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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惡, evil)의 정의(definition) 외 [성경용어_악] [교리용어_선] [악의 신비] [교리용어_윤리적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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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28.42.*]

2011-07-18 ㅣ No.1085

 
 
게시자 주: 
 

이 글은, 예를 들어 가해 연중 제17주일 제1독서(1열왕 3,5.7-12)와 제1독서(로마 8,28-30)의 본문 중에 등장하는, "선(善, good)""악(惡, evil)" 용어들의 신학적 정의(definition)를 다루는 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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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 예수님!
 
 
다음은 어떤 분이 퍼왔다는 묵상글(제목: 선과 악의 존재 이유)의 일부인데,
 
이렇게 선(善, good)악(惡, evil)이원론적으로 설명하는 글은, 독자들이 가톨릭 교회가 가르치고 있는  악(惡, evil)의 개념(concept) 혹은 정의(definition)를 잘못 이해하도록 할 수 있기에, 상당히 곤란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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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자: 2011-07-18; 수원교구 평촌성당(주임신부: 배영호 베드로)]
(발췌 시작)

연중 제 16주일

                  교중 미사 강론 중에서....

 

[...]

선과 악은 참으로 오묘한 을 이루고 있습니다.

서로 배척하고 있는 것 같지만 서로 끌어안고
큰 그림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악이 있기에 선이 있고 선이 있기에 악이 있습니다.
선과 악은 서로 서로 헐뜯고 시비하지만 서로를
필요로 한다
는 것입니다.

악을 근절하려 마음먹었던 사람이 있었지만
악을 제거한 사람은 없었고, 누구나 악을 뿌리 뽑겠다고
생각은 하였지만 실제로 악을 뿌리째 뽑은 사람은 없었다.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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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 예수님


1. 우선적으로, 다음은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용어집에 주어진 용어 설명입니다. 괄호 안의 번호는 CCC의 해당 항목 번호입니다. 이 설명에서, 첫 번째 문장이 해당 용어의 정의(definition)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cc_glossary.htm


EVIL: The opposite or absence of good. One form of evil, physical evil, is a result of the "state of journeying" toward its ultimate perfection in which God created the world, involving the existence of the less perfect alongside the more perfect, the constructive and the destructive forces of nature, the appearance and disappearance of certain beings (310). Moral evil, however, results from the free choice to sin which angels and men have; it is permitted by God, who knows how to derive good from it, in order to respect the freedom of his creatures (311). The entire revelation of God's goodness in Christ is a response to the existence of evil (309, 385, 1707). The devil is called the Evil One. See Devil/Demon.


악(惡, EVIL): 선(善, good)의 반대(opposite) 혹은 부재(absence, 결여)를 말한다. 악의 한 형태인 형이하학적 악(physical evil, 물리적 악)은,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던 이 세상의 궁극적인 완미(完美)(perfection)를 향한, 더 완미(完美)한 것들의 존재와 함께(alongside) 덜 완미(完美)한 것들의 존재, 자연의 건설적 및 파괴적 힘들, 어떤 존재들의 나타남과 사라짐 등이 수반되는(involving), ‘순례하고 있음이라는 상태(state of journeying)’의 어떤 결과이다(CCC 제310항). 그러나 윤리적 악(moral evil)은, 천사들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죄(sin)에 대한 자유로운 선택으로부터의 결과이며, 그리고 이 악은, 당신의 피조물들의 자유(freedom)를 존중하시고자, 악으로부터 선을 어떻게 도출하는지를 알고 계시는, 하느님에 의하여 허락되어져 있다(CCC 제311항).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선하심(God's goodness)의 전체 드러내심(entire revelation)은 악의 존재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다(CCC 제309, 385, 1707항). 악마(devil)는 악한 자(the Evil One, 사탄)로 불린다(NAB 마태오 복음서 5,37).(*)  악령/악마(Devil/Demon)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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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NAB 마태오 복음서 5,37에서 ‘the evil one'으로 번역된 표현을 새 번역 성경에서는 '악'으로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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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그런데, 위의 용어 설명에 있어 해당 용어의 정의(definitions)인 첫 문장의 설명이 너무 간결하여, 악(惡, evil)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이 첫 문장의 설명으로부터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이 문제는, 다음의 제2항제3항에 주어진 Modern Catholic Dictionary 의 설명을 읽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위의 첫 번째 문장 이후의 설명으로부터, 우리는 악에 형이하학적 악(physical evil, 물리적 악)윤리적 악(moral evil)이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310항 및 전후의 항들에 주어진 더 자세한 가르침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310.htm <----- 필독 권유
 

2.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 에 실린 "악(惡, evil)"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입니다. 이 설명에서, 첫 번째 문장이 해당 용어의 정의(definition)입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e/e194.htm 

EVIL 

The privation of a good that should be present. It is the lack of a good that essentially belongs to a nature; the absence of a good that is natural and due to a being. Evil is therefore the absence of what ought to be there.

 

(졸번역)
악(惡, EVIL)


현존하여야만 하는 어떤 선()(a good)의 결여(privation)를 말한다. 이것은 어떤 본성에 본질적으로 속하는 어떤 선(善)결핍(lack)을 말하며, 그리고 자연적이며 그리고 어떤 있음(a being)에 기인하는(due to) 어떤 선의 부재(absence)를 말한다. 그러므로 악(惡, evil)은 거기에 마땅히 있어야만 하는 바의 부재를 말한다.


게시자 주: 따라서 "죄(sins)들은 모두가 악(惡, evil)"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2년 10월 28일]
그러나, 참인 이 명제의 역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일반적으로 악(evil)이 항상 죄(sin)인 것은 아닙니다.

다른 한편으로,

여기를 클릭하면, <----- 꼭 필독 권고


"윤리적 악(moral evil)은 항상 죄(sin)임"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8월 5일]
게시자 주: 다른 한편으로, 윤리학 분야에 있어 위에 주어진 "악(惡, evil)"정의(definition)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 중에서오로지 이원론자(dualists)들이 있을 수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도록 하십시오.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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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러면, 선(善, good)정의(definition)는 무엇일까요?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 에 실린 "선(善, good)"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설명에서, 첫 번째 문장이 해당 용어의 정의(definition)입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g/g091.htm 

GOOD

In general, whatever is suitable or befitting someone or something. Practically, however, it is that which all things tend toward or desire. The good is the desirable, and therefore the object of the natural (or supernatural) needs or tendencies of a being.


(졸번역)

선(善, GOOD)


일반적으로, 어떤 자 혹은 어떤 사물에 적합하거나 혹은 적절한 것 무엇이든지를 말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모든 사물들이 향하는 경향이 있거나(tend) 혹은 욕망하는(desire) 바 바로 그것을 말한다. 선한 사물(善, the good)들은 바람직한 것(the desirable)들을 말하며, 따라서 어떤 있음(a being)의 자연적 (혹은 초자연적) 필요한 것(needs)들의 혹은 성향들의 대상(object)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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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항위의 제2항제3항의 용어들의 정의가 주어진 출처들에 가면 원 출처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일부 독자들께서는 이들 용어들의 설명이 누구에 의하여 주어졌으며 그리고 보편 교회의 교도권에 의하여 받아들였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부정적 의구심이 아니라, 모두의 발전을 위한 긍적적이며 유익한 그리고 건설적인 의구심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분들을 위하여 추가로 말씀을 드립니다만, 위의 Modern Catholic Dictionary 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술들, 특히 신학 대전을 읽고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용어들에 대한 설명들이 주어진, 대단히 우수한 영어 가톨릭 용어 사전 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1년 7월 25일]

이에 관하여서는, 여기를 클릭하여, 이 용어 사전의  Guide를, 특히 제일 마지막 부분에 주어진, 다음의 설명을 참고하십시오:


(발췌 시작)

Scholastic Philosophy and Theology

Special attention was paid to certain basic terms from scholastic philosophy and theology. These terms are the backbone, as it were, of the Church’s official teaching of faith and morals. It is impossible to understand the Catholic church in her own deepest understanding of herself without some familiarity with this language of scholastic thought.


스콜라 철학 및 신학


특별한 배려가 스콜라 철학 및 신학에서 유래하는 어떤 기본적 용어들에 기울여졌습니다. 이들 용어들은, 말하자면, 신앙과 윤리들에 대한 교회의 공식적 가르침의 중추(中樞, backbone)입니다. 스콜라 철학적 사고(scholastic thought)에 기인하는 이러한 언어와의 상당한(some) 친숙 없이 교회 자신에 대한 교회 고유의 가장 깊은 이해 안에서 가톨릭 교회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상, 발췌 끝).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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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언급된, 선(善, good)정의(definition)에 더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서는 (회원 가입이 필요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여,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저서인 신학 대전의 약 600여 개에 달하는 각 문항(Questions)들에 대한 "압축된 바꾸어 말하기"인 Paul J. Glenn 몬시뇰(1893-1957)의 저서: "A Tour of the Summa(신학 대전 여행)" 에서,

하느님의 속성들 > 5. 선함  및

하느님의 속성들 > 19. 하느님의 의지

와 신학 대전의 해당 본문들을 읽고 묵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출처: http://club.catholic.or.kr/tourofSu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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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상 학습한 바에 의하면, 악(惡, evil)어떤 선(善, good)의 결핍으로 정의되므로(is defined), 악(惡, evil)은 결코 본질적인 것이 아니며, 그리고 악(惡, evil)은 결코 하느님에 의하여 창조된 것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주의 사항 한 개: 우리의 이성적 추론의 과정에 있어, 어떤 사물이 가지고 있는 동일하지 않은 두 개의 개념들을 구분함이 이들 두 개념들을 현실태적으로(actually) 따로 따로 분리시킴이 아님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마치 이들 두 개념들이 현실태적으로(actually), 예를 들어, 하나는 오른 쪽에 위치하고 나머지 하나는 왼쪽에 위치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 것은, 반드시 회피하여야 할 사고의 오류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의 발췌문에서의 언급과 같이, "악이 있기에 선이 있고 선이 있기에 악이 있다"이원론적 주장은,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과는 크게 동떨어진 대단히 잘못된 주장입니다. 이는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을 때에, 창조된 것들 모두는 선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모든 피조물들은 완미(完美)(perfection)의 상태, 즉 원 은총(original grace)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선(善, good) 악(惡, evil)이원론적 주장은, 그리스도교에서는 전통적으로 가르친 바가 없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 필독 권유.


아래에 발췌한, 이에 대하여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참고: 이 글은,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5년 6개월쯤 전에, "악에 관하여" 제목의 글 중에서 읽을꺼리로 말씀드렸던 글이기도 합니다. 


특히 아래에 발췌한 이 영문 에세이의 첫 부분에서, 

(i) 마니교에서의 주장, 
(ii) 불교에서의 주장, 
(iii) 그리스도교에서의 (가톨릭 및 개신교 포함) 입장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특히, 위에서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은, 가톨릭 보편 교회의 교도권에서 받아들인 세 번째 학설을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The Mystery of Evil
악의 신비


In the aftermath of September 11, the word evil has reappeared in public discourse, but often without a clear understanding of what the word means. There are at least three ways of understanding evil, which is the most intractable mystery of the universe.


[2001년] 9월 11일 [테러]의 영향으로, 악(evil)이라는 단어가 공적 담론(public discourse)에 재출현하였으나, 그러나 자주 이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이해없이 입니다. 우주의 가장 다루기 어려운  신비인, 악(evil)을 이해하는 데에는 적어도 세 가지의 방식들이 있습니다.


Historically, perhaps the earliest of these is dualism. The universe is divided into two kingdoms, one of good, the other of evil, which are perpetually at war with one another. Each is ruled by some kind of divinity, and the end of history will be the final separation of the two, when they will cease to have any relation to each other.


역사적으로, 이들 중에서 가장 이른 것은 아마도 이원론(dualism)일 것입니다. 우주는, 하나는 선으로 이루어고, 다른 하나는 악으로 이루어진,  두 개의 나라(kingdoms)들로 분리되어 있으며, 이들은 서로 서로와 항구적인 전쟁 상태에 있습니다. 각자는 어떤 종류의 신성에 의하여 지배를 받게 되며, 그리고 역사의 끝은, 이들이 서로 서로에 대하여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 것도 그만 둘 때인, 이 두 나라의 최종적 분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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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이것은 마니교의 주장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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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econd theory holds evil to be an illusion. Thus, the pain of physical suffering, of personal loss, of the frustration of one’s desires, all evaporate if one cultivates the appropriate spirit of detachment. Evil is an illusion because the good of which it is a negation is itself an illusion. The goal of existence is to get beyond the possibility of desiring anything.


두 번째 학설(theory)은 악이 어떤 착각(an illusion)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육체적 고통에 기인하는, 개인적 손실에 기인하는, 자신의 욕구에 대한 좌절에 기인하는, 아픔 모두는, 만약에 우리가 적절한 초연함(detachment)의 영성을 계발한다면, 사라집니다. 악은 어떤 착각인데 왜냐하면 그것의 반대인 선(good) 자체가 하나의 착각이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목적은 어떤 것을 욕구하는 가능성 넘어로 가고자 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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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이것은 불교의 주장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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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hird theory is the Christian idea that evil is nothingness. It differs from the first in that it does not concede evil an equal place with good and from the second because it affirms the goodness of the world, the loss of which is evil. It does not declare, for example, that losing a loved one is insignificant because human attachments are illusory. Rather, it affirms the good of the universe and defines evil as the privation of that good. Death is evil because it is the loss of life, illness because it is the loss of health, adultery because it is the loss of love and trust.


세 번째 학설은 악이란 '있음의 부재(nothingness)'라는 그리스도인들의 개념(idea)입니다. 이 학설은 이 학설이 악에게 선과 동등한 자리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어 첫 번째 학설과 다르며 그리고 이 학설이, 그것의 상실(loss)이 악인, 이 세상의 선함(goodness)을 확언하기 때문에 두 번째 학설과 다릅니다. 이 학설은, 예를 들어, 어떤 사랑하는 자의 사별(loss)은, 인간의 애착들이 착각을 일으키게 하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학설은 우주의 선을 확언하며(affirms) 그리고 악을 바로 이 선의 상실(deprivation)로 정의합니다(defines). 죽음은 악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생명의 상실이기 때문이며, 질병은 악인데 왜냐하면 그것은 건강의 상실이기 때문이며, 간음은 악인에 왜냐하면 그것은 사랑과 신뢰의 상실이기 때문입니다.


Some Christians find this theory incredible but only, I suspect, because they have not bothered to think much about it. Theologians came to this view of evil because of their realization that an all-good God could not create evil; hence, evil cannot really exist. “God saw everything that he had made, and, behold, it was very good” (Genesis 1:31).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제가 의심하기에, 단지 그들이 이 세 번째 학설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도록 애써 왔지 않았기 때문에,  이 학설이 믿기 어려운(increbible) 것을 발견합니다. 신학자들은, 최고의 선함이신(all-good) 하느님께서 악을 창조하실 수 없으며, 그리하여 그 결과, 악이 실제로 존재할 수 없다는 자신들의 알아차림 때문에, 악에 대한 이러한 견해에 도달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창세기 1,31).


Some Christians misunderstand what is meant by calling evil “nothingness.” They fear that the concept will induce complacency in people who think they have nothing to be concerned about. But in the physical world the vacuum (or what physicists call “black holes”) show that nothingness is not without a perverse kind of power. So also, various kinds of deprivation—of food, water, air—are powerfully destructive, although the deprivations are not anything in themselves. Recognizing evil as nothingness need not make one complacent. The absence of food makes one anxious (and highly motivated to find food). One drives very carefully on a mountain road where the shoulder has disappeared.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악을  "있음의 부재(nothingness)"라고 부르는 것이 뜻하는 바를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개념이 자신들이 염려하여야 할 아무 것도 가지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있어 자기 만족(complacency)을 불러 일으킬 것임을 염려합니다. 그러나 형이하학적 세상(physical world)에 있어 진공 [혹은 물리학자들이 "블랙 홀(black holes)들"이라고 말하는 바]는 있음의 부재가 사악한(perverse) 종류의 힘을 가지지 않은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와 같이 또한, 먹을 것, 물, 공기라는 다양한 종류의 결여(deprivation)는, 비록 결여들이 그들 자체로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더라도, 강력하게 파괴적입니다. 악(evil)있음의 부재로서 알아차리는 것이 우리를 반드시 자기 만족적으로(complacent)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먹을 것의 부재는 우리를 염려하게 만들며 (그리하여 먹을 것을 찾도록 크게 자극 받게 합니다). 우리는 갓길(the shoulder)이 사라져버린 산악 도로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운전합니다.


The existence of the personal devil at first seems to contradict this. But the nature of Satan’s evil is precisely that which he lost by his rebellion against God, by his great “No!” and he seeks to entice human beings into giving up these same goods. He has nothing real to offer. He traffics in illusions.


인격을 가진 악마(the personal devil)의 존재는 언뜻 보기에 이 정의(definition)에 모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탄(Satan)에 있어서의 악의 본성은 정확하게 하느님께 반하는 그의 반란에 의하여, 그의 커다란 "아닙니다!"에 의하여, 그가 잃게 되었던 바로 그것이며, 그리고 그는 인간들을 꾀어 이들 동일한 선들을 포기하도록 하고자 노력합니다. 그는 제시할 실제적인 어떠한 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착각(illusions)들을 매매합니다.


Hell—eternal punishment for evil—is primarily a state of profound loss, of ultimate nothingness. But it is also a place of eternal fire, something that exists only by consuming other things in its unceasing drive to reduce everything to nothing.


악에 대한 영원한 벌인 지옥(hell)은 첫째로(primarily) 깊은 상실의, 궁극적 있음의 부재라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모든 것을 어떤 것도 아니도록 환원시키고자 그것의 멈추지 않는 동인(動因, drive) 안에서 다른 것들을 소모함으로써 오로지 존재하는 어떤 것인,  영원한 불의 장소를 말합니다.


Christians today are ill-equipped to confront evil in its numerous forms precisely because they have lost this understanding of evil as negation. They cannot look into that black hole because it is too horrifying. They prefer to believe that what has traditionally been called evil (a word many would not even allow themselves to use) is merely a mistake, a failure of understanding, a misguided sense of good.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정확하게 그들이, 단순히 현실태적 어떤 것의 부재(absence)일 뿐인 어떤 것으로서(as negation), 악에 대한 바로 이러한 이해를 이미 상실하였기 때문에, 악을 그 수많은 형식에 있어 대적하기에 불충분합니다(ill-equipted). 그들은 바로 이 블랙 홀을, 그것이 너무도 큰 충격을 주기 때문에,  들여다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전통적으로 악으로 불리어 왔던 바가, 단순히, 선에 대한 오도된(misguited) 어의(sense,의미)인, 이해에 있어서의 실패인,  어떤 잘못(a mistake)을 말한다고 믿는 것을 선호합니다.


Thirty years ago there were experiments in recasting the Ten Commandments in “positive” forms—urging people to do good instead of forbidding them to do evil. The experiment failed for a number of reasons, not least because deep down most people do have an inchoate sense of evil and realize that, for example, the injunction to “respect human life” does not get to the same reality as “thou shalt not kill.”


삼십년 전에 십계명들을, 사람들에게 이 계명들이 악을 행하는 것을 금하는 대신에 선을 행하도록 재촉하는, "실정(實定)적(positive)" 형식(forms)들로  개작하는(recasting) 실험들이 있었습니다. 이 실험은 몇 가지의 이유들 때문에, 특히(not least) 마음 속으로 사람들이 악에 대한 어떤 미발달의 어의(an inchoate sense)를 실제로(do) 가지고 있으며 그리하여, 예를 들어,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라"는 명령이 "살인하여서는 안된다"가 도달하는 것처럼의 바로 그 동일한 진실성(reality)에 도달하지(get to) 못함을 알아차리게 됨 때문에, 실패하였습니다.


The mystery of evil lies in the fact that there is something in human nature (as in the angelic nature of Satan) that makes nothingness attractive, the moral equivalent of the urge some people feel, when standing atop a high building, to throw themselves off.


악의 신비(the mystery of evil)는 (천사로서의 사탄의 본성에 있어서처럼)  인간의 본성 안에 "있음의 부재"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어떤 사람들로 하여금, 높은 건물의 꼭대기에 서 있을 때에, 자기 자신들을 내던지고 싶도록 느끼게 하는 바로 그 충동(the urge)의 윤리적 등가(the moral equivalent)인, 어떤 것이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lie in).


—James Hitchcock, for the editors

James Hitchcock is Professor of History at St. Louis University in St. Louis. He and his wife Helen have four daughters. His most recent book is the two-volume work, The Supreme Court and Religion in American Lif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4). He is a senior editor of Touchstone.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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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13년 8월 2일]

5.
그리고

여기를 클릭하면, <----- 또한 필독 권고

이곳 굿뉴스 서버 제공의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악(惡, evil)"의 정의(definition)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톨릭 대사전의 설명의 각주에, Hardon 신부님의 Modern Catholic Dictionay 가 명기되어 있음을 또한 눈여겨 보도록 하십시오.

[이상, 내용 추가 끝].
 
6. 끝으로, 위의 퍼 온 글로 되돌아 가서 어떠한 표현들이 문제인지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초록색으로 굵게 표시한 부분이 저의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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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시작)

선과 악은 참으로 오묘한 을 이루고 있습니다.


<----- 여기서 짝(pair)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단어의 사용은 위의 제4항에서의 첫 번째 학설에서처럼, 선과 악을 동등한 위치에 있는 어떤 것들로 간주하고 있는데, 이러한 이해는 선과 악에 대한 가톨릭 보편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서로 배척하고 있는 것 같지만 서로 끌어안고
큰 그림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 회피하여야 할 대상인 악이 추구하여야 할 대상인 선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이 표현은, 예를 들어, 악의 역할이 선의 역할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악의 예찬"에 해당한다는 생각입니다.


악이 있기에 선이 있고 선이 있기에 악이 있습니다.


<----- 이 표현은 "선이 없으면 악이 없고, 악이 없으면 선이 없다"는 표현과 논리적으로 동치이며, 주로 불교측에서 "연기의 법"을 가르칠 때에 사용하는 표현으로 생각하며, 가톨릭 보편 교회의 선과 악에 대한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선과 악은 서로 서로 헐뜯고 시비하지만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 가톨릭 보편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성부에 의하여 창조되는 존재 그 자체를 말하는 선이 어떻게, 어떤 선의 결핍으로 정의되는, 악을 필요로 하는지요?


악을 근절하려 마음먹었던 사람이 있었지만
악을 제거한 사람은 없었고, 누구나 악을 뿌리 뽑겠다고
생각은 하였지만 실제로 악을 뿌리째 뽑은 사람은 없었다.


<----- 예수 재림의 날까지는 형이하학적 악(physical evil, 물리적 악)이 이러한 상태에 있을 것임을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311항에서 가르치고 있으나, 그러나 윤리적 악(moral evil)이 예수 재림의 날까지 이러한 상태에 있을 것이라는 가르침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어디에도 주어져 있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만약에 이러한 주장이 참이라면, 가톨릭 보편 교회의 교도권에 의한 복자 및 성인 선정 절차 및 선포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리고 부활하심으로써 악을 이기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이실뿐이고, 사람은 아니셨는지요? 그리고 성모님의 무염시태 교의 및 성모승천 교의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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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다음은 표준 국어 대사전에 주어진 "악(惡)"이라는 단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악(惡)

  • 「1」인간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 나쁨. 또는 그런 것.
    선과 /악에 물들다/악이 발호하다/악을 저지르다/나는 선을 한다는 것이 도리어 악이 되는 것이었다.≪김구, 백범일지≫/너희들은 사회를 좀먹는 악의 무리들이다 하고….≪오상원, 백지의 기록≫
  • 「2」철학도덕률이나 양심을 어기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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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이 표준 국어 사전의 정의를 바탕으로 하여, 성경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의 가톨릭 보편 교회의 핵심 문헌들에서 사용되고 있는 신학적 용어인 "악(evil)"의 의미를 해당 문헌들의 전후의 문맥 안에서 제대로 이해할 수가 있을까요?

 

답변: 이미 위에서 살펴 보셨듯이, 전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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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 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 1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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