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일반 게시판

저 아픈 가을 길을 어이 가라고

인쇄

목온균 [gsbs] 쪽지 캡슐

2004-09-30 ㅣ No.274


왜냐고, 무엇 때문이냐고, 이제 묻지 않으셔도 됩니다. 언젠가는 보내야 할 낙엽을 떼어낸 나무처럼 홀가분해 지십시요.

나뭇잎은 나무를 떠나야 할 무렵 붉게 타오르지만 아직도 피가 뜨거운 나는 처음부터 불이었습니다. 태우면 상처가 남고, 태우지 못하면 그을림이 남는 사랑이지만 그래도 뜨거웠던 기억은 남겠지요.

나무 아래마다 푸르렀던 녹음이 붉게 뿌려져 있지만 쓸쓸함에 푸석거리는 여러겹의 녹음들도 이제는 그리 목말라 하지 않습니다. 뿌리에서 가장 먼 가지에 있어 익숙해진 나의 갈증은 집으로 가는 길에 내려준 몇 방울의 이슬만으로 충분하니까요.

순간에 다가온 평생 한 번뿐인 사랑이라서 긴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이별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나무도 이별을 알지만 해마다 새싹들 키워오듯 날마다 이별을 연습중인 나의 사랑은 역동적인 행복과 슬픔이 교차되는 시간들 입니다.

행위의 감동도, 격정의 시간들도 묻어도 묻혀지지 않고 언제든 생생히 살아나 나를 가라 앉히려 들겠지만 언젠가는 놓을 수 없는 좋은 기억들까지도 낙엽 속에, 하얀 눈 속에 묻힐 겁니다

아직 하고 싶은 말도 넘치고 아쉬움에 망설여 지지만 굽이치는 아득한 길을 갈 때 그것은 나의 노래가 되어주고 친구가 되어 나를 위로 해 줄겁니다. 이제 혼자서도 길을 갈 수 있으니까요.

지금은 어느 곳을 둘러 보아도 마무리의 순간을 준비하는 모습들 뿐입니다. 일조량 부족한 잦은 빗속에서도 열매는 익어갑니다. 그것이 사람을 실망시키는 모양 일지라도 열매는 커갑니다.

한 순간에 사랑에 빠지고, 헤어나려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낙엽 속에 묻어버리려는 이 가을이 또 다른 후회의 시간으로 남겨 지더라도 그대 존재로 내 인생 미리 물들었으니 곱게 물든 낙엽처럼 눈속에 묻힌채 겨울을 보내도 그리 춥지는 않을겁니다.

이래도 저래도 세월은 흐르고 우리도 늙어 가지만 그래도 좋은 말만은 기억하겠습니다. 있어도 상관없고 없어도 상관없는 덤이 아니라 없어도 상관없으나 있으니 더 좋은 덤이었다고...







84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