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을 앞두고

인쇄

서기원 [pious] 쪽지 캡슐

1999-11-16 ㅣ No.825

내일이 수학능력시험입니다. 수많은 수험생들이 바로 이날을 향해 1년간 아니 수년간 달려왔습니다. 그래서 날씨가 추워지듯 수험생들의 마음도 얼어붙어서 초조하고 불안한 속에 요즘을 지내온 것 같습니다. 힘들어 하는 수험생들에게 저는 별로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겨우 하는 소리가 마무리 잘해라. 시험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이건 과정이지 목표가 되서는 안되는 거다. 등등 별로 씨알이 안먹히는 소리를 해댔습니다. 진지하게 들어준 수험생들에게는 그저 미안할 따름이었지요. 저의 옛모습을 생각해보았습니다. 대담한 척, 별거아닌척하긴 했지만 시험을 보러가는 버스안에서 저는 떨고 있었습니다. 지하철에서 만난 성당친구는 볼펜과 도시락말고는 연습장 한장 안 가져온 제게 지구과학을 요약한 어느 학원에서 나온 한 페이지짜리 문제집을 주었습니다. 속으로는 필요없다고 하면서 친구가 안볼때 흘끔흘끔 요약내용을 훔쳐보며 머리속을 정리하던 초조했던 내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제가 요즘 수험생친구들에게 했던 말들이 과연 맞는 말인가 생각합니다. 원론적으로는 맞습니다. 시험은 인생의 전부도 아니고 목표가 되서도 안되고 그저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요?

어떤 대학에 들어가는가가 벌써 인생의 상당부분을 결정짓는 일이 되어버리는 이 시대의 분위기, 좋은 대학을 들어가지 못했기에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서도 제대로 취직못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이 사회가 정말 내가 원칙을 말해도 되는 사회인지 의심스럽게 합니다. 그리고 약간의 무력감을 느낍니다. 긴장하고 있는 수험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녁때 수험생들을 위한 미사가 있습니다. 저는 이런 미사가 솔직히 별로 탐탁스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열심히 공부한 사람들이 더 좋은 성적 얻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뭐 요란스럽게 이렇게 판을 벌려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제 생각은 아무래도 약한 인간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짧은 인생살이가 드러나는 좁은 마음인것 같습니다.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느끼게 도와주는 것이고, 정말 열심히 노력한 것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격려하게 하는 것이고, 시험의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겠지요.

저는 간절히 바랍니다. 시험이니 대학이니 하는 것들과는 상관없이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가 이루어지기를 말입니다.



93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