 선교/전교(mission)/복음화(evangelization)를 위한 이 청춘 작곡가의 관대하고 또한 사려깊은 형제애적 배려임이 분명하다는 생각이며, 따라서 깊이 감사드려야 할 것입니다. 바로 아래에 있는 오디오 덱의 시작 단추를 클릭하십시오:

 

출처: http://olagjeilo.com/sheet-music/choral-satb-strings/sunrise-mass-satb/

연주 시간은 약 10:40입니다:

 

주: 일부 스마트폰에서 바로 위의 오디오 덱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다음의 링크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링크 주소: http://olagjeilo.com/admin/wp-content/uploads/The-City.mp3

 

두 마디의 짧은 전주에 이어, 곧바로 전통적인 Credo 고유의 풍부하고도 폭 넓은 예술적 기량을 가사의 내용에 따라 잘 전개하고 있는 그리하여 청중의 심장들의 박동 또한 동기가 되어 빨라지게 만드는 흡입력을 가진 웅대한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듣고 계신 음악의 wave 물결은 다음과 같습니다:

 

파형 3-A:

 

그런데, 소위 말하는 white noise가 귀에 별로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스튜디오 녹음인 것으로 생각되는 바로 위의 파형 3-A와 바로 아래의 파형 3-B 사이에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정밀하게 비교/검토해 보십시오:

 

파형 3-B:

 

이들 정밀한 비교/검토로부터 우리는, 파형 3-B의 연주 시간이, 작곡가의 의향이 담긴 것으로 생각되는, 파형 3-A의 연주 시간보다 약 1분 정도 짧아졌음을 쉽게 알 수 있고, 그리고 특히 phrasing 및 artistic expession 둘 다에 있어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 Identity & the Ground (정체성 및 대지)  [가사: Sanctus & Benedictus, Agus Dei]

다음의 제4악장 연주 음악 mp3 듣기는 작곡자의 홈페이지로부터인데, Identity & the Ground (정체성 및 대지)  [가사: Sanctus & Benedictus, Agus Dei] 에서 발췌된 일부를 들을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습니다. 바로 아래에 있는 오디오 덱의 시작 단추를 클릭하십시오:

 

출처: http://olagjeilo.com/sheet-music/choral-satb-strings/sunrise-mass-satb/

발췌된 음악의 연주 시간은, 예상되는 전체 연주 시간의 2/3 정도인, 약 4:10입니다:

주: 일부 스마트폰에서 바로 위의 오디오 덱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다음의 링크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링크 주소: http://olagjeilo.com/admin/wp-content/uploads/Identity-the-Ground-(excerpt).mp3

(이상, 부록 끝)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 40시간 (연주회 실황 녹음 및 편집 등의 시간은 제외) 

 



1,645 1

추천

Sun_T_SOH,신성적_사랑(divine_love)의_세_종류들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