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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주일 복음 말씀에서, 개켜져 있었다??? - 요한 20,7 [성경번역오류_개켜져있었다] #<부활주일복음> #<12월27일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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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3 ㅣ No.1042

 
+ 찬미 예수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일치 정신에 따라 1969년에 개정된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요한 복음서 20,1-9는 매년 부활절 주일의 복음 말씀이고, 그리고 요한 복음서 20,1ㄱ.2-8은 매년 12월 27일 복음 말씀입니다.
 
비록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는 순간을 직접 목격한 자는 없었으나,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음을 "보고 믿었다"는 더 이상 구체적일 수 없는 수준의 "목격 증언"이 바로 빈 무덤 안을 살펴본 후에 있었음을 이 복음 말씀은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글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도대체, 무엇을, 어떠한 상황을 보았기에, "보고 믿었는지"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쁘신 분들을 위하여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부분을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글의 요약)
 
이 구절들과 관련된 자료들을 비교/검토하여 살펴본 바에 의하면, 당시의 예수님의 제자들의 입장으로 되돌아가 자세히 살펴 보았을 때에, "새 번역 성경"에 있어 우리말 번역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은 다음의 두 곳입니다:
 
(*) 베드로와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다고 알려진 그리하여 감수성이 가장 예민하였을 사도 요한이 빈 무덤에 들어가, 현재의 "새 번역 성경"에 있어서의 우리말 표현대로, 단순히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믿었던 것이 아니라, "아마포가 납작하게 가라앉아 있었음(the linen cloths lying)"을 직접 목격하였으며 사도 요한은 이것을 "보고 믿었습니다."
 
(**) 베드로와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다고 알려진 그리하여 감수성이 가장 예민하였을 사도 요한이 빈 무덤에 들어가, 현재의 "새 번역 성경"에 있어서의 우리말 표현대로, "개켜져 있는" 예수님의 머리를 쌓던 수건을 보고 믿었던 것이 아니라, "둥글게 말아져 있는(rolled up) 예수님의 머리를 둘러 감쌌던 수건"을 직접 목격하였으며 사도 요한은 이것을 "보고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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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표준 국어사전에 주어진, "개키다""개다" 단어들의 설명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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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키다
 
「동사」
【…을】
=개다03「1」.
¶ 이불을 개켜 얹다/그는 옷을 개켜서 옷장 안에 넣었다./금향은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 자리를 개키며 귀를 기울였다.≪이기영, 신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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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다03
 
「동사」
【…을】
「1」옷이나 이부자리 따위를 겹치거나 접어서 단정하게 포개다. ≒개키다.
¶ 이부자리를 개고 방을 청소하다/옷가지들을 개어 서랍 속에 정리했다.「2」손이나 발 따위를 접어 겹치게 하다.
¶ 꾸어 준 돈은 받아 낼 길이 없고, 그렇다고 그냥 발을 개고 물러앉아 버릴 수도 없어 하루는 그냥 분풀이 삼아서 작자의 집을 쳐들어갔다는 것이었다.≪이청준, 불을 머금은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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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11년 4월 25일]
 
1-2. 그리고
 
 
다음과 같이, "둘둘 말다" "roll up"으로 번역하고 있는 네이버 제공의 영어사전 설명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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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둘 말다
 
1. roll up
2. coil
 
숙어(2건)

종이를 둘둘 말다
roll up a piece of paper

신문지를 둘둘 말다
roll up a newspaper

예문(3건)

[일반]She's rolling up the rug outside. (출처:YBM) 현대 미국 초급 이동 
그녀는 밖에서 카펫을 둘둘 말고 있다.
 
[일반]The man is rolling up the hose. (출처:YBM) 현대 미국 중급 이동 
남자가 호스를 둘둘 말고 있다.
 
[일반]She is rolling up the rug outside. (출처:YBM) 현대 해당없음 중급 이동 
그녀는 밖에서 카펫을 둘둘 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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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다음과 같이, Merriam-Webster's Learner's Dictionary에 주어진 "roll up" 에 대한 설명과 예제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4 [+ obj] a : to form (something) into the shape of a ball or tube ? She rolled the dough into a ball. ? He rolled up the newspaper and swatted the fly. b : to put (something) inside a tube ? He rolled the coins. c : to wrap up (something or someone) in a way that forms the shape of a tube ? He rolls his own cigarettes.often + up ? She rolled up the meat in a tortilla. ? He lay there snugly rolled up in blankets.
 
 
(졸번역) 투브의 형상을 이루도록 (어떤 물건 혹은 어떤 사람을) 둘둘 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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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다음과 같이, Merriam-Webster's Learner's Dictionary에 주어진 "wrap up" 에 대한 설명과 예제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1 [+ obj] a : to cover (something) by winding or folding a piece of material around it ? They were busy wrapping presents late on Christmas Eve. often + up, in, or with ? Could you wrap this box up for me? = Could you wrap up this box for me? ? The nurse wrapped the baby in a blanket. ? She wrapped her hair in a towel. ? magazines wrapped in plastic ? The handle of the bat was wrapped with tape.
 
(졸번역) 그 둘레에 옷감의 한 조각을 감거나 둘러쌈으로써 (어떤 물건을) 싸다.
 
... - 자주 + up, in 혹은 with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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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음은 "공동번역 성서", "새 번역 성경" 그리고 "NAB(New American Bible)의 요한 복음서 20,6-7 전문입니다.
 
특히 "새 번역 성경"의 요한 복음서 20,6-7 전문과 비교/검토해 보시면, 성경의 우리말 번역에 있어 지난 30여년이라는 상당히 짧은 시기가 경과함에 따라, 어떠한 차이가 있었는지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공동번역 성서, 요한 복음서 20,6-7)
6  곧 뒤따라온 시몬 베드로가 무덤 안에 들어가 그도 역시 수의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7  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수의와 함께 흩어져 있지 않고 따로 한 곳에 잘 개켜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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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번역 성서, 요한 복음서 20,6-7)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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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SV 요한 복음서 20,6-7)
[6] Then Simon Peter came, following him, and went into the tomb; he saw the linen cloths lying

[7] and the napkin, which had been on his head, not lying with the linen cloths but rolled up in a place by it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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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B 요한 복음서 20,6-7)
6 When Simon Peter arrived after him, he went into the tomb and saw the burial cloths there, 
 
7 and the cloth that had covered his head, not with the burial cloths but rolled up in a separate place.
 
참고: 이유는 모르지만, NAB 요한 복음서 20,6 및 20,7에는 "lying" 이라는 표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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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음은 라틴어 불가타 성경, 여러 개의 영어본 성경들(개신교측 영어 성경들 포함) 및 프랑스어 공동번역 성경인 TOB, 그리고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중국어 성경의 요한 복음서 20,6 및 20,7입니다:
 
John 20:6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라틴어 성경, 가톨릭) 
Venit ergo et Simon Petrus sequens eum et introivit in monumentum; et videt linteamina posita

(DRB, 가톨릭) 
Then cometh Simon Peter, following him, and went into the sepulchre: and saw the linen cloths lying,
 
(교황정 홈페이지 제공의 중국어 성경)
20:6 隨著他的西滿伯多祿也來到了,進了墳墓,看見了放著的殮布,
 
참고: 放著(방착)은 "놓아 두다"를 뜻할 것입니다.  
 
(KJV-1611, 개신교) 
Then commeth Simon Peter following him, and went into the Sepulchre, and seeth the linnen clothes lie,
 
(KJV, 개신교) 
Then cometh Simon Peter following him, and went into the sepulchre, and seeth the linen clothes lie,
 
(GNB, 개신교) 
Behind him came Simon Peter, and he went straight into the tomb. He saw the linen cloths lying there
 
(ASV, 개신교) 
Simon Peter therefore also cometh, following him, and entered into the tomb; and he beholdeth the linen cloths lying,
 
(CEV, 개신교) 
When Simon Peter got there, he went into the tomb and saw the strips of cloth.
 
(ESV, 개신교) 
Then Simon Peter came, following him, and went into the tomb. He saw the linen cloths lying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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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공공번역 성경인 TOB)
Arrive, à son tour, Simon-Pierre qui le suivait; il entre dans le tombeau et considère les bandelettes posées
 
(TOB의 영문 졸번역)
In his turn, Simon-Pierre arrives, following him; he entered into the tomb and saw the bandages lying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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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그리스어 현재 분사)
κειμενα  verb - present middle or passive deponent participle - accusative plural neuter
keimai  ki'-mahee:  to lie outstretched -- be (appointed, laid up, made, set), lay, 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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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20:7
 
(라틴어, 가톨릭) 
et sudarium, quod fuerat super caput eius, non cum linteaminibus positum, sed separatim involutum in unum locum.
  
참고: 여기를 클릭하면, involutum 단어의 원형 동사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DRB, 가톨릭)  
And the napkin that had been about his head, not lying with the linen cloths, but apart, wrapped up into one place.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중국어 성경, 가톨릭)
20:7 也看見耶?頭上的那塊汗巾,不同殮布放在一起,而?在一處捲著
 
참고: 捲著(권착)"둘둘 감아 말다"를 뜻할 것입니다.
 
(KJV-1611, 개신교) 
And the napkin that was about his head, not lying with the linnen clothes, but wrapped together in a place by it selfe.
 
(KJV, 개신교) 
And the napkin, that was about his head, not lying with the linen clothes, but wrapped together in a place by itself.
 
(GNB, 개신교) 
and the cloth which had been around Jesus' head. It was not lying with the linen cloths but was rolled up by itself.
 
(ASV, 개신교) 
and the napkin, that was upon his head, not lying with the linen cloths, but rolled up in a place by itself.
 
(CEV, 개신교) 
He also saw the piece of cloth that had been used to cover Jesus' face. It was rolled up and in a place by itself.
 
(ESV, 개신교) 
and the face cloth, which had been on Jesus' head, not lying with the linen cloths but folded up in a place by it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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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공동번역 성경인 TOB)
et le linge qui avait recouvert la tête; celui-ci n'avait pas été déposé avec les bandelettes, mais il était roulé à part, dans un autre endroit.
 
(TOB의 영문 졸번역)
and the linen that had covered the head; this one has not been deposited with the bandages, but it was rolled up apart, in another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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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그리스어 과거 분사)
εντετυλιγμενον  verb - perfect passive participle - accusative singular neuter
entulisso  en-too-lis'-so:  to entwine, i.e. wind up in -- wrap in (together).
 
 
그리고 다음의 출처 2를 클릭하면 요한 복음서 20,7에 대한 여러 그리스어 사본들의 본문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동일한 과거 분사를 모두들 사용 중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참고: 따라서, 지금까지 살펴 본 바로부터, 특히 "새 번역 성경"의 요한 복음서 20,7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요한 복음서 20,7에서 "rolled"로 번역이 된 그리스어 분사의 의미가, "...을 둘러 감싸다" 임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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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결론1)
다음은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부터의 중간 결론입니다:
 
3-1. "공동번역 성서"에서 "흩어져 있지 않고" 로 번역되었던 표현이, "새 번역 성경"에서 "놓여 있지 않고" 로 번역되었는데, "새 번역 성경"에서의 번역은, 여러 영어 성경들에서에서 "lying" 으로 번역된 표현의 그리스어 원어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기에, "새 번역 성경"의 집필 과정에서 "공동번역 성서"에서의 번역 오류를 바로 잡은 것으로 생각됨.
 
3-2. "공동번역 성서"에서 "개켜져 있었다" 로 번역되었던 표현이 "새 번역 성경"에서도 또한 "개켜져 있었다" 로 번역되었는데, 이러한 번역은, 여러 영어 성경들에서에서 "rolled up" 으로 번역된 표현의 그리스어 원어의 의미를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기에, 번역 오류/미숙이라고 생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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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기서는, 가톨릭 교회측의 성경 주석서에 주어진 주석들을 연대별로 비교/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비교/검토는 이들 주석들이 그 내용에 있어 어떻게 서로 관련이 되어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4-1.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가 교황 우르바노 4세(Urban IV)의 명에 따라 신약 성경의 네 복음서들에 대한 교부(Church Fathers)들과 주해자들의 주석들을 분석하여 요약 정리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Catena Aurea(Golden Chains, 황금 사슬들)에 주어진 요한 복음서 20,8-9에 대한 다음과 같은 영어본 주석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말 번역은 나중에 별도의 시간을 내어 하도록 하겠습니다.:
 
CHRYS. On coming he sees the linen clothes set aside: And he stooping down, and looking in, saw the linen clothes lying. But he makes no further search: yet went he not in.
 
성 크리소스토모(St. John Chrysostom) 도착하자 마자 그는 아마포가 별도로 놓여 있는 것을 다음과 같이 봅니다: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이 더 이상의 조사를 하지 않습니다: 안으로 드러가지는 않았다. 
 
Peter on the other hand, being of a more fervid temper, pursued the search, and examined every thing: Then comes Simon Peter following him, and went into the sepulcher, and sees the linen clothes lie,
 
다른 한 편으로, 더 열렬한 성격의 사람인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조사를 추구하였으며 그리고 모든 것을 검사하였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and the napkin, that was about His head, not lying with the linen clothes, but wrapped together in a place by itself. Which circumstances were proof of His resurrection. For had they carried Him away, they would not have stripped Him; nor, if any had stolen Him, would they have taken the trouble to wrap up the napkin, and put it in a place by itself, apart from the linen clothes; but would have taken away the body as it was. John mentioned the myrrh first of all, for this reason, i.e. to show you that He could not have been stolen away. For myrrh would make the linen adhere to the body, and so caused trouble to the thieves, and they would never have been so senseless as to have taken this unnecessary pains about the matter.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함께 둘러져 있었다(wrapped together). 이러한 상황들은 당신의 부활의 증거였습니다. 이는 만약에 누군가가 당신을 옮겼더라면, 그들은 당신의 수의(壽衣)를 벗기지 않았을 것이거나, 아니면 , 만약에 누구든 당신을 도둑질하였더라면, 그들은 수건을 둥글게 말아서, 그리고 그것을, 아마포로부터 떨어진 장소에, 그것만으로 두는 것을 일부러 하지 않았을 것이며,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신체를 가져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즉 당신께서는 도둑질을 당할 수가 없음을 그대에게 보이기 위하여, 요한은 무엇보다도 먼저 몰약을 언급하였습니다(요한 복음서 19,39). 이는 몰약이 아마포를 신체에 달라붙게 하여, 그리하여 그 결과 도둑들에게 어려움을 야기할 것이며, 그리하여 그들이 이 문제와 관련하여 바로 이러한 불필요한 고통을 겪는 것과 같이 대단히 어리석을 수는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After Peter however, John entered: Then went in also that other disciple, which came first to the sepulcher, and he saw, and believed. 
 
그러나 베드로를 뒤따라, 다음과 같이 요한이 들어갔습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AUG. i.e. That Jesus had risen again, some think: Ah, but what follows contradicts this notion. He saw the sepulcher empty, and believed what the woman had said: For as yet they knew not the Scripture, that He must rise again from the dead. If he did not yet know that He must rise again from the dead, he could not believe that He had risen. They had heard as much indeed from our Lord, and very openly, but they were so accustomed to hear parables from Him, that they too this for a parable, and thought He meant something else.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즉, 어떤 이는 예수님께서 이미 다시 살아나셨다고 생각합니다: 아, 그러나 뒤따르는 바는 이 생각에 모순됩니다. 그는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보았으며, 그리고 그 여인이 말하였던 바를 믿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요한 복음서 20,8)(*) 만약에 당신께서 죽은 이들로부터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그가 여전히(yet) 모르고 있다면, 당신께서 이미 살아나셨음을 그가 믿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주님으로부터 [이것을] 정말로 지나치게(as much), 그리고 매우 공개적으로, 이미 들었으나, 그러나 그들은 당신으로부터 비유들을 듣는 데에 너무도 익숙하여져 있었기에, 그들은 또한 이것을 한 개의 비유로 들었으며, 그리하여 당신께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5년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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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이 발췌문은 "새 번역 성경"요한 복음서 20,8에서 발췌된 것인데, 문제는"새 번역 성경"요한 복음서 20,8에서, "공동 번역 성서"에서처럼 "그때까지" 로 번역되는 대신에"아직" 으로 번역된 것이 중대한 번역 오류인 데에 있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지적의 글은 다음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 번역자 주: 바로 위의 (*) 번역자 주에 따라, 이 문장의 우리말 번역을 다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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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내용 추가 끝]
 
GREG. But this account of the Evangelist must not be thought to be without some mystical meaning. By John, the younger of the two, the synagogue; by Peter, the elder, the Gentile Church is represented: for as though the synagogue was before the Gentile Church as regards the worship of God, as regards time the Gentile world was before the synagogue. They ran together, because the Gentile world ran side by side with the synagogue from first to last, in respect of purity and community of life, though a purity and community of understanding they had not.

The synagogue came first to the sepulcher, but entered not: it knew the commandments of the law, and had heard the prophecies of our Lord's incarnation and death, but would not believe in Him who died. Then comes Simon Peter, and entered into the sepulcher: the Gentile Church both knew Jesus Christ as dead man, and believed in Him as living God. The napkin about our Lord's head is not found with the linen clothes, i.e. God, the Head of Christ, and the incomprehensible mysteries of the Godhead are removed from our poor knowledge; His power transcends the nature of the creature. And it is found not only apart, but also wrapped together; because of the linen wrapped together, neither beginning nor end is seen; and the height of the Divine nature had neither beginning nor end. And it is into one place: for where there is division, God is not; and they merit His grace, who do not occasion scandal by dividing themselves into sects.

But as a napkin is what is used in laboring to wipe the sweat of the brow, by the napkin here we may understand the labor of God: which napkin is found apart, because the suffering of our Redeemer is far removed from ours; inasmuch as He suffered innocently, that which we suffer justly; He submitted Himself to death voluntarily, we by necessity. But after Peter entered, John entered too; for at the end of the world even Judea shall be gathered in to the true faith. 

THEOPHYL. Or thus: Peter is practical and prompt, John contemplative and intelligent, and learned in divine things. Now the contemplative man is generally beforehand in knowledge and intelligence, but the practical by his fervor and activity gets the advance of the other's perception, and sees first into the divine mystery.
 
테오필락트(Theophylact). 혹은 다음과 같습니다: 베드로는 실제적이고 기민하며, 요한은 명상적이고 사고적이며, 그리고 하느님의 일들에 대하여 정통합니다. 그런데 명상적인 사람이 지식과 사고에 있어 일반적으로 앞지르나, 그러나 실제적인 자는 자신의 열정과 행동에 의하여 다른 이의 인지보다 앞섬을 획득하여, 그리하여 하느님의 신비를 먼저 간파합니다.  
(이상, 발췌 및 일부 문장들에 대한 우리말 번역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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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교황님을 포함하여 교황청 근무 성직자들 및 수도자들을 위한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요한 복음서 20,1-10의 구절들을 인용하거나 혹은 이들에 대한 주석들을 하고 있는 자료들을 찾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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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다음은 요한 복음서 20,6-8에 대한 NAB 주석입니다. 우리말 번역은 제가 한 것이며, 더 나은 내용 전달을 위하여 필요시 수정될 수 있습니다:
 
 
[6-8] Some special feature about the state of the burial cloths caused the beloved disciple to believe. Perhaps the details emphasized that the grave had not been robbed.
 
[6-8] 수의(壽衣, burial clothes)들의 상태에 관한 일부 특별한 특징은 사랑하는 제자들로 하여금 믿게 만들었다, 아마도 이 상세한 기술들은 이 무덤이 도난당한 적이 없음을 강조하였을 것이다.
 
4-3. 다음은 요한 복음서 20,8에 대한 프랑스어 공동번역 성경인 TOB 주석입니다. 영어 번역 및 우리말 번역은 제가 한 것이며, 더 나은 내용 전달을 위하여 필요시 수정될 수 있습니다:
 
 
[프랑스어 공동번역 성경인 TOB 주석] 
A la différence de Marie, le disciple voit, dans le tombeau vide et les linges pliés avec soin, le signe qui l'amène à comprendre que le corps n'a été ni volé ni déplacé et à reconnaître dans la foi la résurrection de Jésus.
 
(이 TOB 주석의 영어 졸번역)
Unlike Mary, the disciple sees, from the empty tomb and the linens folded up (packed) with care, the sign which leads to understand that the body has not been either stolen or moved and to acknowledge in the faith the resurrection of Jesus.
 
(이 TOB 주석의 우리말 졸번역)
마리아와는 달리, 이 제자는, 빈 무덤 및 조심스럽게 둘러 감싸고 있는(folded up, packed) 이 아마포로부터, (i) 시신이 도둑질을 당하였거나 혹은 이동되지 않았음을 이해하도록 이끄는, 그리고 (ii) 믿음 안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도록 이끄는, 표징(the sign)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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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11년 4월 26일] 
 
참고: 위의 프랑스어 공동번역 성경인 TOB 요한 복음서 20,8의 주석의 영어 및 우리말 졸번역들과 관련하여, 위의 제3항에 추가한, 다음과 같은TOB 의 요한 복음서 20,6-7 본문의 문맥을 필히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검토를 한 후에, 초벌 번역에서, "둥글게 말려져 있는" 으로 번역하였던 것을 지금과 같이 "둘러 감싸고 있는" 으로 수정하였습니다:
 
(프랑스어 공공번역 성경인 TOB)
20,6 Arrive, à son tour, Simon-Pierre qui le suivait; il entre dans le tombeau et considère les bandelettes posées
 
(TOB의 영문 졸번역)
20,6 In his turn, Simon-Pierre arrives, following him; he entered into the tomb and saw the bandages lying there
 
(프랑스어 공동번역 성경인 TOB)
20,7 et le linge qui avait recouvert la tête; celui-ci n'avait pas été déposé avec les bandelettes, mais il était roulé à part, dans un autre endroit.
 
(TOB의 영문 졸번역)
20,7 and the linen that had covered the head; this one has not been deposited with the bandages, but it was rolled up apart, in another place.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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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성경"의 주석]
마리아 막달레나와 달리, 이 제자는 무덤이 비어 있고 아마포가 잘 개켜져 있다사실의 깊은 뜻을 바로 파악한다. 믿음을 통하여, 예수님의 시신을 누가 도둑질해 가거나 다른 데로 옮겨 간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부활하셨음을 가리키는 표지를 본다.
 
참고: 요한 복음서 20,8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이, 프랑스어 공동번역 성경인 TOB의 주석을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문장의 구조까지도 췌손하면서 의역 번역을 하였다는 생각이며, 프랑스어 원문과 어느 정도 차이가 나는지는, 다음(***)에 있는 제가 한 졸번역문과 비교/검토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i) "사실의 깊은 뜻을 바로 파악한다" 라는 표현은 원문에 없으며, 

(ii)
한 개의 문장을 둘로 나누면서, "leads to understand ... and to acknowledge" ... 와 같이, lead to 에 이어지는 "to + 부정사" 문장들 두 개가 제대로 같은 수준으로 연결되지 않고, 대신에, 프랑스어 원문과는 대단히 다르게, "not A but B" 구조로 번역을 하여, 그리하여 "믿음 안에서/믿음을 통하여"의 위치가 프랑스어 원문에 있어서의 장소와 다른 장소에 붙어있으며, 

[주: 예수님의 시신을 누가 도둑질해 가거나 다른 데로 옮겨 간 것이 아닌 것은 당시의 빈 무덤 안에 있었던 수의(壽衣) 및 수건 등의 눈에 보이는 증거물들의 상태가 분명하게 스스로 입증하고 있기에, 믿음을 통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예를 들어, 위의 제4-1항에 있는 교부들의 주석들을 또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iii) 아래의 [2011년 4월 26일자 추가 내용]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를 또한 꼭 읽도록 하십시오.
 
그런데, 지금 드리고 있는 지적들은, 프랑스어 원문을, 일단 영어로 번역을 한 다음에 이 영어 번역문을 참고하면서, 우리말로 번역을 하면, 많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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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복음서 20,8에 대한 TOB 주석의 우리말 직역 졸번역)
마리아와는 달리, 이 제자는, 빈 무덤 및 조심스럽게 둘러 감싸고 있는(folded up, packed) 이 아마포로부터, 시신이 도둑질을 당하였거나 혹은 이동되지 않았음을 이해하도록 이끄는 그리고 믿음 안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도록 이끄는 표징(sign)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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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위의 TOB요한 복음서 20,8에 대한 주석은, 다음에 이어지는 요한복음서 20,8-10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에서, 다음과 같은 설명으로 주어지고 있습니다:
 
"... 이는 아마포 옷과 수건이 존재하고 있었던 특별한 방식을 그들이 보았기 때문이었으며, ..."
 
더 나아가, 요한 복음서 20,8-10에 대한 아래의 나바르 성경 주석서는, 베드로와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다고 알려진 그리하여 감수성이 가장 예민하였을 사도 요한이 빈 무덤에 들어가 목격하였던 바이며 그리고 사도 요한"보고 믿었던" 예수님 시신의 수의(壽衣)와 머리를 감쌌던 수건의 상태에 대하여 훨씬 더 상세하게 목격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1년 4월 26일]
 
특히, 시신을 쌌던 수의(壽衣)의 상태와 머리를 쌌던 수건의 상태 둘 다를 두고서, 원문이, 단수인 것이 아니라, 복수인 것도 무시하고(les linges), "주석 성경"의 주석에서 잘 "개켜져 있다" 라고 번역한 것은 상당히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지금 말씀드리는 이 지적과 관련하여서는, 다음의 제4-4항에 있는, 나바르 성경 주석서에서
 
(1) 시신을 쌌던 수의(壽衣)의 상태와
 
(2) 머리를 쌌던 수건의 상태를
 
뚜렷하게 구분하여 따로 설명하고 있음을 반드시 참고하도록 하십시오.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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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다음은, 총 6권이 한 질을 이루는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의 인터넷 각주로 제공되고 있는,
 
 
매년 부활절 주일의 복음 말씀인 요한 복음서 20,1-9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입니다. 우리말 번역은 제가 한 것이며, 더 나은 내용 전달을 위하여 필요시 수정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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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시작)
 
1-2. All four Gospels report the first testimonies of the holy women and the disciples regarding Christ's glorious resurrection, beginning with the fact of the empty tomb (cf. Matthew 28:1-15; Mark 16:1ff; Luke 24:1-12) and then telling of the various appearances of the risen Jesus.


1-2.
네 복음서들 모두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부활에 관한 거룩한 여인들과 제자들의 첫 증언들을, 빈 무덤(마태오 복음서 28,1-15; 마르코 복음서 16,1 및 이어지는 몇 개의 절들; 루카 복음서 24,1-12를 참조하라)이라는 사실과 그러고 나서 부활하신 예수님의 다양한 모습들을 말함으로써 시작하는, 보고를 합니다.


Mary Magdalene was one of the women who provided for our Lord during His journeys (Luke 8:1-3); along with the Virgin Mary she bravely stayed with Him right up to His final moments (John 19:25), and she saw where His body was laid (Luke 23:55). Now, after the obligatory Sabbath rest, she goes to visit the tomb. The Gospel points out that she went "early, when it was still dark": her love and veneration led her to go without delay, to be with our Lord's body.


마리아 막달레나
는 우리의 주님을 당신의 여행들 동안에 부양하였던 여인들 중의 한 명이었으며(루카 복음서 8,1-3), 그리고 동정 마리아와 함께 그녀는 당신의 최후의 바로 그 순간들에 이르기까지 당신과 함께 머물렀으며(요한 복음서 19,25), 그리고 그녀는 당신의 몸(body)이 묻혔던 장소를 확인하였습니다(saw)(루카 복음서 23,55). 이제 의무의 안식일 휴식 이후에, 그녀는 그 무덤을 방문하러 갑니다. 이 복음서는 그녀가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갔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사랑과 공경이 그녀를 지체 없이 가서, 우리의 주님의 몸과 함께 있도록 인도하였습니다.

4. The Fourth Gospel makes it clear that, although the women, and specifically Mary Magdalene, were the first to reach the tomb, the Apostles were the first to enter it and see the evidence that Christ had risen (the empty tomb, the linen clothes "lying" and the napkin in a place by itself). Bearing witness to this will be an essential factor in the mission which Christ will entrust to them: "You shall be My witnesses in Jerusalem...and to the end of the earth" (Acts 1:8; cf. Acts 2:32).


4.
네 복음서들은, 비록 이 여인들이, 그리고 특별히 마리아 막달레나가, 이 무덤에 도착한 첫 사람들이었으나, 사도들은 이 무덤에 들어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증거를 확인한 첫 사람들이었습니다 [빈 무덤, 놓여 있는 아마포(the linen clothes) 그리고 따로 떨어져 있는 한 장소에 있는 예수님의 얼굴을 쌓던 수건(the napkin)]. 이것을 증언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맡기려고 하실 임무에 있어 하나의 핵심 요소일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사도행전 1,8; 사도행전 2,32를 참조하라).


John, who reached the tomb first (perhaps because he was the younger), did not go in, out of deference to Peter. This is an indication that Peter was already regarded as leader of the Apostles.


(아마도 그가 젊은 세대였기에) 이 무덤에 첫째로 도착하였던 요한은, 베드로를 존중하여,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이미 사도들의 지도자로서 간주되어졌다는 증거(an indication)입니다.


5-7. The words the Evangelist uses to describe what Peter and he saw in the empty tomb convey with vivid realism the impression it made on them, etching on their memory details which at first sight seem irrelevant. The whole scene inside the tomb in some way caused them to intuit that the Lord had risen. Some of the words contained in the account need further explanation, so terse is the translation.


5-7.
빈 무덤 안에서 베드로와 자신이 보았던 바를 설명하기 위하여 이 복음 사가가 사용하는 단어들은 생생한 현실감(vivid realism)과 함께 이것이 그들에게 남겼던 인상(impression)을 전달하여(convey), 그 결과로 첫 눈에 관계가 없는 것(irrelevant) 같은  세부 사항들을 자신들의 기억에 아로새깁니다(etching). 이 무덤 안쪽에서의 전체 장면은 여러 가지 점으로 그들로 하여금 주님께서 이미 부활하셨음을 직관으로 알게 하였습니다. 번역이 너무 간결하여, 이 이야기에 포함되어 있는 단어들의 일부는 더 자세한 설명을 필요로 합니다. 


"The linen clothes lying there": the Greek participle translated as "lying there" seems to indicate that the clothes were flattened, deflated, as if they were emptied when the body of Jesus rose and disappeared--as if it had come out of the clothes and bandages without their being unrolled, passing right through them (just as later He entered the Cenacle when the doors were shut). This would explain the clothes being "fallen", "flat" "lying", which is how the Greek literally translates, after Jesus' body--which had filled them--left them. One can readily understand how this would amaze a witness, how unforgettable the scene would be.


"아마포가 (거기에) 놓여 있는": "놓여 있는" 으로 번역이 된 그리스어 분사는, 아마포 옷(the linen clothes, 즉 시신을 쌌던 천들)이, 예수님의 몸이 일어나 사라질 (rose and disappeared) 때에 마치 아마포 옷이 비워진(were emptied) 것처럼 -- [나중에 당신께서 위층 방(the Cenacle)에 문들이 닫혀 있을 때에 들어가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마치 당신의 몸이 아마포 옷과 붕대들로부터, (타인에 의하여) 이들의 풀어짐 없이, 바로 통과하여 나온 것처럼, 바람이 빠져(deflated), 평평하게 되었음(were flattened)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것은, 아마포 옷을 채우고 있었던 예수님의 몸이 이 옷을 떠난 이후에, 이 그리스어 단어가 글자 그대로 설명하는 방식인, "중력에 의하여 자유롭게 내려가게 된(being fallen)", "납작하게(flat)" "드러누워 있는(lying)", 아마포 옷에 대하여 설명할 것입니다(would explain). 우리는 이것이 목격자를 얼마나 놀라게 하였을 (amaze) 것인지, 얼마나 잊지 못할(unforgettable) 장면이었을 것인지를 즉시 이해할 수 있습니다.


"The napkin...rolled up in a place by itself": the first point to note is that the napkin, which had been wrapped round the head, was not on top of the clothes, but placed on one side. The second, even more surprising thing is that, like the clothes, it was still rolled up but, unlike the clothes, it still had a certain volume, like a container, possibly due to the stiffness given it by the ointments: this is what the Greek participle, here translated as "rolled", seems to indicate.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첫 번째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미 머리 둘레를 쌌던(wrapped round) 이 수건이 아마포 옷의 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한 곳에 따로 놓여 있었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로, 심지어 더 놀라운 일은, 아마포 옷처럼, 이것은 여전히 둥글게 말아져 있었으나(was rolled up) 그러나, 아마포 옷과는 달리, 이것은, 하나의 용기처럼(a container), 아마도 발랐던 연고에 의한 빳빳함 때문인지 여전히 어떤 체적(a certain volume)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인데, 이것이, 여기서 "둥글게 말아져 있는(rolled)"으로 번역이 된, 그리스어 분사(the Greek participle)가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바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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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 이어지는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 및 다음의 해당 그리스어 분사의 의미에 따르면, "was rolled up"으로 번역된 표현을 "공동번역 성서"와 "새 번역 성경"에서, 예를 들어, "둥글게 말아져 있었다" 라고 번역하는 대신에, "개켜져 있었다" 로 번역한 것은 번역 오류/미숙이라는 생각이다. 이는,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국어 사전의 설명에 의하면, "개키다"는 "개다"와 동의어로서, "옷이나 이부자리 따위를 졉치거나 접어서 단정하게 포개다" 라는 의미이나, 그러나,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rolled"로 번역이 된 그리스어 분사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을 둘러 감싸다"이기 때문이다:

εντετυλιγμενον  verb - perfect passive participle - accusative singular neuter
entulisso  en-too-lis'-so:  to entwine, i.e. wind up in -- wrap in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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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these details concerning the empty tomb one deduces that Jesus' body must have risen in a heavenly manner, that is, in a way which transcended the laws of nature. It was not only a matter of the body being reanimated as happened, for example, in the case of Lazarus, who had to be unbound before he could walk (cf. John 11:44).


빈 무덤에 관한 이러한 세부 사항(details)들로부터 우리는 예수님의 몸이 천상의 방식(a heavenly manner)으로, 즉 자연 법칙(the laws of natures)들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부활하셨음에 틀림이 없다고 연역적으로 추론합니다(deduces). 이는 이것이, 예를 들어, 그가 걸을 수 있기 전에 다른 사람이 몸에 감겼던 붕대를 풀어주어야만 하였던,
라자로(Lazarus)의 경우에 있어 발생하였던 것과 같이(요한 복음서 11,44를 참조하라), 단순히 죽은 이의 몸이 소생하게 됨(being reanimated)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8-10. As Mary Magdalene had told them, the Lord was not in the tomb; but the two Apostles realized that there was no question of any robbery, which was what she thought had happened, because they saw the special way the clothes and napkin were; they now began to understand what the Master had so often
told them about His death and resurrection (cf. Matthew 16:21; Mark 8:31; Luke 9:22; etc....)


8-10.
마리아 막달레나(Mary Magdalene)가 그들에게 이미 말하였듯이, 주님께서는 그 무덤에 계시지 않으셨으나, 그러나 이 두 사도들은, 그녀가 생각하기에 이미 발생하였던 바이었던, 어떤 도난의 의혹이 전혀 없음을 알아차렸는데, 이는 아마포 옷과 수건이 존재하고 있었던 특별한 방식을 그들이 보았기 때문이었으며, 그리고 이제 그들은 스승님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에 관하여 그들에게 매우 자주 그들에게 말씀하셨던 바를 이해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마태오 복음서 16,21; 마르코 복음서 8,31; 루카 복음서 9,22 등을 참조하라).

The empty tomb and the other facts were perceptible to the senses; but the resurrection even though it had effects that could be tested by experience, requires faith if it is to be accepted. Christ's resurrection is a real, historic fact: His body and soul were re-united. But since His was a glorious resurrection unlike Lazarus', far beyond our capacity in this life to understand what happened, and outside the scope of sense experience, a special gift of God is required--the gift of faith--to know and accept as a certainty this fact which, while it is historical, is also supernatural. Therefore, St. Thomas Aquinas can say that "the individual arguments taken alone are not sufficient proof of Christ's resurrection, but taken together, in a cumulative way, they manifest it perfectly. Particularly important in this regard are the spiritual proofs (cf. specially Luke 24:25-27), the angelic testimony (cf. Luke 24:4-7) and Christ's own post-resurrection word confirmed by miracles (cf. John 3:13; Matthew 16:21; 17:22; 20:18)" (St.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ae", III, q. 55, a. 6 ad 1).


이 빈 무덤과 다른 사실들은 감각들에 인지될 수 있었으나, 그러나 이 부활은, 비록 이것이 경험에 의하여 확인 될 수 있었을 것이나, 이것이 받아들여지려고 한다면, 믿음(faith)을 요구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실제의, 역사적 사실입니다: 당신의 몸과 영혼은 재결합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부활은
라자로(Lazarus)의 소생과는 달리, 이 삶 안에서 발생하였던 바를 이해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훨씬 능가하는, 그리고 감각 경험의 영역 바깥의, 영광의 부활이었기에, 확실한 사실로서, 당신의 부활이 역사적이면서도, 또한 초자연적인, 바로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받아들이게 되기 위하여, 믿음이라는 선물(the gift of faith)인, 하느님의 특별한 선물이 요구됩니다. 그러므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단독으로 거론하게 되는 개별적 논증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아니며, 함께 취합되어, 누적되는 방식으로, 이 논증들은 당신의 부활을 완벽하게 입증한다(manifest). 특히 이것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들에는 영적 입증(spiritual proofs)들 (특별히 루카 복음서 24,25-27를 참조하라), 천사들의 증언 (루카 복음서 24,4-7을 참조하라) 그리고 그리스도 당신 고유의 부활 후의 말씀이 있다(요한 복음서 3,13; 마태오 복음서 16,21; 17,22; 20,18을 참조하라)"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ans), "신학 대전(Summa Theologiae", III, q. 55, a. 6 ad 1].

In addition to Christ's predictions about His passion, death and resurrection (cf. John 2:19; Matthew 16:21; Mark 9:31; Luke 9:22), the Old Testament also foretells the glorious victory of the Messiah and, in some way, His resurrection (cf. Psalm 16:9; Isaiah 52:13; Hosea 6:2). The Apostles begin to grasp the true meaning of Sacred Scripture after the resurrection, particularly once they receive the Holy Spirit, who fully enlightens their minds to understand the content of the Word of God. It is easy to imagine the surprise and elation they all feel when Peter and John tell them what they have seen in the tomb.


당신의 수난, 죽음 그리고 부활에 관한 그리스도의 예언들에 추가하여
(요한 복음서
2,19; 마태오 복음서 16,21; 마르코 복음서 9,31; 루카 복음서 9,22을 참조하라), 구약 성경도 또한 메시아에 대한,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당신의 부활에 대한, 영광의 승리를 예고합니다(시편 16,9; 이사야 52,13; 호세아 6,2를 참조하라). 사도들은 당신의 부활 이후에, 특히 그들이, 하느님의 거룩한 말씀의 내용을 이해하도록 그들의 마음들을 충만하게 교화하는(enlightens), 성령을 받게 되자, [구약] 성경(Sacred Scriptures)의 참 의미를 붙잡기(grasp) 시작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이 무덤에서 자신들이 이미 보았던 바를 그들에게 말할 때에 그들 모두가 느꼈을 놀라움과 행복감(elation)을 상상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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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음은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부활절 주일 복음 말씀(요한 복음서 20,1-9) 해설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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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시작)
 
복음-요한 20,1-9
 
 
     복음사가(Evangelists)들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자체에 대하여 언급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그들 누구에 의하여서도 목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빈 무덤 및 당신의 사도들에게 나타나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에 대한 증거(testimony)에 의하여, 복음서들 및 1코린토 15,4-7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그 무덤으로 갔을 때인 바로 그 첫 부활 아침에 일어났던 일에 대한 내용을 부활절 아침에 우리가 들어야만 하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1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일요일 새벽녘 이전 시각에 무덤이 비어 있었음이 처음으로 발견된 것에 대하여 모든 복음서의 서술들이 기본적으로 일치하고 있다. 당시의 일행들과 함께 마리아 막달레나는 복음사가 마태오와 복음사가 마르코에 의하여 역시 거명되고 있고, 복음사가 루카는 이름을 대지는 않으나 ‘여인들’이라는 복수형으로 말하고 있다. 이 구절에서 복음사가 요한은 마리아 막달레나가 혼자였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한 듯하나, 다음 구절에서 우리가 보게 될 것이지만 이것이 반드시 그러할 필요는 없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마르코 복음서 16,7에서는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공지하라는 말을 여인들이 (흰 옷을 입은 한 젊은이로부터) 들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relates), 이와는 달리 요한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사도(요한 자신)를 집어내어 언급하는 단 한 명의 복음사가이다.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단순히 ‘모른다’라고 번역한 표현은 NAB 영어 성경에서 ‘we don't know’로 번역하였으며, 대부분 영어본 성경에서도 또한 그렇게 번역하고 있다. ‘(우리는) 모른다’라고 언급된 사실은, 마리아 막달레나 혼자 무덤에 간 것이 아니라 실제로 다른 여인들과 함께 갔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3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4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요한이 무덤 밖에 머무른 것에 대한 이유는 주어져 있지 않으나, 그와 베드로가 사실 확인을 위하여 무덤으로 갔다는 놀랍고 또 염려스러운 뉴스는 주어지고 있다. 이 구절은, 다른 제자가 무덤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은 베드로가 12사도들의 지도자였기 때문이고, 또 그러한 자격에 있어(as such) 사실 확인을 선두 지휘하는(lead) 것이 베드로의 책임이었음을, 우리들로 하여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6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여기서 '놓여 있는'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분사(participle)는 시신을 쌌던 천들이 납작하게 가라앉아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육신이 일어나 사라질 때에, 마치 중력에 의하여 그 속을 빠져나가 비워진 듯 ― 마치 (문들이 닫혀 있었던 위층 방에 예수님께서 들어가실 때와 마찬가지로) 시신을 쌌던 천들이 (타인에 의하여) 풀어지지 않고 이들을 바로 통과하여 예수님의 육신이 천들로부터 빠져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이 목격자들을 얼마나 놀라게 하였을지, 또 얼마나 잊지 못할 장면이었을 것인지에 대하여 누구든 즉각 이해할 수 있다.
 
7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다. 
 
‘개켜져 있다’로 번역된 표현은 NAB 영어 성경에서 ‘rolled up’으로 번역하였으며,*) 다른 영어 성경들에서는 'rolled up', ‘wrapped up’혹은 'folded up'으로 번역하였는데,297)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 동사 원형은 εντετυλιγμενον 이다. 얼굴을 쌌던 수건(head cloth)은, 입이 닫힌 채로 있도록 고정하기 위하여, 턱 아래와 머리 윗부분에 걸쳐, 삼각 붕대 감기와 같이, 둥글게 돌려지고 묶어졌을 것이다. 첫 번째로 유의하여야 할 것은 이것이 시신을 쌌던 다른 천들과 함께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한 곳에 따로 놓여 있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 우리를 더욱 더 놀라게 하는 것은, 시신을 쌌던 천들과는 달리, 얼굴을 쌌던 수건이, 마치 용기(container)와 같이, 아마도 발랐던 연고에 의한 빳빳함 때문인지, 여전히 체적(volume)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여기서 ‘둥글게 말아져 있는(rolled)’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분사가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바 바로 그것이다. 이 빈 무덤에 대한 이러한 자세한 세부 사항들로부터 예수님의 몸이 천상의 방법(heavenly manner), 즉 자연 법칙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부활하였음을 우리는 연역적으로 추론한다. 이것은, 예를 들어, 걸을 수 있기 전에 다른 사람이 몸에 감겼던 붕대를 풀어주어야 하였던 라자로(Lazarus)의 경우에 발생하였던 것처럼(요한 복음서 11,44), 단순히 죽은 이의 몸이 소생하게 됨(being reanimated)과 같은 그러한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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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지는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 및 다음의 해당 그리스어 분사의 의미에 따르면, "was rolled up"으로 번역된 표현을 "공동번역 성서"와 "새 번역 성경"에서, 예를 들어, "둥글게 말아져 있었다" 라고 번역하는 대신에, "개켜져 있었다" 로 번역한 것은 번역 오류/미숙이라는 생각이다. 이는,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국어 사전의 설명에 의하면, "개키다"는 "개다"와 동의어로서, "옷이나 이부자리 따위를 졉치거나 접어서 단정하게 포개다" 라는 의미이나, 그러나,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rolled"로 번역이 된 그리스어 분사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을 둘러 감싸다"이기 때문이다:

εντετυλιγμενον  verb - perfect passive participle - accusative singular neuter
entulisso  en-too-lis'-so:  to entwine, i.e. wind up in -- wrap in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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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298) 9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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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8) 이스라엘 지역의 성지순례 전반에 대한 안내는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pilgrimage/Israel_sacred_site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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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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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과 관련하여,
 
6-1. 여기를 클릭하면, 영문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639-658항들(The Historical and Transcendent Event)을 읽을 수 있습니다.
 
6-2. 여기를 클릭하면,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639-658항들(역사적이며 역사를 초월하는 사건)을 읽을 수 있습니다.
 
 
7. (결론)
 
지금까지, 요한 복음서 20,6-8에 기록된, 베드로와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렸다고 알려진 그리하여 감수성이 가장 예민하였을 사도 요한이 빈 무덤에 들어가 목격하였던 바이며 그리고 사도 요한이 "보고 믿었던", 예수님 시신의 아마포 수의(壽衣)와 이 시신의 머리를 감쌌던 수건의 상태에 대하여 더 자세하게 살펴 보았습니다. 
 
     부디 바라는 것이 있다면, 특히 형이하학적 물증에만 의존하는 자신의 이성적 판단만을 인정하기에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진심으로 확신하지 못하여 왔던 분들 모두가 이 글을 차분히 읽고 묵상함으로써, 신인이신, 즉 하느님이며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좀 더 빨리 확신하고 믿게 되는 데에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2011년 부활 주일에 즈음하여 이 글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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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 20시간  
 
 
[내용 추가 일자: 2011년 4월 25일]
 
P.S.
 
여기를 클릭하면 (사용한 key words: "rolled up" "empty tomb" "jesus")
 
빈 무덤 안에 있었던 예수님 시신의 머리를 둘러쌌던 수건에 대하여 구글 검색 엔진으로 검색된 영문 글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지금 약 12,800여개의 글들이 검색되고 있는데, 이들 모두를 확인하지는 않았으나, 그러나 아마도 이 글에서 말씀드리고 있는 내용을 말하고 있으며 그리고 대동소이한 결론을 내리고 있을 것입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사용한 key words: "wrapped up" "empty tomb" "jesus")
 
빈 무덤 안에 있었던 예수님 시신의 머리를 둘러쌌던 수건에 대하여 구글 검색 엔진으로 검색된 영문 글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지금 약 16,200여개의 글들이 검색되고 있는데, 이들 모두를 확인하지는 않았으나, 그러나 아마도 이 글에서 말씀드리고 있는 내용을 말하고 있으며 그리고 대동소이한 결론을 내리고 있을 것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2년 4월 8일 부활 주일]

1.
여기를 클릭하면

오늘 밤인 나해 부활 성야 미사 중의 여러 개의 독서들, 서간 독서(로마 6,3-11), 그리고 복음 말씀(마르코 16,1-7)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영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비록 영어가 가능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서간 독서(로마 6,3-11)와 복음 말씀(마르코 16,1-7)에 대한 해설의 우리말 번역이 또한 제공되고 있으므로, 함께 읽고 묵상하셨으면 합니다.

참고 사항:

특히 매년 부활 성야 미사 중의 (구약 성경에서 발췌 되는, 구약 성경에 드러내어진 하느님의 인류 구원 의지의 요약인) 여러 개의 독서들, 그리고 서간 독서(로마 6,3-11)은 매년 동일하고, 단지 가해, 나해, 그리고 다해 부활 성야의 복음 말씀만 다릅니다. 

2. 여기를 클릭하면,

가해 부활 성야 복음 말씀(마태오 28,1-10)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영문 및 우리말 번역)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의 해설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발췌 시작)
주일(Sunday) 아침 이른 시간에 발생하였던 예수님의 부활은 복음사가(the evangelist) 들 모두가 분명하게(clearly) 그리고 모호하지 않게(unequivocally)  서술하는 사실입니다. 일부 거룩한 여인들은 놀랍게도 무덤이 열려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무덤 안으로 들어가자 마자(마르코 복음서 16,5-6), 그들은 자신들에게,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마태오 복음서 28,6), 라고 말하는 한 명의 천사를 봅니다. 이 천사가 돌을 밀어붙일 때에 무덤을 경비하던 사람들은 도성(the city)으로 가서 수석 사제들에게 무슨 일이 이미 일어났는지를 보고합니다. 이들은, 이 문제의 중압감(urgency) 때문에, 이 경비병들에게 뇌물을 주기로 결정하며, 그리하여 이들은 그들이 자고 있을 때에 당신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갔다는 말을 그들이 퍼뜨린다는 조건으로 그들에게 상당한 양의 돈을 줍니다 (마태오 복음서 28,11-15).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비열한 교활함이여, 그대들은 잠을 자고 있었던 증인들을 우리들에게 제시하는 것인가? 만약에 이것이 그대들이 제공하여야 하는 유일한 종류의 설명이라면 실제로 잠을 자고 있었던 자들은 바로 그대들이오!" ["Ennarationes in Psalmos", 63, 15].
(이상, 발췌 끝)

그리고

3. 여기를 클릭하면

다해 부활 성야 복음 말씀(루카 24,1-12)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영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성경 공부를 하실 때에, 신약 성경의 네 복음서들 중의 병행 구절들을 한꺼번에 학습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데, 이는 이들 병행 구절들의 내용이 동일한 주제에 대하여, 인간 저자들에 의한, 서로 상호 보완적 서술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공부를 하시는 분들께 혹시 도움이 될까 하여, 추가로 말씀드립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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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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