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아론입니다!(성극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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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철 [u2csun] 쪽지 캡슐

1999-09-22 ㅣ No.632

찬미예수!

저...... 저는 아론이 아니라 클레멘스입니다.

 

오늘 저도 굿뉴스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축하해 주세요.

이렇게 많은 본당소식을 접할 수 있다니 너무 좋네요. 앞으로 자주 찾겠습니다.

 

어제 제가 속한 10단지의 형제모임이 있었지요. 정기적인 모임이기도 했지만 성극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고 난 직후라 더욱 기분좋은 모임이었지요. 형제 자매님들의 참석도 성황을 이루었구요. 처음 참석하신 형제님들도 몇 분 계셨는데 모임후 노래도 부르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답니다. 10단지 소속이신(?) 큰 수녀님께서도 방문하셔서 축하와 좋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주임신부님께서 성서백주간과 성극경연대회를 통해 노린(?) 것이 바로 이런 서로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었겠지요? 지난 해 성탄 성가경연대회를 마친 후 형제모임이 활성화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고 봅니다. 이것은 결코 우리 10단지가 1등을 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답니다. 아뭏든 지난 해 2등, 올해 1등, 다음엔 어떻게 될까요? 너무 잘하니 특별팀으로 초청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번 성극경연대회를 준비하고 발표하면서 느낀 많은 점들을 - 잔잔한 그러나 억누를 수 없는 가벼운 흥분을 - 글로 옮겨보고자 합니다.

 

성극경연대회 후기라고나 할까요? 다음에 본당에 어떤 행사가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 지 도움이 되실 수도 있겠지요.

 

"아론! 자네에게 여기를 맡기네.  ...... 성서백주간도 열심히 시키고......

 우리에게 일자리를 달라! 우리에겐 우리에게 맞는 신이 필요해!

 맞아! 맞아! 우리 신나게 놀아 봅시다.

 믿음이 약한 자들이여! 어찌 그리도 참을성이 없는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지금도 대사들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이제 제 생활과 잘 접목시키는 일이 남았겠지요?

우리가 일상생활 가운데 알게 모르게 섬기고 있는 우상의 요소들을 잘 골라내는 일들 말입니다.

편리함, 젊음, 지배, 건강, 미모, 명예, 돈 등. 그러고 보니 모두 우리의 육체와 관련된 요소이군요.

 

지난  8월말 아내가 성당을 다녀오더니 느닷없이 저더러 성극경연대회에서 아론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10월초에 있을 중요한  교육 준비에 여념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입니다. 늘 하느님의 일보다 제 개인의 일을 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는 죄책감을 교묘히 이용(?)했기에 거절할 수가 없었지요. 잠시 고민은 되었지만 지난 겨울 성탄 성가경연대회가 생각나더군요. 형제 자매들과 함께 했던 그 순간들이 얼마나 좋았든지, 그리고 아이들도 한참 후에까지 그때 불렀던 성가를 흥얼거리고는 했던 기억도 났습니다.

 

더군다나 모세오경까지 마친 성서백주간과 관련해서 우리 자신들의 신앙을 표현해 본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성서백주간을 하면서 비록 최선을 다하진 못했지만 그 가운데서도 나의 노력에 비해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것을 제게 주셨는지 생각했습니다. 저는 늘 방황하고 정체해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그 자리에 변함없이 계신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세 번의 교리공부 끝에 세례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깨달음이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기왕 하기로 결정한 바에야 최선을 다해보고자 맘먹었습니다. 성극을 통해, 아니 준비과정을 통해 제 신앙이 주님께로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기를 바라면서......

 

저희 팀은 "금송아지"란 제목으로 모세가 시나이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 있는 동안 참을성이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과 모세를 원망하면서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장면과 모세가 진노해 백성들의 잘못을 꾸짖고 다시 하느님께 용서를 빌러 올라가는 장면을 연출했답니다.

 

현재의 우리들에게 우상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들로 볼 수 있는 편리함, 권력, 지배, 개발, 젊음, 미모, 돈 등에 대해 경고하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하느님을 따르며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지요.

 

50명이 넘는 형제 자매님들 그야말로 대부대가 참가해 단합된 모습을 보여 주었고, 구약의 메시지를 현재와 잘 접목시킨 것이 대상을 받게된 이유중의 하나였다고 생각됩니다.

극본의 구성도 훌륭했고, 연기도 좋았지요. 의상, 분장 및 소품도 노력한 결과가 보였구요.

 

모두들 각자의 역할을 너무나 충실히 해냈답니다. 이점이 절 기분 좋게 만들었지요. 이것이 바로 공동체의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답니다. 10단지의 다른 형제 자매님들도 저와 똑같은 생각을 했을 거라고 봅니다.

 

극본을 쓰시고 목이 쉬어가며 연출을 담당하신 전 카타리나 자매님(다시한번 감사드려요), 대사가 많아 외우시느라 고생하신 모세역의 안젤라 자매님, 후르역의 10구역 남성구역장님, 대사는 없었지만 무대 만드시느라  뚱땅뚱땅 수고하신 여호수아역의 다두 형제님, 그리고 수많은 군중들.

 

사실, 군중들의 단합된 연기가 일품이었지요?! 처음엔 모두 어색해 하다가 나중엔 제법(?) 표정까지 만들어가며 일취월장해 갔지요. 라스포사가 아닌 라스파사 자매님, 제게 삿대질(?) 까지 해대며 따져드는 군중 역할의 자매님들. 우상에게 넙죽넙죽 절해대는 군중들. 술까지 마셔가며 난장판을 만든 형제님들의 공도 대단했지요. 진짜 막걸리였답니다. 10월 중순 부산으로 이사가신다는 자매님은 집착 춤의 솜씨를 마음껏 발휘하려 했는데 발표 당일 테이프가 도망가버려 아쉬움을 남겼지만, 사실 심사위원들이나 관객들은 눈치채지 못했겠지요? 그냥 신나게 놀았으니까요. 그것도 중요한 연기의 일부분이었답니다.

 

우상의 형상을 어떻게 만드나 고민하면서 안되면 어느 형제님의 아이디어(?)대로 소머리국밥집의 간판을 떼와야 하나 하고 고민도 했지만 어느 자매님께서 멋지게 만들어오셨고, 소품에 사용할 지팡이는 산에 잘 다니신다는 펠릭스 형제님이 해결하셨고, 무대배경은 모래까지 뿌려가며 파비올라 자매님이 만들어 주셨지요. 바오로 형제님과 아녜스 자매님은 무대의상을 준비하시느라 천 값이 수억원(?) 들어갔는데도 공짜로 지원해주시고 손수 재봉질까지 해주셨답니다. 우상을 움직일  수레와 모세가 기도할 산을 만들어주신 20구역장님과 풍악을 울려주신 자매님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처음에는 어수선하기 짝이 없든 사랑스런 우리의 아이들도 숫자판을 들고 왔다 갔다 걸음거리 연습에다, "엄마! 배고파 밥줘!" 라는 짧은 대사의 연기를 위해서도 많은 연습을 했답니다. 신나게 놀고 싶은데도 연기가 뭔지 뒤로 붙잡혀 나가 놀지도 못하고......

 

마지막 연습날, 연출자이신 카타리나 자매님이 없는 가운데도 밤늦게까지 열심히 해주신 형제 자매님들. 연출자이신 카타리나 자매님은 걱정이 되어 계속 전화를 주시고, 그날 저녁 밤늦게까지 구역장님들과 몇 분이 모여 대책회의를 하는데 12시가 다되어서도 바로 집으로 가시지 않으시고 걱정되어 형제님과 함께 마들치킨 앞으로 나오시는 성의를 보여주시기도 했지요.

 

무대에서 실제 리허설을 해보니 아무래도 인원이 너무 많아 몇 사람을 빼는 것이 좋겠는데 말은 못하고, 결국에는 만만한 게 누구라고 발표직전 결국 빠지게 만든 데레사, 헬레나, 빈첸시아(실은 제 아내와 아이들이랍니다. 제가 빼버렸지요). 이 자리를 빌어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네요. 그래도 본인의 역할은 기도였다고 말해 주니 제가 고마웠지요. 조금은 섭섭했겠지만...... 아이들에게는 아이스크림 사준다하고 구슬렀지요.

 

발표 직전까지 소품으로 사용할 현수막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며칠 전 수녀님의 강의 중에 시나이산은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땅이었다는 말씀을 듣고는 다 만들어 놓은 배경그림의 산을 갈색으로 바꾼다고 발표직전에 다들 모인 방에서 냄새나는 락카를 뿌려대고......

 

정말 모든 사람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했답니다. 그것이 결과로 나타났다고 생각됩니다. 연습중에는 그렇게 실수도 많이 하던 사람들이 실전에서는 너무 잘하는 바람에 연출자가 무지 화(?)가 났었지요. 음향담당 그리고 보조를 맡으신 두 자매님은 집착춤곡이 안나와 울먹이시다가 대상이 확정되자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셨답니다.  

 

전 노원본당의 새내기(1년)인데도 아론이라는 비중있는 역할을 맡겨주시고, 많은 형제 자매님들과 그리고 저보고 아론 아저씨라고 부르는 아이들까지 많은 사람들을 알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9월 19일! 마침내 운명(?)의 날은 다가왔고 8팀이 참가해 경연을 벌인 결과 제가 소속된 10단지 팀이 대~~상을 받았답니다. (와! 박수...............!)

 

대상을 탄 것이 기쁘기도 하지만 연습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도우며 이 모든 것이 결국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제게 참으로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했던 본당의 활동에 열심히 참가하고, 성서백주간을 통한 성서공부도 더욱 충실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는 일종의 신앙에 대한 게으름이며 핑계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루하셨지요?

우리 본당 모든 가정에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곧 추석이네요. 즐거운 명절되시길 바라면서 고향에 다녀온 후 또 뵙겠습니다.

평화를 빕니다................!

 

노원천주교회 김선철 클레멘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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