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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수원 성빈센트 드뽈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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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나 [human] 쪽지 캡슐

2002-05-17 ㅣ No.14

 

[수도원을 찾아] 3. 수원 ’성 빈센트 드 뽈 수녀회’

 

아픈 영육 보듬는 천사의 손길   

 

한때는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과감하게도 벌컥벌컥 물을 들이킬 수 있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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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특히 작약을 보살펴주고 싶어. 그것들은 너무도 약하니까… 그리고 라일락들은 햇빛 속에 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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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난 일주일 더 버틸 거야. 그랬으면 좋겠어. 느낌이 그래… 저건 아주 근사하군,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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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죽어가면서, 물을 마시네. 계속 실컷 들이켜고 있군… 용기가 나도록 잠깐만 당신 손을 내 이마에 얹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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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의 자리에 누워 있던 카프카는 말할 수도,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는 상태에서 그의 친구에게 끄적 거린 대화쪽지에 그렇게도 강렬한 글을 남겼다. 죽음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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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지동 성 빈센트 병원 건물 옆을 돌아 소리 없는 폭죽 같은 봄꽃들이 황사의 하늘을 수놓고 있는 수도원 뜰에 들어섰을 때, 문뜩 카프카가 남긴 마지막 글이 떠올랐던 건 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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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오래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나신 부모님의 창백한 마지막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병원 내부에서 흐르고 있을 약품 냄새가 생생하게 코끝에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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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분들께 아무런 힘도 도움도 될 수 없었던 지난 시간의 나의 무력함이 다시금 재발하는 상처처럼 욱신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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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그곳엔 땅에 두발을 딛고 사는 천사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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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의 해묵은 상흔마저도 부드러운 위무의 손길로 감싸 줄 것만 같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의 동반자가 되어주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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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드 폴 성인은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 주님이시고 스승이라고 가르치셨고, 이것이 존경심과 헌신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봉사해야 하는 이유라고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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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기 환자’천국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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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파데르본에서 1841년 빈센트 드 폴 성인과 루이즈 드 마리악 성녀의 영성을 따라 창립된 수도회는 1963년 당시 수원 교구장이던 윤공희 주교의 초청으로 한국진출이 이루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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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빈센트 드 폴 자비의 수녀들은 빈센트 성인의 영적 유산인 ’자비로운 봉사’를 모토로 삼아,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특히 환자들과 임종자.극빈자.수인(囚人).미혼모.무의탁 노인들에게 영적.물적으로 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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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현대사회의 영적.물적 빈곤 속에서 하느님의 부르심과 시대의 징표를 알아듣고, 자비로운 사마리아 사람의 절대적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섬기고, 교회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전파의 사명을 완수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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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풍요와 빈곤을 떠나서 환자들은 우선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특히 자신의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환자들,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과 외로움은 육체적 고통 못지 않게 심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과 위로를 필요로 하지요." 알폰사 수녀님은 그렇게 얘기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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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더 이상의 희망을 걸 수 없는 말기 환자들 곁에서 그들이 편안한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 호스피스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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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스 자원 봉사자들은 환자들과의 충분한 대화를 통해 그 사람 스스로가 자신 안에서 보물을 끌어낼 수 있게 합니다. 긍정적인 내 참모습을 발견해 마지막까지 그것을 느끼고 간직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받아들이는 과정을 돕는 것이 자원 봉사자들입니다." 호스피스 병동을 책임지고 있는 세레나 수녀님의 말씀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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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인 돌봄뿐 아니라 끝없이 그들의 얘기에 귀 기울여 주고 책을 읽어 주기도 하며 때론 보호자가 되어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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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들 중에는 세상과 화해하지 못하고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호스피스 봉사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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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그들의 짐을 나누어질 준비를 하고 곁에 있어 줄 테니 괴로움의 끝에 그들을 기억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그리고 그들은 이런 식으로 환자들에게 말을 건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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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물을 가져왔어요. 여기 꽃향기 좀 맡아봐요. 봄 냄새 맡고 기운을 내야죠. 우리가 항상 같이 있다는 걸 알지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요. 절대 혼자가 아니란 걸 알아야 해요. 같이 기도할까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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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활동 수도회 중의 하나인 그곳 수도자들은 활동으로 인해 관상과 기도의 시간이 부족하진 않은지 수녀님께 여쭈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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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바쁘게 많은 양의 봉사를 해야 하지만 활동과 기도가 균형을 이루도록 최대한으로 노력하지요. 하지만 ’우리를 필요로 하는 가난하고 병든 이가 있다면 하던 일을 뒤로하고 그들에게 달려가라.’ 즉, ’하느님을 위해서 하느님을 떠나라’는 빈센트 드 폴 성인의 영성을 우선적으로 따르는 것이 우리의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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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쉼없는 봉사.기도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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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을 앞둔 성금요일,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숨을 거두신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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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옆의 성당에선 수녀님들이 성금요일 예식을 위해 보랏빛의 긴 천을 늘어뜨려 제대 앞의 커다란 십자가를 가리고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스며 들어오는 빛마저도 천으로 모두 가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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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이제 하나의 커다란 무덤으로 변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분명 그 옆 빈센트 병원의 병동에도 그리스도를 뒤따르듯 자신의 죽음을 끌어안고 있는 고독한 영혼들이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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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소리 없는 폭죽 같은 봄꽃들, 눈부신 부활처럼 터져 오르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내 정신의 외상(外傷)에도 천사들의 위로 같은 꽃잎이 몇 장 조용히 떨어져 내려 부드러운 면포처럼 혈흔을 감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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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는 종종 타인에게 의도하지 않게 상처를 가했던 내가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러 가기 위해 발걸음을 내 딛어야 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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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분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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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입력시간 : 2002.04.1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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